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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지 Jun 21. 2022

불꽃을 지닌 연주, 임윤찬의 피아노

생소한 이름의 피아니스트가 18살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유튜브와 뉴스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열린 반클라이번 국제 피아노 콩쿨에서 1위를 한 임윤찬.


지금은 회사원이지만 5살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하기 시작해 대학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나는 당연히 그의 연주가 궁금해 유튜브를 재생하게 되었는데, 왜 그가 어린 나이에 이런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는지 단번에 인정이 되는 연주였다.


나는 그의 연주를 들으면서 단순히 '우와... 진짜 잘한다'의 느낌이 아니라 가슴이 울리는 감동과 온몸에 소름이 돋는 전율을 경험했는데,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몇 가지로 정리가 되었다.









그가 이번에 반클라이번 국제 콩쿨에서 연주한 곡은 이러하다.


<동영상을 보시려는 분은 클릭하세요>

- Liszt, Transcendental Etude 전곡 (초절기교 연습곡) (총 12곡, 약 80분)

- Beethoven, Piano Concerto No.3 in C minor Op.37 (3악장, 약40분)

- Rachmaninoff, Piano Concerto No.3 in D minor Op.30 (3악장, 약40분)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이 볼륨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잘 안 들리시는 분은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것으로 보세요!>

-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 S.Rachmaninov / Piano Concerto No.3 in d minor Op.30




1. 엄청난 대담함과 마인드컨트롤이 만들어내는 테크닉의 정수

음... 그냥 곡명만 쭉 봐도 뜨악하는 느낌이랄까?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은 영어로 매끄럽게 얘기해보자면, '초월적인' 연습곡이다. 리스트라는 작곡가 스스로 엄청난 크기의 손을 보유한 테크니컬한 피아니스트였기 때문에 그가 작곡한 대부분의 곡들은 연주하기가 어렵기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이 연습곡은 모든 곡이 각기 다른 테크닉을 곡 전반에 걸쳐 요구하기 때문에 전곡을 한 번에 연주하는 피아니스트는 거의 없다. (그렇게 프로그램 짰다간 골로 갈 것이기 때문에...)


임윤찬은 반클라이번 이전에 한국에서 열린 본인의 독주회에서 리스트의 초절기교 연습곡 전곡으로 프로그램을 짰는데, 심지어 중간에 intermission도 없애고 12곡을 앉은자리에서 한 번에 연주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인터뷰한 것을 들어보니, 리스트의 생애에 따른 변화를 관객들이 잘 느끼게 하고 싶어서 인터미션을 의도적으로 없앴다고 한다. (고등학생... 맞니?)


단순히 '나 이 정도까지 피아노 잘 쳐'를 뽐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음악의 목적 자체가 '작곡가의 의도를 청중에게 충실히 전달하여 그 음악의 진수를 느끼게 하는 것'에 있다는 그 본질을 실현하려는 의도였다.


베토벤의 협주곡 대부분은 청중에게 익숙한 편인데, 피아노 학원을 다니는 어린이들도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곡을 연주해서 곡 연주가 일견 쉬울 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고전 시대의 음악을 담백하면서 묵직하게 전달할 수 있기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경연에 적합하게 리스트와 라흐마니노프 곡을 택했으니, 베토벤의 곡으로 밸런스를 맞춘 느낌이었다.


라흐마니노프 3번 피아노 협주곡은 많은 협주곡 중에서도 테크닉적으로 어렵기로 손에 꼽히는 협주곡이다. 

서정적인 느낌으로 손을 좀 쉬어가게 해 준다는 2악장 조차도 엄청난 테크닉으로 휘몰아쳐야 하는 순간들이 많이 등장한다. 1악장과 3악장은 말할 것도 없다. 


여담으로 나의 경우, 학부 3학년 2학기에 협주곡이 실기곡으로 들어갔는데, 라흐 3번을 택한 애가 결국 실기도 1등 하고 학교 오케스트라와 협연도 했었다. 그만큼 아무나 손댈 수 있는 곡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인지 이번에 연주한 3곡 중에 유독 라흐마니노프 곡이 인기가 많아 보인다. 우리나라에서도 2번과 3번 협주곡이 많이 알려져서 그런것 같기도 하지만, 동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니 특히 3악장의 빠른 tempo를 보고 감명받은 분들이 많은 것 같았다.



나는 그가 이번에 연주한 곡들의 동영상을 모두 본 후, 'He is something'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는데, 테크닉적인 곡을 연달아 계속 연주할 수 있느냐는 문제는 단순히 손가락이 얼마나 빠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뛰어난 피아니스트라도 기술을 요하는 부분에서는 피아니스트도 간혹 실수하게 마련이고, 그러한 실수는 마음의 위축과 긴장을 불러온다. 테크닉이 부족한 것은 절대 아니지만, 긴장한 마음으로 인하여 마인드컨트롤이 어려워지게 된다. 


