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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의 영웅 설정은 어떻게 변화했는가: 나이키 2편

자아주의와 브랜딩

by 민찬

지난 1편에서는 1980년대 나이키 세계관의 본격적인 시작을 살펴보았습니다. 시간을 이동하여, 오늘은 2010년~2020년대의 주요 변화에 대해 알아볼까요?


나이키는 1988년 첫 'Just Do It' 캠페인 이후 세계관의 '영웅 설정'을 일관되게 유지해왔습니다. 여러분이 짐작하시는 대로, 나이키의 히어로는 ‘운동선수 중 No.1’입니다. 나이키와 계약했던 최초의 육상 선수 스티브 프리폰테인Steve Prefontaine부터 마이클 조던Michael Jordan, 타이거 우즈Eldrick Tont Woods, 로저 페더러Roger Federer, 코비 브라이언트Kobe Bryant, 크리스티아누 호날두Cristiano Ronaldo 등이죠. 나이키는 광고에서 이러한 히어로들을 내세우며 은연중에 당신이 ‘Just Do It’ 한다면 당신도 히어로가 될 수 있다고 속삭였죠.



나이키 영웅설정의 미세한 변화


그런데 2010년대, 2020년대 이르기까지 디지털 시공간에서 보이는 나이키의 세계관에 미세한 변화가 있습니다. 특히, 그들이 바라보는 히어로에서의 변화가 있습니다. ‘어떤 인물을 영웅으로 보여 주는지에 있어 변화가 감지됩니다. 이전에는 주로 유명한 스타들을 내세워 왔지만, 2010년대 이후 나이키의 광고를 보면 히어로의 사례로 ‘Just do it 하는 나’를 주로 내세웁니다. 히어로가 나와 멀리 동떨어진 마이클 조던이 아닌 ‘Just Do It 하는 나 자신’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스토리화, 신화화를 통해 우리에게 간접적으로 속삭이지요.


우리가 이를 체감하기 위해서는 나이키를 한 명의 디지털 인격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 인격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두 가지 사례로 살펴보시죠.


<Find Your Greatness> (2012)

먼저, 2012년의 <Find Your Greatness> 광고 영상입니다. 런던올림픽 시기에 공개된 영상인데요, 대단한 운동선수가 아닌, 자기 목표를 이루려는 일반인들을 보여줍니다. 그 중 'Jogger' 편은 광고 업계에서도 인상 깊게 회자되고 있는데요, 1분의 영상 동안 엣되어보이는 소년이 묵묵히 뛰고 있는 모습이 전부입니다. 그리고 나레이션이 흘러나오죠.


“위대함.

그건 우리가 만들어낸 개념일 뿐입니다.

우리는 어느샌가 위대함이란 특별한 몇몇 사람들, 천재나 슈퍼스타에게만 주어진 선물이라고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우리는 그저 지켜보기만 해야 한다고요.

하지만 그 믿음은 잊어도 좋습니다.
위대함은 드물게 타고나는 DNA 같은 게 아닙니다.
값비싼 보물 같은 것도 아니죠. 숨 쉬는 것처럼, 위대함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모두가 할 수 있어요.
모두가요.”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 (2019)

한편, 2019년 겨울에 공개되어, 2020년대 가장 반응이 뜨거웠던 영상 중 하나인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 편을 살펴보겠습니다.


첫 장면은 돌잡이를 하는 어린 여자 아이의 모습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이키라는 디지털 인격은 말합니다.


“넌 어떨 사람이 될래?”

다음 장면에서는 여성 복서, 신체적 어려움을 가진 농구 선수 등 자신의 자리에서 ‘Just Do It’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이때 나이키는 말합니다.


"너 스스로를 믿을 때,
어디까지 갈지 아무도 상상할 수 없거든"


마지막 장면에서는 젊은 여성이 주방에서 뭔가를 삶고 있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요리를 하는 줄 알았지만 알고보니 마우스피스를 삶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태권도 선수였습니다.


이 때 나이키는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넌, 너만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이야”

그러면서 첫 장면에 등장했던 어린 여자 아이가 돌잡이로 축구공을 잡고 있는 모습으로 광고는 끝납니다.

NIKE -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 돌잡이에서 축구공을 잡은 여자 아이


유튜브에 게시된 본 광고는 당시 조회수가 1천만 건이 넘을 정도로 뜨거운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댓글을 살펴보면 ‘나이키의 광고를 보면 사람 마음속에서 뭔가 끓고 있는게 느껴진다’, ‘어딜가나 주체적으로 노력하는 사람이 빛나는 법’ 등의 댓글이 달렸습니다.


