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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씨아저씨 Jul 05. 2019

아빠가 포기한 건 뭐예요?

아빠의 성장통


중학교 1학년 큰 아들의 담임 선생님께 전화가 왔다. 친구 녀석이 자꾸 툭툭 치고 괴롭힌다는 이유로 녀석이 천구를 잡으러 다니다가 교실을 뛰어다녔는데 맘같이 친구가 잡히지 않자 친구의 필통을 집어던져서 필기도구가 다 부러졌다는 게 사건의 요약이다. 


또 하나. 체육 시간에 피구를 하던 중에 약간의 오해가 발생하여 체육 선생님께 혼이 좀 났는데 억울했던 녀석이 선생님을 노려보는 소심한 반항을 하다가 체육 선생님과 약간의 감정적 충돌이 있었던 모양이다. 최근 3일간에 있었던 이야기다. 난 아이의 말을 전적으로 믿었고, 다행히 오해는 풀리고 일은 잘 해결되었다.


그 상황을 옆에서 지켜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잘잘못을 명확히 따지거나 사건의 명확한 진실을 밝혀내기는 어려우나 녀석이 점차 사춘기에 접어들고 있구나 싶었다. 사실 이런 문제로 녀석을 혼낼 생각은 전혀 없었다. 담임선생님은 아이의 폭력성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조심스레 이야기를 했지만 난 사내아이들이 커가면서 이 정도는 충분히 생길 수 있는 문제라 생각했다. 아울러 담임 선생님은 혹시 집안에서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를 염려했다. 


나름 아이의 인성을 강조하고 정신이 건강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 노력을 했고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그러나 그건 오직 나의 생각일 뿐, 아이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문제였다. 나는 어떤 아빠인가? 아빠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는가에 대해서 생각이 깊어지기 시작했다. 늘 원칙과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나치게 고지식한 아빠의 성향 탓에 아직 휴대폰도 없는 녀석. 혹시 나 때문에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아 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학교에서 저런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밖에 없었다.



오늘은 아들 녀석과의 이야기를 꺼내볼까 한다. 사실 이건 나에 대한 이야기다. 이야기를 하다 보면 나의 개인적인 치부가 드러날 수도 있을 테고 개인적인 가족사가 어쩔 수 없이 공개될 수밖에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이건 그동안 내가 아이를 키웠던 과정을 뒤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스스로의 다짐이기도 하기에... 


어떤 아빠가 될 것인가?


나는 어떤 아빠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이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많이 고민했던 부분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아버지가 회사 때문에 지방을 돌며 혼자 생활하신 탓에 사춘기 시절을 아버지와 보낸 시간이 없는 나의 개인적인 가족사 탓에 내가 아빠가 되면 아이와 많은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무의식이 늘 나를 지배해왔었다. 


그래서 막연하게 '좋은 아빠',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은 로망은 있었지만 그것을 실천하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내가 육아를 전적으로 담당해서 아이를 키운 것은 아니지만 나름 아이에 대한 애착이 좀 강한 편이라 주변의 다른 아빠들보다는 아이에 대한 관심과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편이라고 생각해왔다. 워크홀릭이었던 내가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이후부터 주말에는 절대 출근하지 않고 퇴근 이후에는 전화기를 처박아 놓고 전화도 받지 않는 습관이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으니 말이다.



직장을 그만두고 개인사업을 시작한 것이 아이 때문이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 당시 내 삶의 선택지의 중심에 녀석이 있었음은 분명했다. 돈 잘 버는 바쁜 아빠가 될 것이냐? 돈은 조금 못 벌어도 아이와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낼 수 있는 아빠가 될 것이냐? 가 나로서는 중요한 선택사항이었다. 물론 두 가지 다 잘하는 아빠들도 있겠지만 나는 둘 다 잘할 자신은 없었다.


나는 아이가 어렸을 적 아빠와 함께 보낸 시간의 총량에 큰 비중을 두고 있는 편이다. 물론 아직은 현재 진행형이다. 양보다는 질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지만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없고, 마음만 먹으면 평일에도 언제든 휴가를 낼 수 있는 상황을 만든 덕분에 어린 시절 아이와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고, 그 시간이 나에게는 소중했다. 


큰 아이는 올해 중학교 1학년이 되었다. 


큰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나는 그 과정을 꼭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고, 부족하지만 실행에 옮겼다. 육아 일기까지는 아니지만 병원에서 녀석의 초음파 사진을 받아온 날이면 그날의 느낌을 사진과 함께 간단히 기록해두었다. 아이가 커서 나중에 사춘기가 되었을 때 보여줄 요량으로 만들어 놓은 아빠표 일기였는데 엄마 아빠가 널 이렇게 아끼고 사랑했었다. 너는 이런 축복 속에 태어난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녀석이 이 노트를 보고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첫째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기록했던 일기장


어떠한 말보다 더 큰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바람이었다. 그래서 아직 이 일기장은 아이에게 보여주지 않았다. 약효는 딱 1회만 존재할 것이기에 오픈하는 타이밍을 언제로 정할지 상황을 계속 보고 있는 중이다. 최근의 여러 가지 변화가 녀석에게 곧 이 일기장을 보여줄 순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는 요즘이다. 물론 그 결과가 내가 예상한 대로 흘러갈지 여부는 확신할 수 없다. 아무런 반응이 없다면 솔직히 좀 멘붕이 올 것도 같지만 말이다.




