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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씨아저씨 May 14. 2019

나도 이제 더치페이를 할 수 있다

나의 더치페이 입문기

내 생활의 작은 변화


2018년 11월 나는 '공공그라운드'라는 대학로에 위치한 코워킹 스페이스에 입주했다. 그 이후 나의 삶에는 작은 변화가 생겼다. 알다시피 코워킹 스페이스는 많은 입주사들이 한 공간에 적을 두고 함께 생활하는 공간이다. 그로 인해 다양한 업종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 마주쳐야 하는 숙명을 안고 살아간다. 사람과의 대면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사실 입주여부를 많이 고민했지만, 내가 입주한 대학로의 공공그라운드라는 곳은 다른 코워킹 스페이스에 비해 지리적 조건 그리고 건물이 가지고 있는 역사, 공간이 주는 소소한 즐거움 그리고 무엇보다 조용한 분위기가 이곳에서의 생활을 결정한 이유였다.


공공그라운드의 여름과 겨울


내가 입주한 후 한 달이 지나자 예전부터 친분이 있던 회사가 내 옆으로 입주하게 되었다. 그 회사는 직원이 10명인 동종업계 회사인데 예전에 한 차례 사무실을 셰어 했던 경험이 있었기에 내심 낯선 공간을 덜 어색하게 해 줄 좋은 동무들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그 회사는 처음에 사무실을 셰어 했을 때만 해도 직원이 3~4명 남짓한 규모의 회사였는데 어느새 직원이 10명이 되어버렸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지내다 보니 무엇보다 식사를 같이 할 일이 많아졌다. 참고로 난 그동안 꽤 오랜 기간 동안 혼밥족으로 살아왔다.


나는 더치페이를 해본 ‘경험’이 없었다.


그 회사가 입주하고 처음 같이 점심을 먹으러 나갔던 날 '일'이 터졌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의아해하는 분들도 많겠지만 나에게는 분명 ‘일’이었다. 점심을 먹고 밥값을 계산하려고 하는데 너도 나도 지갑에서 카드를 꺼냈다. 어? 내가 계산해야 되는데 왜 이 친구들이 계산을 하려고 하지? 하며 잠시 착각을 했었지만, 각자의 밥값을 계산하기 위해서라는 걸 금세 깨달았다.


이제 밥을 먹고
서로 계산을 하겠다고 서로의 등을 밀치며
계산대로 돌진하는 풍경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난 그냥 내가 계산을 하려던 참이었다. 새 공간에서의 첫날을 기념하며 같이 한 식사. 연장자로서 당연히 내가 밥값을 내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색한 건 나뿐만 아니라 그들도 마찬가지였다. 참고로 그 회사의 구성원은 전원 20대 후반~30대 초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나이로 치면 나와는 띠동갑을 넘어서는 나이이다.


내가 어색했던 이유는 단 하나. 살면서 나는 그동안 더치페이라는 것을 해본 ‘경험’이 없었던 것이다. 더치페이라 하면 자기가 먹은 것은 자기가 계산하는 굉장히 클리어한 계산 방법으로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계산법 정도로만 내 머릿속에 있었지 실제로 주변 친구들이나 동료들과 밥을 먹으면서 실행에 옮겨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이건 물론 프리랜서 생활을 오래 하고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내 개인적인 특성에 기인한 것일 수도 있다.


보통 우리 세대의 계산법은 상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연장자가 계산을 하는 것이 첫 번째 룰이고, 한 번씩 돌아가면서 계산하는 것이 일반적인 룰이었다. 매일 같이 밥 먹는 사이인데 오늘은 김대리가 계산하고 내일은 박 과장이 계산하고 모래는 최 실장이 계산하면 나름 공평하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왔고 그 방식에 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특히 우리나라같이 직장인들의 식사 시간이 짧고, 전쟁 같은 점심시간에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에서 각자 카드를 들고 줄을 서는 것이 나로서는 굉장히 번거롭고 비 효율적이라고 느껴왔었다. 개인사업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식당 사장님들에게 미안한 감도 컸다.


