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째 슬럼프 중인 과일가게
나는 과일장수다. 동시에 프로야구 덕후이기도 하다. 초등학교 시절 MBC 청룡(현. LG 트윈스) 어린이 야구단 회원을 딱 1년 했다는 그 단순한 이유 하나만으로 아직까지 엘지 트윈스를 응원하고 있는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아저씨이기도 하다. 아무리 냉정한 프로의 세계라고 할지라도 구단에서 선수를 대하는 태도나, '탈쥐'효과를 눈앞에서 마주할 때면 엘지 트윈스의 팬이라는 것이 한없이 부끄러울 때도 있지만 아직도 내 인생 최고의 야구선수를 '김재박'으로 기억하고 있고 오늘도 엘지 경기를 관람하고 있는 아저씨다.
많은 고수들이 자신의 전문 분야를 인생에 비유하곤 한다. 스포츠를 인생에 비유하기도 하고, 바둑을 인생에 빗대기도 한다. 바둑이 알려준 삶의 지혜로 장그래가 조직 생활에 적응하는 과정을 우리는 '미생'을 통해서 보지 않았는가? 내가 야구를 좋아하는 이유 중에도 그것이 우리네 인생과 너무 닮아있다는 이유도 한몫을 한다. 나이가 들수록 야구경기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도 조금씩 달리지는 것 같다.
얼마 전 아끼는 후배로부터 생일 선물로 책을 한 권 선물 받았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하고 있는 과일장수라는 일을 야구 경기와 비교해서 바라보게 되었는데 참 많이도 닮아있었다. 이 글을 쓰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 글은 책을 소개하는 서평이 아니니 혹시라도 책의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직접 구입해서 읽어보시는 걸로.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재밌게 읽을만한 책이라는 것만 말씀드린다.
나는 야구를 보면서 가끔 감독이 되는 빙의를 하곤 한다. 때론 투수의 마음으로 가끔은 타자의 마음으로도 야구를 보기도 한다. 특히 회사를 창업한 이후에 몰입도는 더 커졌다. 저런 상황에서 나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 대타로 교체를 했을까? 아니면 그냥 선수를 믿고 기다렸을까?
안타 하나면 역전패를 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 아웃카운트 1개 잡으러 마운드에 올라가 있는 마무리 투수의 심리 상태는 어떨까? 대타로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의 마음은? 프로 야구 선수들은 그 상황을 극복하고 결과를 내야만 하는 정말 최고의 극한직업이 아닐까? 저 선수들의 연봉이 이거 하라고 받는 거라는 걸 생각하면 고액 연봉의 액수가 이해가 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동시에 선수들이 측은하기도 하다.
야구는 우리네 직장 생활과도 너무 닮아있어서 야구를 보며 한 없이 기쁘기도 하지만 때로는 한 없이 슬프기도 하다. 감독(대표)의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할 때도 있고, 선수(직원)의 입장이 되어야만 할 때도 있다. 화나고 슬프지만 화낼 수도 슬퍼할 수도 없는 그런 상황에 맞닥뜨리기도 한다. 우리의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 선택이 바른 선택인지 틀린 선택인지 늘 고민하지만 책임은 오로지 내 몫이다. 야구에서의 급박한 상황에서 작전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그 책임은 온전히 감독의 몫이듯 말이다.
'레전드는 슬럼프로 만들어진다'에서 작가는 투수와 타자 모두 슬럼프를 겪는 경우 그 주된 원인이 '부상'에서 오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물론 타자보다는 투수가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한다. 유망주들이 어린 나이에 너무 혹사당해서 어깨가 일찍 망가져서 선수 생활을 오래 하지 못한 경우를 우리는 많이 만나왔다.
