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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기담은 철학 Jan 20. 2024

서른다섯번째 길. 내용의 다양함

뇌는 어둠 속의 전기 불꽃을
세상에 대한 조화로운 그림 쇼로 바꿔놓는 기관이다.
-데이비드 이글먼-*



컴퓨터는 모든 정보를 0과 1의 이진법으로 구분한다. 전기가 흐르면 1이고 흐르지 않으면 0이다. 이 두 가지 단순한 구분의 조합으로 무한히 많은 구분을 만들 수 있다. <주역>에서 이어진 선인 양효와 끊어진 선인 음효를 쌓아서 여러 괘를 만드는데 이것도 일종의 이진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진법에서 착각하기 쉬운 점은 내용의 구분이 단순해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0과 1은 단순한 2가지 구분이다. 그렇지만 이를 조합한 110은 단순하지 않다. 110은 1과 0과는 다른 수로 110이라는 연속된 세 숫자가 아니고서는 정확히 구분되지 않는다.

각각의 내용은 각각의 독특한 특징으로 구분된다는 것은 2진법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컴퓨터가 다양한 정보를 다룰 수 있는 것은 0과 1로 만들 수 있는 배열이 무한히 다양하기 때문이다.


뇌에서도 컴퓨터처럼 이진법을 활용하고 있다. 전선처럼 기다란 신경세포에서 신호 전달이 활성화되면 1이고 그렇지 않으면 0이다. 신경세포들의 사이에는 시냅스라는 틈이 있는데, 이곳에서 반도체처럼 신호 전달이 다양한 경로로 이어지거나 차단되도록 조절함으로써 0과 1은 무한에 가깝게 다양한 배열로 연결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컴퓨터와 뇌는 상당히 비슷한 원리로 작동하는 것처럼 보인다. 특히 인공지능은 미리 정해진 연결 방식이 아니라 시냅스에서처럼 학습에 따라 스스로 연결 방식을 조절해 가면서 최적의 방식을 찾아 간다.

뇌를 흉내내면서 개발된 인공지능이 1년이 다르게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거꾸로 뇌의 작동 방식이 정말로 컴퓨터와 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러나 뇌와 컴퓨터는 좁힐 수 없는 근본적인 작동 방식의 차이가 있다. 컴퓨터의 정보는 누군가의 최종적인 번역과 해석을 요구한다. 컴퓨터에게 파랑, 기쁨, 초록, 희망 같은 것들은 숫자상의 차이일 뿐이다. 인공지능이 이 네 가지 중에서 어느 것이 서로 가까운지를 구별하는 것은 인간의 기준으로 학습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뇌가 처리하는 정보도 번역과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가? 뇌의 활동을 신경세포들의 신호 전달로만 보면 그렇다. 뇌의 신경세포들에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은 숫자상의 차이와 비슷하고, 이것이 감각이나 감정이 되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번역과 해석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 번역과 해석은 도대체 어디에서 일어나고, 그 기준은 어떻게 정해지는 것일까?


이 문제는 앞으로 계속 생각해 봐야 하는 어려운 질문들이지만, 간단히 말해서 어떤 사람에게 일어나는 뇌의 신호 번역과 해석이 바로 사람의 정신 활동이라고 할 수 다. 초록 색감은 신경세포 신호의 흐름과 차단 방식에 관련되어 있지만, 정보는 다시 초록 색감으로 번역되고 다른 번역된 정보들과의 관계 속에서 해석된다. 

컴퓨터의 정보처리든 뇌의 정보처리든 결국에 최종적으로 정보를 처리하고 판단하는 기준은 인간의 정신인 것이다. 이것이 정신이 물질을 결정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물질과 정신, 몸과 마음에는 좁힐 수 없는 내용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신경세포에서 일어나는 0과 1의 배열된 내용은 새로운 내용의 영역으로 확장되어 나간다. 생명은 주어진 내용을 활용할 수 있는 더 적절하고 효율적인 내용의 영역을 찾아내고 전수해 왔다. 


컴퓨터도 빛의 정보를 수치화해서 색감이나 모양으로 번역하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번역된 정보도 수치화된 정보다. 그러나 생명의 시각은 흐름과 차단의 정보들을 매우 다른 내용으로 번역하고 해석한다. 정신과 마음의 내용을 물질과 몸의 내용으로 대체할 수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뇌의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정신적인 내용의 일들이 일어나 신호를 감각이나 감정으로 번역하고 해석하고 있다. 서로 다른 내용은 연습을 통해 번역될 수는 있지만, 서로를 완전히 대체할 수는 없다.

형태, 색감, 감정, 소리, 강약 같은 다양한 내용들은 모두 세계를 다채롭게 하는 내용들이고, 이들의 복합적인 조합도 새로운 내용이 된다. 감각과 감정의 내용들은 뇌 속에서 다른 내용과 서로 연결되고 해석되기도 하지만 서로를 대체할 수는 없기 때문에, 파랑 기쁨 초록 희망 같은 고유한 상태로 뇌의 작동 속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고유한 내용들은 다시 연관된 내용들로 번져 나가면서, 정보는 단지 해석의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일과 새로운 내용의 마중물이 된다.




무게 1.4킬로그램의 뇌는 소리를 직접 듣거나 눈앞의 광경을 직접 보지 않는다. 뇌는 어둡고 조용한 지하 묘지 같은 두개골 안에 갇혀 있다. 뇌가 보는 것은 다양한 데이터케이블을 통해 계속 들어오는 전기화학 신호뿐이다. 뇌가 처리해야 하는 정보도 그것뿐이다.

우리가 아직 그 과정을 전부 알아내지는 못했으나, 뇌는 이 신호를 받아들여 패턴을 추출해내는 데 기가 막힌 재능을 가지고 있다. 뇌는 각각의 패턴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이 의미가 우리의 주관적인 경험이 된다. 뇌는 어둠 속의 전기 불꽃을 세상에 대한 조화로운 그림 쇼로 바꿔놓는 기관이다.*



*데이비드 이글먼, 김승욱 옮김, <우리는 각자의 세계가 된다> 83쪽, RHK,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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