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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씨아저씨 Jun 05. 2019

불평등한 것이 정상이다

복지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당연함

내 생활의 작은 변화


변화하는 조직


언제부터인가 사장님이라는 호칭 대신 대표님이라는 호칭이 일반화된 것 같습니다. '사장'보다는 '대표'라는 단어가 좀 더 있어 보여서 그런 것일까요? 암튼 저도 그래서 본의 아니게 대표로 불리고 있습니다. 비록 직원 없는 1인 회사이지만요. 참 다행이다 싶습니다. 조금 더 일찍 태어났더라면 일 년 내내 공사만 하는 공사장이 될뻔했으니까요. 호칭의 변화와 함께 우리 사회의 회사(조직 문화)의 분위기도 조금씩 변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회사 가기 싫어'라는 KBS 드라마를 챙겨 보고 있습니다. 볼 때마다 눈물이 찔끔. 물론 요즘의 직장 문화는 많이 바뀌고 있어서 드라마의 배경인 '한다스'를 '회사'의 전형으로 일반화시키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스타트업의 분위기는 많이 다를 테고 수직적인 조직 문화도 수평적으로 많이 변화하고 있으니까요. 그럼에도 드라마의 에피소드들은 지금의 현실에서도 많은 공감이 됩니다.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아직 변하지 않은 것들이 더 많을 테니까요. 저는 참고로 직원 1명 사장 1명으로 구성된 벤처회사(요즘은 스타트업이라 부르는)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조직문화를 모두 경험해 보았습니다. 



드라마를 보며 직장생활을 하던 저의 10년 전 그 시절을 떠올립니다. 조직 생활에서 벗어난 지 10년이 지난 지금 만약 내가 저 상황에 처한다면 나는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말'과 '행동'들이 누군가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지난 시절을 반성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제가 과장일 때 제 밑에서 도저히 일 못하겠다고 회사를 뛰쳐나간 대리도 있었습니다. 제가 과거에는 일을 너무 불도처처럼 하던 스타일이었습니다.


40대 중반을 코앞에 두고 있는 저는 요즘 건강한 어른이 되기 위한 성장통을 겪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참 힘든 시간입니다. 굳이 변하지 않아도, 그냥 지금처럼 살아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지만,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서라도 변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회사는 곧 사회다


요즘 저의 주된 관심사의 키워드는 회사(조직) 문화 / 세대 차이 / 성차별 / 육아 / 노후 등입니다. 어찌 보면 이 단어들은 모두 '회사'라는 큰 틀에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키워드입니다. 작년부터 코워킹 스페이스에 입주해서 생활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생각이 깊어지고 있는데요. 다양한 분들이 함께 지내는 곳이다 보니 젊은 세대의 고민에서부터 주변 회사들에서 겪는 문제들이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게 해당이 되는 문제도 있고 그렇지 않은 문제도 있지만 저는 매일 상상을 합니다. 만약 내가 저 상황에 처해있다면 나는 어떻게 대처를 할 것인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회사는 무엇을 해야 하는 것인가?


그중 최대의 관심사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과 워킹대디에 관한 문제입니다. 아무래도 두 아이를 키우는 저의 입장에서는 워킹맘의 회사 생활에 대해서 특히 더 관심을 갖게 됩니다. 육아는 부부가 함께 하는 것이라는 지극히 상식적인 전제 앞에서도 현실은 육아를 대부분 여성들의 몫으로 귀결시킵니다. 저는 외벌이인지라 비록 육아를 전담하는 역할을 맡고 있지는 않지만 아이와 좀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언제든 시간을 만들 수 있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직장을 포기하고 개인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돈보다는 시간을 택한 것이죠.


육아와 일을 병행하는 워킹맘과 워킹대디에게 회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최근 관심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복지'라는 단어를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혜택'이 아닌 '당연함'이 되어야 하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회사'라고 표현했지만 거꾸로 '사회'라고 읽어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입니다. 회사의 문제는 곧 사회의 문제이니까요.



형평성이라는 것이 과연 합리적일까?


아직까지 일과 육아 두 가지를 병행한다는 것이 쉽지 않은 대한민국의 상황입니다. 슈퍼우먼, 슈퍼맨이라는 말들이 사회가 하지 못하는 것들의 짐을 개인에게 전가시키고 그들을 영웅으로 만드는 이 사회의 부조리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워라밸이라는 키워드가 얼마 전부터 화두가 되어 기존보다는 일과 생활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문화가 조금씩 자리 잡고 있기는 하지만 워킹맘들은 여전히 힘듭니다. 


ⓒ vector stock


아이가 갑자기 아파서 병원에 데려가야만 하는 상황, 갑작스레 지정된 임시 공휴일로 어린이집이 임시로 휴원을 할 때, 갑자기 아이가 어린이 집에 안 가겠다고 생떼를 부릴 때 등 워킹맘들은 급하게 반차를 써야 하거나 휴가를 내야 하는 상황이 비 정기적으로 급작스레 생깁니다. 아니면 지각대장이 되어야 할 테니까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도 상황은 변하지 않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시기가 엄마들이 가장 바쁜 시기입니다. 그래서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를 기점으로 퇴사를 하는 여성들이 많은 것 또한 현실입니다. 


