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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씨아저씨 Jan 09. 2023

아들에게 배웁니다

2023. 1.9

다올.


첫째가 태어나고 며칠 있다가 제가 지은 한글 이름입니다.


아버지께서 한자 이름을 몇 개 지어서 보내주셨는데 마음에 들지 않아 제가 도서관 가서 우리말 사전 찾아서 하루 만에 짓고 바로 출생신고를 해버렸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아이의 이름을 지을 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라는 인생의 방향성 같은 것을 이름에 담으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올곧게 살아갔으면 하는 저의 욕심이 가득 들어간 이름이기도 합니다. 


다올이는 저와는 성격이 완전히 다른 녀석입니다. 무뚝뚝하고 차가운 저와는 다르게 참 따뜻한 마음을 가진 녀석입니다. 말도 참 예쁘게 합니다. 저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아버지 오늘 하루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라는 닭살 돋는 말을 아침마다 건넵니다. 


다올이는 비인가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녀석이 다니는 학교는 하나의 주제를 잡고 2년간 프로젝트를 이어나갑니다. 벌써 1년이 지나갑니다. 청각장애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큰 주제만 잡고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구체화시키지 못하고 지난 학기 무척 힘들어했었는데 주말에 저녁을 먹으면서 저에게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얼마 전에 '소리를 보여주는 사람들'이라는 청각장애인 대안학교에 가서 인터뷰를 하고 난 다음에 갈 길을 찾은 것 같다고요.


청각장애인들이 수어를 하나의 언어로 삼고 살아가고 싶어도 비장애인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이 사회는 수어를 하나의 언어로 인정하기보다는 그들을 구어의 세계로 넘어오기를 은연중에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법적 제도의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더군요.


와우수술을 강요하는 분위기 그리고 재정적인 지원도 그쪽으로만 쏠려있다고 하더군요. 와우수술 1건당 의사들이 받는 검은돈의 세계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고... 그리하여 실제로 농인들에게 필요한 수어통역사들은 수적으로 현저하게 부족하고 점점 숫자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도. 결국 그들의 고유 언어인 수어가 지켜지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현실이라는 이야기도 해주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반백살 가깝게 세상을 살면서 단 한 번도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장애인들의 문제에 대해서 말이죠. 



2년 전에 사무실로 쓰던 공간에 올해 1월부터 다시 들어왔습니다. 새로 입주를 하면서 공간 매니저로부터 그동안 바뀐 부분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출입문이 여닫이문에서 미닫이 문으로 바뀌었고 분리수거 쓰레기통도 휠체어를 타고도 이용이 가능한 위치와 높이로 조정이 되었다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비장애인들에게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문제지만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에게는 얼마나 큰 벽이었을까 싶습니다. 


전장연의 지하철 시위 관련해서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언제까지 사람들 출근길을 방해할 거냐는 이야기가 주위에서 들립니다. 여론도 그쪽으로 몰아가고 있지요. 아니죠. 더 해야죠. 왜  그들이 그런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이유를 알고 나니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요즘은 다닐 때 휠체어를 타고 이동할 때의 장벽들이 눈에 조금씩 보입니다. 


며칠 전부터 '어른 김장하'라는 다큐멘터리 관련 이야기가 제 SNS 타임라인에 많이 보입니다. 2시간을 쉬지 않고 내리 보았습니다. 저런 삶이 가능할까 싶으면서도 한 없이 고개가 숙여집니다. 



고작 한 달에 만원 후원하면서 몇 군데 쌓이다 보니 후원금이 십만 원을 넘기니 경기도 안 좋은데 당분간 한두 곳만이라도 후원을 중단할까 잠시 고민했던 스스로가 쪽팔려집니다. 


오늘은 스스로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드는 그런 하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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