이 광고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마음이 끓어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은연중에 나이키라는 디지털 인격이 바라보는 히어로와 인간상을 보며 어떠한 감정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보다 자세히 말하면, 광고를 시청하는 평범한 사람들도 ‘Just do it’ 한다면 히어로가 될 수 있는 가능성 있는 존재로 변화시켜 주는 감정을 느낍니다. 소비자 가치 피라미드로 보자면 존재적 가치 항목의 ‘영웅 이해’, ‘자기 이해’, ‘희망 제공’, ‘동기 부여’ 항목이 모두 소구된 것이죠.



시대적 결핍을 읽는 작업: ‘센싱(Sensing)’


나이키가 히어로의 사례로 보여 주는 예시가 스포츠 스타에서 ‘나 자신’으로 중심 축이 이동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나이키가 시대를 읽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센싱Sensing’이라고 명명하고 싶은데요, 센싱은 시대적 맥락, 역사를 종적으로 횡적으로 읽어서 존재적 결핍이 있는 사람들을 찾아내는 작업을 지칭하는 용어입니다. 마치 신흥 종교가 생겨날 때, 초기 신도들을 타겟팅하는 작업과 유사합니다. ‘나는 어떤 가치를 중점으로 두고 살 것인가‘, ’나의 롤모델은 누구인가‘, ’나는 어떻게 그들을 일상에서 모방할 것인가‘와 같은 인간의 존재론적인 질문을 해소해주기 위해서 종교는 등장하는 것과 결을 같이하죠.


나이키는 센싱을 통해 이 시대에 시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적 가치가 무엇인지 파악한 것입니다. 점차 ‘나’라는 존재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여성 MZ세대, 그러나 그들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못하게 되는 여러 장애 요인들을 깊이 있게 파악했죠. 여전히 여성에 대한 인식적 편견이 여성이 자신을 주체적인 존재로 인식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피상적인 수준이 아니라 보다 깊은 수준으로 알았기 때문에 이렇게 존재의 마음을 울리는 광고를 기획할 수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나이키코리아의 브랜트 허스트 상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이키는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젠더 인식 변화의 움직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번 캠페인이 적당한 타이밍에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나이키는 40년 전에도 이미 세계관을 탄생시킬 때 시대 상황을 제대로 센싱했기 때문에 그 시대의 소비자에게 각인 될 수 있었습니다. ‘Just Do It’ 광고가 탄생한 1980년대 후반에는 미국은 격동과 희망으로 가득했습니다. 1986년부터 1988년까지 3저 호황으로 인해 전 세계 경제가 유례없는 황금기를 보냈습니다. 소련은 개방정책을 실행하고 냉전이 완화되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의 새로운 대중 문화가 발달하는 시기였죠. ‘Just Do It’은 이러한 자유롭고 무언가를 새롭게 도전하고 성취하려 하는 사회 분위기와 핏fit한 캠페인이었습니다.



나가며,

생각해 볼 것


이처럼 나이키는 브랜드가 종교가 되기 위한 조건을 구축하고, 일관되게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는 브랜드가 어떻게 현대 사회에서 ‘가벼운 종교’로 기능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이렇게 나이키의 종교 세계관을 살펴볼 때마다 양면의 생각이 떠오릅니다.


“정말 멋지다”라는 생각과 동시에,

“정말 무섭다“라는 생각이죠.


앞서 소개한 <너라는 위대함을 믿어>의 마지막 나레이션 기억나시나요? “넌 , 너만이 만들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이야“말이죠. 이 나레이션을 듣는 순간, 철학자 한병철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내면의 공허에 직면한 ‘나’는 스스로를 영구히 생산해낸다.”
<서사의 위기> 한병철, p.65


신을 잃어버린 현대 사회의 외로운 자아들은 결국 ‘스스로를’ 생산합니다. 나이키의 나레이션처럼 자신이 자신을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인간을 창조하는 존재는 신이라는 통념과는 정반대의 사상이죠.


하지만 종교 안에서 제1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 - 말하자면 하나님 - 은 내가 이제까지 보여준 것처럼, 사실과 현실 속에선 제2의 것이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투영된 인간의 본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에서 제2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 - 말하자면 인간 - 은 제 1의 것으로 선언되고 인식되어야 한다.

- 루트비히 포이어바흐


결국 나이키라는 디지털 인격은 무슨 종교를 믿고 있는걸까요? 바로 이 종교의 이름은 자아주의(Selfism)입니다. 기존 종교에서 제2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인간에게 제1의 자리를 내어줍니다. ‘나‘ 중심 메세지에 익숙해져 있는 우리는, 나이키의 메세지에 숨어 있는 이 종교를 발견하지 못하고 있던 것 아닐까요.






*유튜브 채널 여성신문, “[W-사람들] 나이키 코리아 브랜트 허스트”, 2019. 3.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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