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급전쟁과 브랜드
사유하는 소비자에게.
오늘의 글을 요약합니다.
1. 럭셔리 브랜드는 현대 계급 전쟁에서 '약탈적 자기 표현'의 도구로 기능한다.
2. 이는 생존을 넘어선 ‘레저’의 시대, 인간 고유의 호전성과 비교 의식이 만들어낸 새로운 전장이다.
3. 톰브라운의 줄, 롤스로이스의 보닛, 반클리프의 클로버가 그 예시이며, 이러한 브랜드는 시각적으로 공통적인 특징 3가지가 있다.
”용맹의 가시적인 증거인 전리품은 남성의 사고 습관에서 인생의 본질적인 장식품으로 자리잡는다…탁월한 힘을 보여주는 증거물로 높게 평가된다. 전리품은 성공적인 공격 행위를 한눈에 보여주는(prima facie) 증거물 역할을 담당한다. 이러한 문화적 단계에서는 겨룸(contest)이 존경받을 자격이 있는 과시의 한 형태로 공인된다.“
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 p.32
여러분, 소스타인 베블런이라는 사람을 아시나요? 그렇다면 학교에서 배웠던 ‘배블런 효과’는 기억나시나요? 가격이 오르는데도 수요는 늘어나는 현상을 배블런 효과라고 하죠. 위의 인용구는 베블런이 쓴 책 <유한계급론>의 일부입니다. <유한계급론>은 소위 ‘잘 사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와 가치를 고찰하는 책입니다. '유한계급'은 원문에서 ‘Leisure Class’인데요, 즉 레저를 즐길 수 있을만큼 한가로운 사람들을 지칭합니다. 책의 탄생이 1899년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에는 상류층과 럭셔리에 대한 놀라운 통찰이 들어있습니다.
전리품은 인류의 역사의 초기에는 주로 상아와 같은 사냥감의 일부였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 지금,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럭셔리브랜드가 전리품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Prima facie’인 것이죠. 현대 계급 전쟁에서 이겼다는 상징입니다. 톰브라운과 같은 의복은 전리품의 역할을 더욱 효과적으로 수행합니다. 왜냐구요? 베블런은 말합니다. "우리의 의복은 항상 금전적 지위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있으며, 모든 관찰자가 한눈에 이를 알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즉 의복은 계급전쟁에서 마치 장성의 별처럼 직관적인 계급 구분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공인하는 계급의 희미한 현대 사회에서, 여전히 누군가와 경계를 짓고자하는 사람에게는 아이코닉한 패션 요소는 계급장의 역할을 하죠. 톰브라운의 4줄과 같이요. (갑자기 재밌는 생각이 드는데요? 가디건 가격이 ~10만원까지는 팔에 1줄만 허용하고, ~50만원까지는 2줄, ~100만원까지는 3줄, 100만원 이상부터는 4줄만 허용하는 사회가 있다면 참 웃픈 세상일 것 같습니다)
"유한계급 제도가 일관된 형태로 출현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필수적이다."
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 p.32
계급 전쟁이 일어나기 위한 조건 두가지가 있습니다.
1. 공동체에 약탈적 생활 습관이 존재할 것
2. 생필품이 충분하여 구성원 상당수가 노동에서 면제 될 것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호전적입니다. <자아폭발>의 저자 스티브 테일러에 따르면, 전쟁은 인류 이외의 다른 동물 왕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다른 동물들은 자신이 위협받을 때 '유순하고 방어적인' 형태로 공격합니다. 그러나 인간만큼 '악의적'으로 대규모 공격을 하는 동물은없다고 말하죠. 그렇기에 제 1 조건, 태초부터 지금 이순간까지 인간은 폭력과 위해를 가하며 이 조건을 충족해왔습니다. 한편 제 2 조건은 어떠한가요? 현대 사회는 구성원 대부분이 생필품은 충분히 보유할 수 있습니다.물론 구성원 상당수가 노동에서 면제되진 않지만, 베블런이 책에서 서술한 노동의 맥락이 매우 단순하고 의미 없게 여겨지는 노동이라는 점을 고려해야합니다.
결국 제 1조건, 제 2조건을 모두 충족한 현대사회에서 럭셔리 브랜드는 더욱 사람들의 관심사가 됩니다. 이미 생계 유지 활동의 생존 수준을 넘어서서 계급 전쟁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죠. 이것이 어쩌면 ‘Leisure’일수도 있겠습니다.
“남성의 사냥과 전투는 둘 다 약탈적 성격을 지닌다는 공통점이 있다. 전사와 사냥꾼은 씨앗을 뿌리지 않고 거두기 때문이다.”
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 p.29
생계 유지 이외에도 시간이 남은 인간들은 경쟁하기 시작합니다. 브랜드라는 도구로 나의 계급을 자랑하기 시작합니다. 저는 이것을 ‘약탈적 자기 표현’이라고 부르고 싶은데요, 나를 표현함과 동시에 타인의 부정감정(경쟁심, 질투, 무력감 등)을 일으키기 때문이죠. ‘약탈’인 이유는 나는 타인에게 아무런 씨를 뿌려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인식에서 무엇인가 긍정적 열매를 맺도록하는 선행 행위를 한적이 없습니다. 결국 약탈적 자기 표현은 생산(+)이 아니라 누군가의 (+)를 빼앗아 (-)로 만들고, 나는 (+)를 얻는 형태죠.
이러한 계급 전쟁에서 돋보이는 브랜드의 특징이 있습니다.
1. 글(워드마크)보다는 상징(심볼)
반클리프의 클로버, 베르사체의 메두사, 람보르기니의 황소.
상징이 계급전쟁에서 유용한 이유는 상징이 갖는 은유성 때문입니다. 상징은 직설적이지 않습니다. '나 잘살아'라고 말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반클리프의 클로버를 보면 상류층을 떠올립니다. 현대 사회는 나의 계급을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있기에 상징이 계급장으로서 훨씬 효과적으로 작용합니다.
2. 셀 수 있다
톰브라운의 4줄, 벤츠의 삼각별, 제네시스의 2줄.
두번째로, 계급 전쟁에 유용한 브랜드는 숫자를 셀 수 있게 만듭니다. 마치 군대 계급과 같죠. 이러한 브랜딩은 직관성을 담보합니다. 앞서 글(워드마크)는 직설적이라고 했는데요, 직관과 직설은 다릅니다. 계급장은 직관성을 요구하지만 직설적일 때 매력이 반감되기 때문이죠.
3. 같은 자리에 배치한다
스톤아일랜드 소매, 롤스로이스의 보닛, 롤렉스의 3,6,9 마커.
마지막으로 상징을 같은 자리에 앉힙니다. 스톤아일랜드가 주로 팔 소매에 로고를 배치하는 것, 롤스로이스가 보닛에 환희의 여신상을 배치하는 것, 롤렉스의 시계에는 3,6,9 마커가 명확하게 표현되어 있는 것. 동일한 자리에 상징을 배치함으로서 반복적 인지를 도모합니다.
글을 마치며.
오늘도 역시나 사회 비판적인 태도와 컨설턴트로서의 자아가 명확히 구분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참고로 저는 톰브라운 옷이 없습니다. 저의 가디건은 1줄 아니면 2줄이 들어가야 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