운동선수도 마찬가지 아닌가. 우리가 김연아를 엄청난 선수로 인정하는 것은 그녀가 몸으로 보여주는 서정도 있겠지만,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린 가운데에서도 어려운 점프를 매끄럽게 해내고 경기를 클리어하게 끝마치는 엄청난 대담함이 있기 때문이다. 


극도의 테크닉적인 곡만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여 연주한다는 것은 엄청난 대담함과 자기 확신 없이는 불가능하다. 나는 그의 나이와 상관없이, 그의 팬이 되었다.




2. 밀당으로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노래

'나의 해방일지'에서는 밀당에 대하여 상대를 유쾌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불쾌하게 하는 행위라고 정의하였지만, 음악에서의 밀당은 더 극적인 희열과 감동을 맛보게 해 주는 장치이다.


이렇게 연주할 때의 기법을 'rubato(루바토)'라고 한다. 이탈리아어로 '도둑맞다, 잃어버리다'라는 뜻의 이 음악기호는 연주자의 재량에 따라 템포를 느리거나 빠르게 조절해서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고전시대 곡보다는 쇼팽이나 라흐마니노프 등 낭만 시대의 곡에 주로 많이 사용하는데 라흐마니노프 3번 협주곡에서의 그의 루바토는 정말이지 아름다웠다. 


3악장의 마지막을 치닫는 부분에서 아랫부분 D코드에서부터 이어서 피아노의 제일 위 D(레)음까지 올라간 직후, 한 템포 쉬었다가 오케스트라와 함께 서정적인 멜로디를 노래할 때, 그때 온몸에 소름이 돋는 전율을 느낀다. 엄청나게 복잡한 화성으로 빠른 템포로 휘몰아치다가 한숨 쉰 후 진짜 속마음을 노래하는 느낌이랄까. 엄청난 고난을 겪고 난 후 인생의 참 의미에 대해 알게 된 노인의 노래랄까. 음악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그의 연주는 정말 좋았다.




3. 음악을 처절하게 사랑하는 그의 열정이 불러일으키는 감동

작곡가의 배경을 알면 그 노래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듯이, 연주자의 배경을 알게 되면 그의 연주가 더 깊이 와닿는다. 나는 국제콩쿨에서 수상한 그는 당연히 유복한 집안에서 처음 피아노를 배울 때부터 교수님께 사사받았으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피아노를 7살에 학원에서부터 시작했다는 것 아닌가. 엄청난 충격이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이름을 알 정도의 피아니스트가 되려면 테크닉적인 곡을 칠 수 있을 정도의 손과 팔목 근육이 강하게 발달되어야 하고, 몸을 쓰는 법을 알아야 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단순히 손가락을 빨리 움직이는 것만으로는 어깨와 손 근육이 경직되고 뭉치게 되어 자유롭게 연주를 할 수가 없어서,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하는 손의 원리를 이해하여 제대로 된 자세(달걀 쥔 손가락이 아니다)로 연습이 되어야만 한다. 한 번 굳어진 몸의 습관은 다시 되돌리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나의 경험담이다)


그런데 학원에서는 이런 것을 가르쳐줄 수가 없다. 사람은 자신이 아는 만큼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고, 학원에서 그렇게 가르쳤다가는 한 시간에 한 명 보기도 벅차서 수지가 맞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가 학원 출신이라니. 학원에서 배웠어도 두각을 나타내어 콩쿨 입상 후 예원학교와 한예종을 거치게 되었다니 피아니스트 치고는 정말 특이한 이력이다. 그의 여러 인터뷰를 보니 그가 얼마나 음악과 피아노를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는데, 그런 사랑이 자신의 단점도 모두 고치게 만드는 열정을 만든 것이라 생각된다.


산에 가서 피아노와 둘만 살고 싶다는 그. 새벽 2~3시까지도 연습하고 잠드는 것이 부지기수라는 그.

음악을 더 이해하고 싶어 작곡가의 생애를 철저하게 공부하고 음악을 철저하게 설계하는데 이 모든 것이 행복하다는 그의 인터뷰를 읽고 머리가 띵 했다.



정말 사랑하는 것을 찾고, 그것에 온 힘과 열정을 다해 몰두하는
인간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리고 그 열정이 만들어내는 것은 얼마나 감동적인가.




그가 너무 부러워졌다. 그가 수상한 이력과 받게 된 스포트라이트가 아니라, 정말 사랑하는 것에 거침없이 달려갈 수 있는 그 열정이 부러웠다. 열정은 한 순간에 화염이 아니라 사그라들지 않는 불꽃이라고 했는데, 끊임없이 그가 피아노에 몰두할 수 있는 그 끈기가 참 숭고하게 느껴진다.



찾을 수 있을까, 내 인생에서도 그 불꽃을.

있나요, 당신의 인생에도 그 불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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