지금은 선발투수가 한 경기에 100개 정도의 공을 던지면 선수 보호 차원에서 교체를 해주는 게 일반적이지만 과거에는 스포츠에서는 과학보다는 투지와 정신력을 강조했고 100개를 훌쩍 넘긴 공을 던진 투수가 다음날 마운드에 오르는 일이 이상하지 않았다. 그러한 선수를 우리는 전설로 알고 있지만 사실 엄밀히 말하면 그건 선수를 혹사시킨 것이었고 한 선수의 인생을 망치는 것이었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감독이 선수의 슬럼프를 자초했고, 한 선수의 야구 인생을 끝나게 한 주범이기도 했다. 전설의 프로야구 선수 최동원의 이름을 떠올릴 때면 늘 마음 한편이 무거인 이유이기도 하다.
감독은 선수를 보호해야 하고
대표는 직원을 보호해야 한다
얼마 전 종영한 드라마 검블유에서 바로 대표 브라이언이 남긴 대사는 조직과 대표의 역할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다.
포스트 시즌 경기. 안타 하나면 역전승을 거둘 수 있는 상황에서 대타 작전의 성공과 실패는 단순히 1승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은 온전히 감독의 몫이고 결과 또한 감독의 책임이다. 그것이 감독의 운명이기도 하다. 1997년 10월 12일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끝내기 안타를 치던 서용빈의 모습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고, 서용빈이라는 이름 석자를 접할 때마다 자동으로 이 날의 장면이 떠오른다. 승리의 통쾌함 때문이 아닌 그 과정 때문이다.
스코어 5-4. 1사 1, 2루에서 서용빈(좌타자) 타석에서 삼성은 좌완 투수 성준을 마운드에 올렸다. 엘지 벤치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좌완투수에 강한 최동수를 대타로 기용하려던 찰나 벤치에서 서용빈을 불렀다. 서용빈은 이때 교체를 극구 거부하고 본인이 해결하겠다는 의사를 벤치에 강하게 전달했다. 나만 믿어달라는 강한 포스를 뿜기며 타석에 들어선 서용빈의 모습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사실 선수가 벤치의 사인을 어기고 자신의 뜻대로 경기를 진행하는 일은 군대에서 하극상에 해당하는 일이다.
만약 결과가 좋지 않으면 감독은 감독대로 욕을 먹을 것이고, 선수는 선수대로 욕을 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결과는 다행히 좋았다. 바뀐 투수의 초구를 공략하라는 야구계의 격언대로 서용빈은 좌완투수 성준의 초구를 노렸고 역전 2루타를 날려 팀은 역전승을 거뒀다.
정규 시즌에서는 3할 5푼을 치던 팀의 4번 타자가 포스트 시즌에 접어들자 1할대의 타율에 허덕인다. 결정적인 순간에 내야 땅볼, 병살타, 삼진아웃을 당하기 일쑤다. 감독은 고민한다. 교체를 해야 할지 믿고 기다려야 할지에 대해서 말이다. 그날의 타격 감각 좋은 선수로 교체하면 당장 그 상황에서는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을 것이다. 1경기를 잡을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팀의 중심 타자를 교체한다는 것은 조직 생활로 보자면 팀장의 목을 치는 최악의 구조 조정이 될 수도 있다. 그건 다른 선수들의 사기를 저하시키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감독은 팀의 4번 타자를 쉽게 교체하지 못한다.
가장 짜릿한 순간은 1할대의 타율에 허덕이던 팀의 4번 타자가 9회 말 투아웃 상황에서 역전 만루 홈런을 치며 경기를 뒤집은 이후 이후의 모든 경기에서 승리를 이끌며 팀을 한국시리즈 우승으로 만드는 경우일 것이다.
감독의 스타일도 다양하다. 작전을 많이 구사하는 감독이 있는 반면에 믿음의 야구, 뚝심의 야구를 구사하는 감독도 있다. 어느 감독 스타일이 정답이라고 함부로 말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감독이 선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고 인내하지 않는다면 그 팀은 절대 강해질 수 없다는 것이다.
