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과이, 아순시온]
아순시온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다. 파라과이의 국경도시 시우다드 델 에스떼로 가는 버스에 오른 후, 어딘지도 모르는 곳에 내려서 구글맵을 보며 겨우겨우 Friendship Bridge를 건너자 나는 파라과이에 있었다. 무더운 날씨에 배낭을 앞뒤로 메고 까마득히 늘어선 국경심사 줄에 서 있자 혼수상태에 다다를 지경이었다. 인내 끝에 간신히 파라과이 입국 도장을 받고 들어선 시우다드 델 에스떼는 카오스, 그야말로 카오스였다. 빽빽하게 들어찬 도로에 쉴 새 없이 달리는 오토바이들은 물론이고, 인도에는 온갖 상점들과 노점상이 줄지어 있어서 마치 동대문을 연상케 했다. 물론 동대문보다 열 배는 더 번잡하지만. 여기선 눈 뜨고 코 베여 간다는 말이 진짜일 것만 같아서 조심조심 인파를 헤쳐나갔다. 버스터미널로 가려고 오토바이를 잡는 것도 꽤나 고생이었다. 국경도시의 명성이 헛되지 않을 정도로 흥정은 상당히 힘들었고, 결국 내려앉을 것만 같은 낡은 오토바이를 잡아 세워 겨우겨우 시간 맞춰 도착할 수 있었다.
7시간 버스를 달려서 저녁시간이 다 되어 도착한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 역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호스트 디에고의 집에 가기 위해 버스를 타려는데, 우선 버스 정류장이 터미널 근처에 하도 많아서 맞는 곳을 찾는다고 걸린 시간 한참. 게다가 수십 가지 노선들이 지나는 탓에 기다리는 데 한참. 여기에 내가 찾는 버스가 오는지 물어보기 위해 이 사람 저 사람 붙잡는답시고 한참. 하지만 디에고가 알려준 버스는 끝내 오지 않았다. 다만 간간히 지나가는 버스들이 가끔씩 와이파이가 있어서, 1~2초 정도 잽싸게 디에고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는 있었다. 버스가 한 시간째 오지 않는다고 말하자 디에고는 당황하더니 다른 버스를 타고 중간에 갈아탈 수 있는 법을 알려주었고, 고개를 들자마자 그 버스가 보여서 나는 답장할 새도 없이 냉큼 올라타버렸다.
파라과이의 버스는 브라질에서 온 입장으로서 상당히 열악하다. 에어컨이 있는지 없는지로 버스 가격이 달라지기까지 한다. 게다가 내릴 정거장을 알아차리기도 좀 어렵다. 나는 버스기사 뒤에 딱 붙어서 열심히 눈치를 굴리다가 간신히 디에고가 일러준 사거리에서 내릴 수 있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이미 해가 다 져서 어두컴컴한 사거리에 내리긴 했는데, 도대체가 갈아타는 정류장이 어디인지 찾을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환한 불빛은 덩그러니 놓인 주유소였고, 그곳을 지나는 커플을 발견해서 길을 묻기 위해 다가갔다. 번역기와 지도를 동원해서 여차저차 길을 묻는데, 갑자기 웬 봉고차가 주유소로 다가오더니 내 바로 옆에 멈춰서는 게 아닌가. 드르륵- 창문이 내려가고, 안에 타고 있던 남자 세 명이 일제히 외쳐댔다.
“스카이? 너 스카이니?!”
웬 낯선 남정네 셋이 파라과이 아순시온의 어느 사거리 한복판에서 내 이름을 부르고 있다니. 전말은 이랬다. 내가 디에고의 메시지를 보자마자 버스에 오른 직후, 그는 바로 친구 차를 빌려 직접 데리러 오겠다고 문자를 남겼던 것. 하지만 내가 문자를 읽지 않자 그는 갈아타는 정거장 근처로 와서 나를 찾아다닌 것. 같이 차에 타고 있는 사람은 차 주인인 친구와 디에고의 집에서 머물고 있는 다른 카우치서퍼 호르헤였다. 이들 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계산해둔 계획이었겠지만, 나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하게 구세주처럼 튀어나온 이들을 보며 마치 영화 같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렇게 크리스마스 직전에 도착한 아순시온. 나는 크리스마스가 세상 어디에서건 12월 25일인 줄 알았는데, 파라과이에선 크리스마스가 12월 24일이라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덕분에 시내 대부분의 상점들은 문을 닫은 상태였지만, 디에고와 호르헤 덕분에 파라과이 친구들과 풀장에도 가고 전통 음식들을 잔뜩 즐기며 보낼 수 있었다. 2018년 12월 24일과 25일, 두 번의 크리스마스 중 첫 번째 크리스마스는 그렇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