오늘은 또 뭐라고 둘러대야 하지?


이럴 때 직원은 회사에 '양해'를 구해야 하거나 자꾸 '변명'을 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직원은 회사의 '배려'를 원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다른 미혼 혹은 무자녀 기혼 직원들과의 '형평성'의 문제를 내세워 쉽게 답을 내지는 못하곤 합니다. 


어린이집 가기 싫다고 생떼 부리는 저의 둘째 아들


그런데 저는 여기서부터 문제가 출발하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이 '형평성' 이란 단어 말입니다. 10시에 출근해서 7시에 퇴근을 하는 다른 직원과 비교했을 때 본의 아니게 지각을 하거나 빨리 퇴근을 해야 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합니다. 현재와 같은 보육 시스템 아래에서는 말입니다. 


워킹맘이 아닌 직원들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봅니다. 협업을 기반으로 한 업종의 경우 파트너가 워킹맘이라면 이들은 피해를 본다는 느낌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함께 일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고 그들의 업무 공백을 본의 아니게 자신들이 책임저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워킹맘들은 자연스럽게 퇴사에 대한 압박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이런 생각이 들게 하면 안 된다는 입장입니다. 이들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이런 기분을 느끼게 하는 구조가 잘못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기본적으로 미혼자와 워킹맘이 처한 상황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데서 발생합니다. 출발점 자체가 다른데 어떻게 단순 비교를 할 수가 있을까요? 이것이 과연 형평성에 어긋난 일인지에 대한 문제를 짚고 넘어가고 싶습니다. 배달의 민족 김봉진 대표가 직원들 복지 정책에 대해서 인터뷰한 자료를 보니 복지는 당연히 불평등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육아를 하면서 회사를 다니는 직원들이 더 큰 복지를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참 많은 공감을 하였습니다. 


KBS 드라마 '회사 가기 싫어' 5회 [슈퍼우먼은 없다]



노약자석은 언제나 비어있어야 할까?


이 문제는 대중교통의 노약자석과 임산부 배려석의 문제와도 저는 맥을 같이 한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형성성의 측면에서 생각했을 때 나도 다리가 아픈데 왜 노인들을 위해 혹은 임산부를 위해 내가 피해를 봐야 하는 거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건 기본 출발점 자체가 다른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노약자석은 늘 비어있어야 합니다.


저는 노약자석은 해당자가 없는 상태라면 늘 비어있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해당되시는 분들이 앉아있지 않다면요. 우리나라와 같이 러시아워의 혼잡도가 너무 커서 사람들 틈에 끼어서 출퇴근을 해야 하는 경우 이 자리를 비워놓는 것이 때로는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을 때는 그 자리에 앉아있다가 해당되시는 분을 보게 되면 '양보'해주면 되지 않냐?라는 의견도 많습니다. 


얼마 전부터 지하철에는 임산부 배려석이 별도로 생겼습니다. 사실 임산부들은 노약자석에 앉아도 됩니다. 그러나 현재의 노약자석을 점유하고 있고 그 자리의 최고 권력자는 약자가 아닌 노인인 것이 현실입니다. 임산부가 이 자리에 앉아있는데 어르신들이 앞에 서 있게 된다면 앉아있는 임산부의 마음은 좌불안석일 것입니다. 난 당연히 이 자리에 앉아있을 권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필요한 미안함이 생기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한번 상상해보겠습니다. 만약에 내가 노인이 되었다고 합시다. 나이가 들면 다리도 아프고 무릎도 아프고 움직이는 버스와 지하철에서 서있는 게 참 힘들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죠. (사실 저도 아직 그 정도 나이는 아니기에 잘 모릅니다.) 버스를 탔는데 노약자석에 젊은이가 앉아있는 것입니다. 노인은 노약자석 앞으로 갑니다. 다행히 노약자 석에 앉아있던 젊은이가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그리고 노인은 앉습니다. 노인의 기분은 어떨까요? 누군가의 자리를 내가 뺏은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을까요? 내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임에도 불구하고 미안함 감정이 드는 겁니다. 만약에 그 자리가 비어있었다면 노인은 가벼운 마음으로 자리에 앉을 수 있겠죠.


만약 젊은이가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면 상황은 좀 복잡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도 특수한 상황은 발생할 수 있습니다만 이 경우는 여기서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앉아있는 젊은이가 겉으로는 표시가 나지 않는 환자이거나 전날 밤을 새우고 퇴근해서 곤히 잠에 빠진 것 같은 그런 경우 말입니다.