믿음
내가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을 돌이켜 생각하면 가장 고마웠던 대표는 업무의 전문성 측면에서 아직 부족한 게 많은 나를 믿고 프로젝트에 투입시켜 기다려주었던 나의 첫 회사 대표였다. 당시 나는 정말 열심히 공부하며 일했다. 클라이언트를 대할 때도 회사를 대표한다는 책임감으로 임했고, 부족한 나의 실력을 보충하기 위해 매일 책을 읽고 퇴근 후에도 실습을 하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주 7일 근무도 행복해하면서 회사를 다녔으니까. 다행히 결과는 괜찮았다.
그 프로젝트 하나로 인해서 나는 업무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많이 성장할 수 있었다. 입장을 바꿔서 내가 만약 똑같은 상황에 처해있다면 나의 직원에게 그런 믿음으로 일을 맡길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자문한다면 쉽게 YES라고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최고의 프로야구 선수(직원)를 만드는 것은 선수 개인의 피나는 노력과 열정 그리고 타고난 재능도 필요하겠지만 선수(직원)에 대한 감독(대표)의 믿음과 인내가 완성한 합작품인 것이다.
이제는 과일 장수인 나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이번에는 타자다. 야구에서 3할 타자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10번 타석에 들어서서 안타 3개만 때려내도 훌륭한 선수로 인정을 받는다. 10할 타자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과일장수를 시작했지만 지금의 나의 목표는 7할이다. 동시에 10년째 슬럼프 중인 과일장수다.
'작년보다 맛이 없는 것 같아요' , '작년에 먹어보고 기대하고 주문했는데 올해는 실망스럽네요'와 같은 피드백을 받을 때가 이 일을 하면서 가장 괴로운 순간이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공산품이 아닌 이상 작년과 똑같은 맛을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럴 때는 프로야구 선수들이 부럽기도 하다. 최소한 피나는 연습과 노력을 해볼 수는 있으니까. 농사의 반 이상은 자연과 함께 만들어내는 공동작업이기 때문에 연습과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불가항력의 변수가 존재한다.
나는 10할 타자가 되고 싶었던
10년째 슬럼프 중인 과일장수다
그 날의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것이 팬들의 입장에서는 가장 바라는 결과일 수 있지만 한 시즌을 치러야 하는 감독의 입장에서는 한 경기를 포기하더라도 시즌을 위한 선택을 해야 할 때가 많다. 과일 장수인 나에게 팬들은 소비자들이고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운명이다. 내가 타율을 높일수록 소비자들은 좋아하지만 농민들을 힘들게 한다. 그래서 나는 과일장수를 하는 것과 프로야구팀을 운영하는 것과 조직의 리더로 직원을 대하는 것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팀의 주전 선수를 교체하고 대타를 집어넣을 것이냐 아니면 삼진을 당하더라도 그 선수를 믿고 기다릴 것이냐에 대한 결정은 나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농사라는 것은 물론 기술적인 부분도 있지만 날씨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에 아무리 농사를 잘 짓는 농민이라도 날씨가 받쳐주지 않는 해의 과일은 맛이 없을 수 있다. 그걸 팔아야 하는 것이 또한 과일장수의 숙명이기도 하다.
올해도 내가 판매했던 총 9가지 복숭아 중 3번 타자 룽의택골드(용택골드)는 폭염으로 인한 핵할로 수확을 포기해야만 했고, 경기를 깔끔하게 마무리해줄 것으로 기대했던 마지막 9번 타자 장호원 황도는 우천과 태풍으로 인해 수확을 포기해야만 했다.
시즌 아웃=수확 포기
야구에 비유하자면 경기중 부상으로 인해 그 시즌을 접어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 과일에서는 심심치 않게 발생을 한다. 물론 선수들이 부상을 당하는 것도 전혀 예측되지 않고 갑작스럽게 찾아오듯이 과일의 운명도 오직 날씨에 따라서 흥망성쇠가 결정이 된다.
