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의 이야기는 그 자체로도 일종의 거시적인 이론의 성격('세계는 지금 이렇게 진행되고 있다')을 갖고 있다. 현상은 세계를 반영하고 있지만 세계 그 자체는 아니다. 그런 점에서 현상의 이야기는 가상현실이기도 하고 증강현실이기도 하다.
외부 세계와 그와 맞닿은 우리 몸은 수많은 일들로 각각 진행되고 있는 일들이다. 실제 현실은 종합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연결과 분리가 교차하면서 제각각 진행된다. 현상에서는 이 수많은 일들이 '같이'나타난다는 점에서부터 이미 증강된 가상 현실이다.
현상의 이런 측면 때문에 칸트는 물자체와 현상의 구분을 강조했다. 현상의 기초 배경이 되는 시간과 공간조차도 현실 세계의 시간과 공간과는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라는 말에도 이미 이론이 숨겨져 있는데, 세계를 이루는 각각의 세세한 일들이 거시적인 '세계'로 통합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험은 세계와 만나는 일들(감성)에서 시작되지만, 세계 그 자체 모두를 알 수는 없다. 우리가 모델을 만드는이상 오류는 피할 수 없다.
우리는 칸트가 치밀하게 검토한 현상의 가공과 활용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수용하면서도, 물자체와 현상의 형식적인 구분을 그대로 놔두려 하지는 않는다. 현상에서부터 판단과 추론으로 이어지는 과정은 정해진 진행 형식에 따라 일어난다.우리는 칸트의 주장을 확장해서물자체, 물자체와 만나는 감성, 감성에서 시작되는주체의 종합, 종합된 이야기를 활용하는 실천, 새로운 이야기를 떠올리는 상상이 모두 일의 진행 형식에 따라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그 형식은 유연한 변주의 형식이고, 다양한 내용으로 펼쳐질 수 있는 형식이다.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다. 세계를 순간적인 일 속에 압축해서 담기 위해서는 과감한 전환이 필요했다. 현상이라는 모델화에서 잃은 것을 회복하기 위해서 먼저 칸트의 충고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현상은 그 출발부터 물자체와 다르다.'
현상의 이야기에서 시공간은 완전히 이어져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현상의 뚜렷함은 배경이 이어지는 틈을 제거한다. 또한 현상에서 사물들은 자체적으로는 완전히 이어지고, 서로간에는 완전히분리되어 나타난다. 현상에서 가장 잃기 쉬운 것은 이 틈을 만드는 일들, 그리고 뚜렷함 속에서 감춰진 희미하게 일하는 이야기들이다. 물자체와 현상도 이 희미한 틈에서 다시 생겨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