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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다예 Feb 13. 2021

남미에서 생긴 일 8. 아르헨티나인과 한국인의 술 대결

[아르헨티나, 살타]

살타의 버스터미널은 혼잡한 시내 한복판에 위치해 있었다. 밖으로 나가자마자 오토바이와 잡상인들이 뒤섞인 광경이 펼쳐졌다. 터미널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카우치서핑 호스트의 집을 찾아가는 길에도 쭉 시장이 열려 있어 즐거움을 더했다. 그렇게 도착한 자넷과 올랜도의 집. 나는 긴장한 마음을 안고 철창 사이로 벨을 눌렀다.



가장 먼저 들린 개 짖는 소리에 뒤이어 올랜도가 벌컥 문을 열고 나를 맞았다. 사진으로 미리 봐서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험상궂게 생긴 그의 모습에 기가 눌린 채 주춤주춤 안으로 들어가 그의 누이 자넷까지 만났다. 아르헨티나 내 이동인데도 꼬박 16시간이 걸린 야간 버스를 타고 온 탓에, 나는 비록 잠은 그럭저럭 잤으나 꾀죄죄한 몰골이었다. 그런 내게 자리를 권한 후 그들은 대뜸 냉장고를 열며 물었다.


“맥주 한 캔 할래?”


어, 아직 오전 10시인데, 하는 생각도 찰나, 이 참에 친해져야겠다는 생각이 든 나는 선뜻 승낙했다. 배낭은 그대로 의자 옆에 두고 우리는 술부터 마셨다. 그들의 냉장고에선 맥주가 끊임없이 나왔고, 그게 줄어들어갈 때 즈음 자넷은 밖에 나가 점심으로 엠파나다를 사 오며 맥주 역시 리필했다. 그 맥주 역시 떨어져 가자 우린 집 앞 술집으로 건너가 낮술을 퍼마셨다. 사실 나는 버스 여행의 피로가 채 풀리지 않아서 이쯤 되니 술을 마시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인의 주량을 알아봐야겠다는 그들의 말에 차마 이쯤에서 그만두자고 할 수는 없었다. 



자넷과 올랜도의 소탈한 성격 덕에 나는 금방 어우러질 수 있었다. 이모뻘 되는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자넷은 나를 친한 친구처럼 대했고 내 또래인 조카 엘리아스, 그리고 그의 친구 오마르까지 불러 소개해 주며 우리는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었다. 가장 많이 한 대화거리는 음악으로, 한 사람씩 돌아가며 노래를 선곡하여 내게 남미의 가요와 춤을 소개해주기 바빴다. 그와 동시에 강남스타일은 물론이고, 한국 드라마 열풍 덕인지 한국 노래도 꽤나 알고 있어서, 다 같이 김범수의 '보고싶다'를 떼창하기도. 오마르는 공부를 잘해서 장학생으로 한국에 다녀온 적도 있다고 한다. 자기가 아르헨티나에서 왔다고 하면 한국인들이 하나같이 “메시! 메시!”를 외쳤다는 얘기도 해 주었다.


저녁이 되자 당연히 술자리는 계속되었다. 나는 아직 살타 시내는커녕 내가 묵을 방조차도 보지도 못한 상태였다. 하지만 아무렴 어떤가, 이렇게 재미있는데. 나는 밤 10시가 되어서야 문득 깨달았다. 우린 무려 12시간 내내 스트레이트로 술을 마셨다는 것을.



다음 날 아침, 지독한 숙취와 함께 일어나 비틀거리며 거실로 나오자 자넷 역시 머리를 짚으며 말했다.


“나는 다시는 한국인과 술을 마시지 않을 거야. 오늘은 금주하자.”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우린 그날 역시도 바비큐를 구워 먹으며 맥주를 깠으니까. 우리의 술독은 내가 살타에 머무른 3박 4일 내내 계속되었다(그리고 자넷은 매일 아침 다시는 한국인과 술을 마시지 않을 거라는 다짐을 했다). 심지어는 칠레로 가기 위해 아침 7시 버스를 타야 하는 나를 전날 밤 클럽에 데리고 가서 또다시 술을 권했다. 우리는 이 날 아침 6시 반까지 마시다가 바로 버스터미널로 달려가야 했다. 덕분에 속이 뒤집어진 채로 탄 그 장거리 버스는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자넷은 떠나는 나를 배웅하며 앞으론 절대로 한국인을 게스트로 받지 않겠다며 다시금 다짐했다. 물론 얼마 안 있어 그녀가 새로운 한국인 게스트와 찍은 셀카를 메신저로 받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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