일을 시작하고 초창기에는 조금이라도 맛이 떨어지는 그런 과일은 팔지 않으려고 했다. 단 한 명의 손님에게도 불만족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게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했고, 그것이 나의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착각했다. 삶이 참 전쟁 같고 피곤했다. 돌이켜보건대 그건 굉장히 부끄러운 일이었다. 농민이 처한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철저하게 소비자에게 칭찬을 받아야겠다는 생각만 했던 것이다. 단물만 쏙 빨아먹겠다고 하는 다분히 이기주의적이고 얌체 같은 심보였다.
처음에 소비자들이 우리 가게에 열광했던 이유는 10할에 가까운 타율 때문이었다. 그러나 돌이켜보건대 그건 농민들에게는 너무 가혹한 방법이었다. 내가 타율을 높이려고 하면 할수록 소비자는 좋아하겠지만, 농부들과의 협력관계에는 금이 간다. 선수들을 키우고 함께 가는 동료 혹은 파트너로 대하지 않고 오직 나의 성과만을 만들어내기 위한 몹시 이기적인 방법이었다. 노동자들의 희생을 강요하여 좋은 소비자들의 평가로 커가는 회사가 되고자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때로는 팬들보다는 선수를 먼저 생각해야 할 때도 있는 것이다.
타율보다는 선수가 우선
3년 동안 소비자들에게 최고의 맛이라고 평가를 받은 농민의 과일이 가뭄, 장마, 태풍 등의 자연적인 현상으로 인해 맛이 떨어진 경우가 어쩔 수 없이 발생을 한다. 그 순간 나는 결정을 해야 한다. 소비자들에게 욕을 먹을 것을 감수하며 그 농민의 과일을 팔 것인지? 아니면 그해 그나마 날씨로 인한 피해를 덜 받은 농민의 과일을 찾아서 소비자들에게 선보여야 할지에 대해서 말이다.
지금의 나는 당연히 전자의 방법을 택하고 있고, 진정한 팬이라면 그 과정 또한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과일을 판매하고 있다. 팬들은 새로 생기기도 하고 잃기도 한다. 그러나 선수는 컨디션이 좋을 때나 좋지 않을 때나 내가 안고 가야 할 동료이고 파트너다. 나에게는 농민들이 그렇다. 때로는 외부적인 요인으로 좋은 경기를 못 보여줄 수도 있다. 날씨로 인해 과일맛이 예년만 못할 때가 있는 것처럼. 그럴 때마다 선수를(농부)를 교체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선택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다.
100%의 손님을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다. 그건 분명히 인정해야 한다. 내가 존경하는 초콜릿 가게를 운영하시는 대표님이 예전에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남기신 적이 있다.
"모든 손님의 취향을 만족시키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반 이상이 좋아라 하면 간다."
올해로 17년째 가게를 운영하시는 이분의 목표는 5할이다. 7할을 욕심내는 나 자신을 돌아보며 나는 아직 한참 멀었다는 것을 느끼며, 늘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 인생의 스승들이 주변에 있음에 감사한다.
드라마 검블유에서 바로 대표 브라이언이 남긴 대사는 나에게 많은 위로가 되었다. 10할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난 뒤로는 마음이 조금 편해진 것 같다. 회사에서 직원을 바라보는 관점도 나는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 '팀' 선수들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최악의 순간 방출(퇴사)을 선택해야 할 때도 있지만 서로 믿고 의지하는 과정 속에 대표나 직원이나 모두 성장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이 팀이고 조직이다.
나는 이제 더 이상 10할을 꿈꾸지 않는다. 슬럼프를 벗어나는 길이 10할을 치는 것이라면 난 앞으로도 계속 슬럼프를 겪는 길을 택하려고 한다. 함께 살아가는 세상 아닌가?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채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10년 차에 접어든다.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농산물 유통구조는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 투성이었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외모 지상주의'가 농산물 시장에서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나는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했다. 나는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아울러 농부들의 수고스러움에 대한 ‘가치’를 ‘같이’할 수 있도록 농부의 마음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려고 한다. ‘농사 안 짓는 농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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