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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씨아저씨 Nov 08. 2018

브랜딩과 디자인

공씨아저씨네 리브랜딩 작업일지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채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7년 차에 접어든다.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농산물 유통구조는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 투성이었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외모 지상주의'가 농산물 시장에서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나는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했다.


리브랜딩의 시작

올해로 8년 차를 맞이하고 있는 '상식적인 과일가게, 공씨아저씨네'.


기존 공씨아저씨네 CI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시절 아는 분께 부탁해서 만든 공씨아저씨네 CI. '친근한 과일가게 아저씨'의 이미지의 로고 하나 만든것 외에는 아무런 준비도 계획도 없이 그렇게 사업을 시작하였다. 체계적이고 거창한 사업계획을 세우고 시작한 것도 아니고, 훌륭한 철학이나 의식을 가지고 시작을 한 것도 아니었다. 경력이 쌓이면서 비로소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들어갔고, 공씨아저씨네의 철학도 조금씩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을 비주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장치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것이 이번에 리브랜딩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였다. 단순히 로고를 바꾸려고 한 게 아니다. 사실 브랜딩을 단순한 디자인 작업, 디자인 작업이라고 하는 것을 단순히 예쁜 로고 하나 만드는 것으로 오해하고 계신 분들이 많다.


사업을 처음 시작하시는 분들은 단순히 로고 하나 만들어서 사업을 시작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반드시 브랜딩 작업을 먼저 진행하셔야 한다는 것과 디자이너는 단지 예쁜 그림을 그리고 예쁜 글씨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먼저 말하고 싶다. 사실 그것이 이 글을 쓰는 목적이다.


심벌(Symbol) = 심벌마크
= 상징, 상징물, 사전 상의 의미처럼 기업이나 브랜드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시각적 상징물= 로고에서 로고타입을 제외한 이미지만 있는 것, 조금 더 명확하고 간결하게 인식될 수 있는 효과를 기대

로고타입(Logotype) = 워드마크
= 언어, 활자, 기업이나 브랜드의 상호를 디자인한 문자= 특정한 서체를 이용하여 시각적으로 표현

로고(Logo) = 심벌 + 로고타입 = 브랜드마크 = 시그니처(가로형, 세로형 조합해 논 형태)
= 로고는 심벌, 로고타입 등의 모든 것을 통칭하는 단어
CI, BI는 모두 로고, 브랜드마크, 워드마크 등의 용어로 불린다.



누구와 함께 작업을 할 것인가?

이번 리브랜딩 작업을 결심하며 누구와 함께 작업을 할지에 대한 고민이 가장 컸다. 사진을 전공하고, 관련 일들을 오래 해왔던지라 주변에 아는 디자이너는 많지만, 막상 친분이 있고 친한 디자이너가 내 작업을 가장 잘할 수 있는 디자이너라고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나만큼 우리 회사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은 없겠지만, 최소한 우리 회사가 하고자 하는 일에 공감하고 응원하며 많은 관심을 가진 디자이너가 맡아서 작업을 한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라 판단했다.


적임자라고 생각한 디자이너에게 연락을 취했고, 디자이너분 역시 기다렸다는 듯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작업을 수락하였다. 안 그래도 본인도 공씨아저씨네 리브랜딩을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고 예전부터 생각하고 계셨다고 했다. 작업을 의뢰하고 수차례 미팅을 가졌다. 이미 우리 회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디자이너였기에 우리 회사에 대해 기본 정보는 가지고 있었지만 백지상태에서 모든 걸 새로 시작했다.



작업 일지

4월 2일 (첫 미팅)

첫 미팅에서는 마치 취조를 당하는 듯 끊임없는 질문을 받았다. 공씨아저씨네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문장으로 설명을 해야 했고, 핵심 단어로 나열도 해보았다. 아울러 새로운 CI가 나오면 웹에서만 활용을 할지 리플릿이나 다른 인쇄물로 활용을 할지에 대해서도 질문을 받았다. 추후에 오프라인 매장을 낼 계획이 있는지도 물어봤다. 디자이너를 만난 건지 경찰을 만나 취조를 당한 건지 헷갈릴 정도로 디자이너는 나에게 최대한 많은 정보를 뽑으려고 했다. 나 역시 그동안의 생각을 정리하고 다듬을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내가 리브랜딩과 함께 웹사이트 리뉴얼 작업을 진행하면서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는 다음과 같았다


1. 미니멀리즘
2. 공씨아저씨네가 추구하는 바가 사이트에 시각적으로 보일 것


그렇다면 공씨아저씨네가 추구하는 가치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나는 '건조함 (Dry)'이라고 대답했다.


