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누가 멘토였을까?

by 식빵이

기온과 함께 자존감도 영하로 뚝 떨어지고 이 생각 저 생각 오만 생각들이 머리에서 미끄러져 넘어지고 스스로에 대한 신뢰도 얼어서 굳어버리고 바람도 스치면서 나한테 한심하다 한심해 말하는 듯했던 오늘.


맹한 정신으로 멘토링하는 곳에 도착하자마자 아이들이 닭강정을 먹으라며 달려들었고, 내 망한 앞머리를 보고는 미용실에 컴플레인 전화를 걸어주겠다며 나섰다(사실 내가 자른 건데...).


축축 가라앉고 기라는 기는 모조리 빠져나간 것 같았던 하루의 끝무렵에 신기하게도 새 힘이 났다. 가끔 정말 산만하고 어수선해서 나를 힘들게 하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내가 만나고, 가르치기도 하고 배우기도 하며, 삶에 대한 얘기를 나눠온, 내 '제자'라 칭하고 싶은 학생들의 존재가 나한테 얼마나 든든하고 큰 힘의 원천인지 새삼 깨달았다.


나에게 과분한 신뢰와 사랑을 퍼주는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생님일 수 있도록 더 어른답게, 자존감도 다시 끌올하고 똑 부러지게 살아야지. 춥고 황량하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밤이다.


14년 12월 2일이니 오늘로부터 딱 11년 전에 쓴 글이다. 이상 기후 때문에 요즘 유난히 추운 줄 알았더니 이때도 꽤 추웠나 보다.
언제 봐도 앳된 고등학생 같은 멘티들 얼굴이 떠오른다. 이렇게 생각날 때 연락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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