처음 더치페이를 하면서 나 스스로를 굉장히 불편하게 만들었던 이유를 짚어보자면  '이건 그냥 내가 내도 되는데…'  연장자로서 부여된 임무를 소홀히 한 것 같은 미안함이 가장 컸고, 이들과 나 사이에 심리적인 거리감 내지는 벽이 생긴 것 같은 느낌도 받았다.


공공그라운드 라운지에서 보는 해 질 녘의 모습


더치페이는 나에겐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 상황은 다른 사람은 아무도 불편하지 않은, 오직 나 혼자만 불편한 상황이었다.


더치페이는 이제 상식이 되어버린 시대다. 사실 더치페이의 장점도 많다. 각자 먹은 것은 각자 계산하는 방식이 익숙해지면 음성적으로 만행되고 있는 접대 문화를 사라지게 하는데도 분명 큰 역할을 할 것이고 불필요한 계급, 계층의식도 많이 없어질 것 같았다. 실제로 연장자들의 입장에서는 이 판을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도 사라지게 할 수 있으니 우리 세대의 입장에서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이제 완벽히 기성세대가 되어버린 40대 중반의 나로서는 못내 아쉬운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6,000원짜리 밥을 먹은 내가 6,500원짜리 밥을 먹은 상대방의 밥값을 한 번 계산했을 때 나중에 500원의 차액금을 만회하기 위해 다음번 상대방이 계산하는 차례에는 평소에 먹는 것보다 500원 비싼 것을 먹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기도 할 것이고, 혹시라도 밥값을 계산하는 순서가 꼬이거나 먹튀 하는 경우에는 왠지 모를 손해 드는 기분은 어찌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우리 세대 아니 그냥 나라고 해야겠다. 나는 만약에 그러한 경우가 생기더라도 그건 그냥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적립’이라고 생각했다. 골프는 모르지만 골프 용어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세상을 살다 보면 even파를 유지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때로는 언더파를 칠 때도 있고, 때로는 오버파를 칠 때도 있다. 물론 언더도 싫고 오버도 싫고 나는 이븐으로 살겠다는 삶의 방식도 있을 것이다.


살다 보면 본의 아니게 손해를 본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지만, 그것이 더 큰 이익으로 다가올 때도 있다는 것을 나는 살면서 많이 느꼈다. 그것을 철저한 계산으로 원천 봉쇄해버리는 요즘 세대들의 삶의 방식이 조금은 아쉽기도 조금은 부럽기도 했던 것이 나의 첫 더치페이의 솔직 경험담이다.


나는 지금 옳고 그름, 좋고 싫음의 문제가 아닌 그냥 다름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5월의 공공그라운드


코워킹 스페이스 입주 6개월 차인 나는 이제 자연스럽게 더치페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완벽히 몸에 밴 것은 아니다. 그래도 자꾸 하다 보니까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1세대 이상 차이나는 그들과 한 공간에 있으면서 나는 그들과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중이다.


BTS를 알고 ‘핵인싸’의 말뜻을 이해한다고 해서 그들과 어우러질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다른 세대와 화합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하지만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동지로서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도 분명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들을 이해해야 그들도 나를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조금은 열지 않을까 해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열심히 더치페이 중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더치페이가 익숙한 세대에게 부탁 아닌 부탁을 드리자면 누군가에게는 일상이 되어있는 더치페이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세대들 또한 시대에 뒤떨어진 한심한 사람들이 아닌 지금 함께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동료라는 점을 미력하지만 어필하고 싶다.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채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8년 차에 접어든다.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농산물 유통구조는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 투성이었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외모 지상주의'가 농산물 시장에서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나는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했다. 나는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아울러 농부들의 수고스러움에 대한 ‘가치’를 ‘같이’할 수 있도록 농부의 마음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려고 한다. ‘농사 안 짓는 농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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