공씨아저씨네는 소비자들의 입장에서는 많은 불편함들이 있다. 소비자보다는 농부들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고, 제철 과일만 판매하기 때문에 판매하는 상품수가 적고, 대부분 예약 주문 방식으로 판매를 하기 때문에 주문에서 배송까지 짧으면 일주일 길면 한 달까지도 기다려야 한다. 다소(?) 불편한 쇼핑몰이다. 소비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불친절함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다. 과도한 친절함과 불친절함의 그 중간 지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하되 딱 거기까지만 하자. 그것을 나는 '건조함'이라고 봤다. 


길고 긴 인터뷰를 마치고 디자이너는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우선 '로고 타입'디자인부터 진행하겠다고했다. 그리고 나는 기다렸다.


4월 18일

첫 미팅 이후 처음으로 디자이너에게 카톡이 왔다. 작업 진행 과정을 찍은 사진과 함께 기존 font 중에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의 느낌과 가장 비슷한 폰트를 몇 개 골라달라고 했다. 거기에서 출발을 하겠다고 했다.



4월 30일 

드디어 로고 타입의 첫 시안이 메일로 전달되었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고르시겠어요? 저는 무엇을 골랐을까요? 

3개를 골라서 디자이너에게 전달을 하였다. 디자이너는 '네모꼴'과 '탈네모꼴' 디자인에 대해서 나에게 설명을 해주었다. 네모꼴이란 직사각형 안에 꽉 차에 들어오는 타입, 탈네모꼴은 직사각형에서 벗어나 있는 타입이라고 했다. 탈네모꼴은 한눈에 확 들어와서 시선을 끄는 효과는 있으나 오래 보면 조금 질리는 단점에 대해서 설명을 해주었다. 아울러 variation의 한계점에 대해서도 말이다. 


내가 고른 3개 중에 2개가 탈네모꼴이었기 때문이었다. 우선 탈네모꼴 1개와 네모꼴 1개로 2차 작업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심벌과 함께 진행한 작업을 보면 느낌이 또 다를 것이라는 디자이너의 설명과 함께 나는 또 기다렸다.


5월 2일 

디자이너에게 연락이 왔다. 드디어 결과물이 나왔나 보다. PT를 진행하겠다고 했다. 아마 디자이너는 이미 심벌까지 준비해두었던 모양이다. 이 짧은 기간에 작업을 완성한 걸 보면 말이다. 나중에 작업 노트를 좀 보고 싶다고 했더니 이런 노트를 보여주었다. 특별히 보여주는 거라고 생색을 내기도 했다. 그 사이에 디자이너에게는 이런 고민의 시간이 있었던 것이다. 가슴이 뭉클했다.


+디자이너의 노트

<노트 제공 : 스튜디오 허밍>


PT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했다. 사실 이번 리브랜딩 작업을 진행하면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브랜딩 작업을 정말 하길 잘했구나 싶은 순간이기도 했다. 그 이유는 로고타입과 심벌이 탄생하기까지의 과정과 왜 그러한 심벌과 로고타입을 만들게 되었는지에 대한 합리적인 이유와 디자인적으로 완성되는 그 과정에 대한 설명 때문이었다. 나 스스로도 피티를 들으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고, 이 작업을 준비해온 디자이너의 시간들이 너무나 고맙게 느껴졌다.


일반적으로 선택받지 않은 디자인 시안을 외부에 공개하는 경우는 없으나, 이 글을 쓰는 의도를 디자이너에게 설명하였고 시안을 공개해도 좋다는 승낙을 받았다. 


디자이너는 4개의 시안을 제시했다. 다음과 같다. 








피티를 마치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4개의 안이 모두 버리기 아까운 훌륭한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디자이너가 조금은 원망스럽기까지 한 행복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사실 사진도 그렇지만 만드는 것도 어렵지만 좋은 것을 고르는 것 역시 어려운 작업이다. 


나는 처음으로 돌아가서 생각했다. 작업을 시작하면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엇이었지?


1. 미니멀리즘
2. 공씨아저씨네가 추구하는 바가 사이트에 시각적으로 보일 것


이 두 가지의 기준에서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 시그니처(심벌+로고타입)가 어디에 사용될지 체크를 하기 시작했다. 웹사이트 이외에 다른 곳에 사용될 일이 많을까? 명함 / 포스터 제작 시 로고 사용 / 각종 SNS 프로필 등등. 다른 건 더 없을까?