놀아주다


아이가 어렸을 때 나는 아이와 놀아주었던 것 같다. 이건 분명히 '놀아주다'이다. '함께' 하는 것이 아닌 일방적인 give였기 때문에 이건 '놀아주다'라고 표현하는 게 맞다. 물론 개인적인 차이는 있을 것이다. 이 시간 역시 '놀아주다'가 아닌 '놀다'로 보낸 아빠도 있을 테니까... 아이와 놀다 지쳐 잠들기 일쑤였다.


부끄럽지만 아이와 놀다 동반 떡실신


놀이터에 있을 때도 아이는 언제나 나의 손을 잡고 있었고, 나는 아이에게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줘야 했고, 스케이트 타는 법을 가르쳐 줘야 했다.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지 아이가 커가는 것을 보면서 느꼈던 뿌듯함 정도였다. 


자전거의 시작은 이렇게



놀다


변화의 시기가 찾아온 것은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아이는 점차 컸고, 컸다는 것은 힘도 세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날 선물로 야구 글러브를 사주었다. 야구를 좋아하는 나는 아들 녀석과 캐치볼을 하는 주말 풍경을 늘 상상해왔다. 최대의 로망이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어떤 운동을 해도 그동안 나는 늘 코치나 헬퍼의 역할만 해왔다고 하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부터는 이제 아이와 give & take가 되기 시작했다. 아이가 던진 공을 받는 나의 글러브에서 조금씩 힘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던진 공도 제법 잘 받기 시작했다. 캐치볼을 하기 위해 평일에도 일찍 퇴근해서 녀석과 노는 시간이 점점 늘어났다. 이제 '놀아주다'에서 '놀다'로 변화하는 순간이었다. 내가 함께 운동을 한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고, 나 역시 즐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빠의 무릎에 앉아 야구를 보던 녀석이 이제 파울볼을 기다린다


해마다 녀석의 글러브는 업그레이드되었고, 4학년이 되자 녀석과 주고받던 소프트 볼은 하드 볼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딱딱한 공에 약간의 겁을 내던 녀석도 이내 하드볼에 적응했고, 묵직한 공이 글러브에 들어왔을 때의 그 손맛을 녀석도 알고야 말았다. 녀석의 구속도 빨라졌고, 제구력도 좋아졌다. 어느덧 나는 포수가 되어있었다. 녀석과 함께 글러브를 구경하러 야구용품 전문점에도 갔다. 또래의 아이들에 비해서도 월등히 앞서갔던 녀석은 동네 야구팀의 에이스로 자리매김하였다. 


1년 전 글러브와 지금의 글러브


야구뿐만 아니라 축구, 배드민턴, 볼링, 탁구까지...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의 종류는 늘어갔다. 더운 여름날에는 아파트 단지에서 물총 싸움을 했고 눈 내리는 겨울에는 눈썰매도 타고 눈싸움도 했다.


여름에는 물총놀이 겨울에는 눈썰매



놀아주라


그러던 녀석이 중학교에 입학하자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야구보다는 농구를 좋아하기 시작했고, 아빠와 함께 하는 야구보다는 친구와 함께 하는 농구에 더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아빠는 조금씩 서운해지기 시작했지만, 언젠가 녀석을 떠나보내야 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늘 생각해왔다. 그 순간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음을 난 느낄 수 있었다. 


커리가 되고 싶다는 녀석들


아직까지는 아빠랑 함께 운동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말하는 녀석들이지만 녀석에게 놀아달라고 부탁해야 하는 시기가 머지않았음을 직감적으로 느낀다. 사실은 이제부터가 진짜 아빠가 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기인 듯하다. 녀석이 커가는 과정을 인내심을 가지고 묵묵히 지켜보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아닐는지. 사실 가장 어려운 일 같기도 하다. 혹시라도 기다리지 못하고 녀석들에게 놀아달라고 조르고 있지는 않을지...


큰 아들 녀석이 초등학교 6학년 때 학교에서 과제를 하나 받아왔다. 그리곤 녀석은 나에게 물었다.


아빠가 저 때문에 포기한 건 뭐예요?


그때 난 이렇게 대답했다. 


아빠는 널 낳고 포기한 건 하나도 없단다.
그건 아빠의 '선택'이었어.
 
널 낳고 키우면서 물론 힘들 때도 많았고
아빠가 하고 싶은 것을 못하는 때도 많았지.
그러나 
그 시간 역시 아빠에게는 큰 행복이었어.

아빠는 일하는 것보다, 돈을 버는 것보다
너와 함께 보냈던 시간이 훨씬 값지고 즐거웠거든.
그래서 아빠는 '포기'라는 단어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

그리고 아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것은 바로 너였으니까...


ⓒ 박향주


내가 좋은 아빠인지,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지 난 지금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다. 아직 아이들은 고작 중학교 1학년과 초등학교 4학년이고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를 학원에 보내본 적 없는(앞으로도 보낼 생각 없는) 나의 교육방식과 자유롭게 아이를 키우는 양육방식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지만 아이가 잘 자랐는지의 여부를 녀석이 좋은 대학에 가고 남들 보기에 번듯한 직장에 취업하는 것으로만 평가받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사람은 인성이 먼저라는 나의 신념은 변함이 없다. 


부모는 아이가 크는 딱 고만큼만 자란다는 이야기가 어느 날 가슴에 크게 다가왔다. 큰 아이가 중학교 1학년. 나도 딱 고만큼만 성장한 것 같다. 중학교 1학년인 나의 성장통은 계속될 것이다. 


*아이들의 초상권 보호를 위해 아이들과 함께한 사진을 많이 첨부하지 않았고, 아이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를 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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