저는 이 차이는 굉장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이 들어야 할 필요가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기분을 느껴야만 하는 상황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임산부 배려석은 임산부들이 노약자석에 앉을 때 발생하는 불편한 문제들을 어느 정도는 해결할 수 있은 좋은 대안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미안한 마음 없이 당연히 자신이 누려야 할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이때에도 임산부가 아닌 사람이 임산부 배려석에 앉아 똑같은 상황이 발생하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직원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 근무 조건은 달라야 하는 것이 공평할 수도 있습니다. 모두 다 동일한 출발점에서 출발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유동적인 근무 조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회사에서 보장해주어야 할 것일 수도 있습니다. 워킹맘들이 급하게 반차를 내거나 월차를 쓰는 것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해주는 것, 무엇보다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게 하는 것. 다른 미혼 직원들의 불만이 나오지 않게 하는 합의와 근무 조건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언젠가 미혼인 직원들도 결혼을 해서 육아를 병행하며 직장생활을 하게 되는 일이 발생할 수도 있고, 그럴 경우 남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 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어찌 보면 미래의 나의 모습이기도 하니까요. 아이를 낳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아이를 낳았을 때 생기는 문제들을 도저히 해결할 수 방법이 눈앞에 보이지 않아 아이를 낳지 않는 부부가 늘어간다면 이건 사회와 회사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풀어야 할 문제일 것입니다. 


베네치아 바포레토의 임산부 및 노약자 석 안내

 

얼마 전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갔을 때 수상버스 바포레토 안에 임산부 및 노약자 보호석 안내 표시를 보고 조금 감동을 했습니다. 임산부, 유아 동반자, 약자, 노인 순으로 표시가 되어있습니다. 우리나라와는 그 순서가 조금 다르죠? 그리고 배는 만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에는 아무도 앉아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거장에서 할머니 몇 분이 배에 타시곤 이 자리에 편하게 앉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동의와 합의가 필요한 시대


최근 워킹맘들이 처한 현실을 반영하여 근무 조건을 만들고 있는 직장도 많이 생겨나고 있고, 그 회사와 경력단절 없이 일할 수 있는 여성들을 연결해주는 스타트업도 생겨나고 있는 듯합니다. 사실 이런 회사가 별도로 생기고 특별한 주목을 받는 현실 역시 아직 우리의 갈 길이 멀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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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이라는 단어를 계속 사용했지만 워킹대디도 동일하게 해당되는 내용입니다. 남자들도 직장에서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사용할 수 있는 것. 여성들의 보건 휴가 역시 복지가 아니고 당연함이 되어야 하는 인식의 전환. 일차적으로 회사의 복지 정책의 문제로 볼 수도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사회적 합의가 더 중요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국가에서 나서야 할 일이기도 합니다. 


저의 둘째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아내는 일자리를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외벌이로 벌어서 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물론 경제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아내는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의 전업맘으로서의 삶에 많이 지친 듯했습니다. 자존감 회복을 위해서라도 무엇인가 필요한 상황이었습니다. 아내는 아이들 학교 가는 시간에만 일할 수 있는 그런 직장을 찾았습니다. 유치원 교사였던 아내는 처음에는 경력을 이어서 일할 수 있는 직장을 구했으나 불가능에 가까웠습니다. 겨우 겨우 어렵게 초등학교 저학년 보조교사라는 계약직을 구했는데 정말 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풀타임 근무가 아니고서야 할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진짜로 마트 캐셔 외에는 원하는 시간대에 근무할 곳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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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벌이로는 내 집 마련은 말할 것도 없고 결혼을 하는 것조차 상상도 할 수 없고, 부모님들이 아이를 맡아주지 않으면 맞벌이로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대한민국입니다. 아이를 키워보니 부모님들께 육아의 고통을 넘겨드리는 것은 정말 최고의 불효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것입니다. 너 집에서 애 볼래 아니면 회사 가서 일할래 물으면 아마 열에 아홉은 회사 가서 일한다고 할 겁니다. 야근까지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일이고요. 


그래서 육아와 일을 병행할 수 있는 회사와 사회의 정책은 이제 배려도 복지도 아닌 당연함이 되어야 한다고 저는 조심스럽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물론 회사차원에서 모든 짐을 안고 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국가의 정책도 함께 반영이 되어야 할 문제니까요. 저는 그전에 무엇보다 이 사회 구성원들의 '동의'와 '합의'가 먼저 필요한 게 아닐까 합니다. 아울러 '공감'과 '위로'의 마음도요. 우리는 그동안 당연하게 누려야 할 권리를 복지라는 이름에 양보하며 살아온 것은 아니었을까요?


최근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이후에 표준 근로계약 준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기사화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가장 열악한 근무환경 중 하나였던 영화판에서도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이기는 하지만 아직 갈길은 멀어 보입니다. 


혼자서 가게를 꾸려간지 벌써 8년 차에 접어듭니다. 이제는 직원도 좀 채용해서 일자리 창출에도 좀 이바지하고 회사 규모도 좀 키워야 할 때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지만 늘 고민만 많은 것 같습니다. 나는 좋은 리더가 될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직원이 우리 회사에 왔을 때 어떤 캐리어를 쌓아서 갈 수 있을까? 등등. 여러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안지를 작성해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직원 채용시에도 경력 보유 여성들을 우선적으로 고려해보려고 합니다.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채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8년 차에 접어든다.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농산물 유통구조는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 투성이었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외모 지상주의'가 농산물 시장에서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나는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했다. 나는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아울러 농부들의 수고스러움에 대한 ‘가치’를 ‘같이’할 수 있도록 농부의 마음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려고 한다. ‘농사 안 짓는 농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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