내 마음을 사로잡은 다양한 variation


공씨아저씨네는 온라인 커머스 사업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웹사이트에서 가장 돋보일 수 있고 그 기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것을 선택하는 게 맞겠다는 최종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나는 선택했다. 제안서에 첨부되어있던 활용 예시 한 페이지가 결정적이었다. 사실 이번에 진행한 리브랜딩 작업은 결국 이어서 진행할 웹사이트(쇼핑몰) 리뉴얼 작업을 위한 기초단계였다.


웹사이트 첫 화면을 기획한 결정적인 순간


이 페이지를 보고 나는 웹사이트 첫 페이지의 구성을 머릿속에 그렸다. 그리고 생각한 이미지를 대략 포토샵으로 작업해서 이렇게 만들었다. 웹에서 구현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상태였다. 시그니처를 작업할 때 variation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포토샵으로 작업한 기획한 웹페이지의 첫 화면


그리고 결국 이러한 웹사이트가 탄생하게 되었다. 처음 내가 기획했던 첫 페이지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선택한 심벌과 시그니처가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확신하는 순간이었다. 


리뉴얼을 마친 '공씨아저씨네 웹사이트'



이렇게 공씨아저씨네의 리브랜딩 작업은 마무리되었다. 작업을 마무리하고 디자이너에게 깜짝 선물을 받았다. 제작한 공식 명함 외에 번외로 디자이너가 본인 마음대로 작업한 명함이었다. 난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공씨'아저씨네' 이기에 아재 개그가 허용되는 곳.


명함 번외편 아재개그 버전


마지막으로 브랜딩 작업을 진행해보고 싶으신 분들을 위해 몇 가지 꼭 지키셨으면 하는 점을 안내한다.




1. 내가 디자인을 하려고 하지 말자.

- 일반적으로 많이 나타나는 반응인데요. 디자인 작업을 하다 보면 클라이언트가 디자인을 하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폰트를 조금 더 키워주세요. 요건 요색으로 바꿔주세요. 자간을 조금 넓혀볼까요?' 등등. 그러실 거면 혼자 작업을 하세요. 디자이너는 왜 고용을 하셨나요? 디자이너가 사용한 폰트 종류, 폰트 크기, 폰트 컬러에는  다 합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너'님은 디자이너가 아니에요~


2. 좋은 파트너를 만나야 한다.

- 어떤 디자이너와 작업하느냐도 중요합니다. 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를 꼼꼼히 살펴보고 작업의 스타일이 내가 하고자 하는 바와 잘 맞을 것 같은지 미리 확인하세요. 나는 소프트한 이미지를 구현해야 되는데 디자이너의 포트폴리오를 보니 모두 다 하드한 느낌이더라... 그러면 다른 디자이너를 찾아보시는 게 좋습니다. 


작업 중간에 디자이너를 교체하는 것은 서로에게 상처를 줄 뿐입니다. 요즘은 비전공 디자이너도 많기에, 만약 작업을 맡기실 디자이너가 디자인 관련학과 전공자라면 어떤 분야의 디자인을 전공했는지도 한번 체크해보세요.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는지 제품 디자인을 전공했는지 등등 말이죠. 내가 의뢰하는 분야에 최적화된 분인지...


3.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디자이너를 끝까지 믿어야 한다.

- 가장 중요한 것은 디자이너에 대한 '믿음'입니다.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를 '갑'과 '을'의 관계로 바라보지 말고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생각을 하세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잖아요? 디자이너가 제안해준 시안에 뭔가 의견을 주실 때는 일단 칭찬부터 해주세요. 과도한 리액션이 더해지면 금상첨화겠지요. 그러면 디자이너도 더 신나서 작업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만 해줄거 두 개 세 개도 해줍니다. 


서비스업종에 종사하시는 분들을 대할 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우리는 당연히 좋은 서비스를 받아야 한다는 '갑'스러운 생각을 버리고 일단 그분을 기분 좋게 해 주세요. 그러면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지론이기도 합니다. 디자이너를 끝까지 믿으세요. 그것이 최선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는 시작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디자이너를 전적으로 믿었고,

작업하는 과정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웠고,

그러했기에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었다.




다음 편에는 리브랜딩 작업을 바탕으로 탄생한 공씨아저씨네 웹사이트 제작에 대한 과정을 정리해볼까 한다.


나는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아울러 농부들의 수고스러움에 대한 ‘가치’를 ‘같이’할 수 있도록 농부의 마음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려고 한다. ‘농사 안 짓는 농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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