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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씨아저씨 Oct 02. 2019

모카포트는 죄가 없어요

배꼽이 배보다 크면 좀 어때요?

공카페 이야기


2019년 9월 18일부터 10월 2일까지 보름간의 공카페 이야기입니다. 생일 선물로 받은 모카포트 하나가 바꿔놓은 공공그라운드에서의 일상을 일기처럼 기록해보았습니다. 삶의 작은 변화가 이렇게 큰 행복을 줄 수도 있음에 감사하며 여러분들도 무료한 일상에 작은 활력소를 찾으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기록합니다. 공카페의 이야기는 아직 현재 진행형입니다.



2019XXxx


이야기를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올해 4월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제 나이 마흔셋. 올봄 이탈리아 여행을 다녀온 이후에 드디어 에스프레소 맛에 눈을 떴습니다. 그 전에도 한국에서 몇 번 마셔본 적은 있는데 이 개미 오줌만 한 양에 맛도 쓴걸 왜 비싼 돈을 주고 먹는지 사실 이해를 하지 못했습니다. 로마에 도착한 다음날 이른 아침 판테온 근처 타짜도르에서 마신 에스프레소 한 잔은 제 온몸의 세포를 깨어나게 하는 신박한 경험이었습니다.


에스프레소(Espresso)는 곱게 갈아 압축한 원두가루에 뜨거운 물을 고압으로 통과시켜 뽑아낸 이탈리안 정통 커피로 데미타세(demitasse)에 담아서 마셔야 제맛을 느낄 수 있다. [두산 백과]
2019년 4월 로마 타짜도르(TAZZADORO) 앞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이후 한동안 이탈리아 병에 시달렸었는데 제일 많이 생각나는 것이 에스프레소였습니다. 신기하게도 매일 아침 에스프레소 한 잔이 간절하게 생각나더라고요. 에스프레소가 몸에 들어와야 비로소 온몸의 세포들이 하루를 시작할 준비를 하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늦바람이 무섭다고...


제 사무실이 위치한 대학로 근처에 에스프레소 잘하는 집을 알아보니 많은 분들이 '학림' 에스프레소를 추천해주셔서 한 동안 학림을 다녔습니다. '학림' 에스프레소는 더블(도피오)로 나와서 양이 조금 많았고, 가격(5,000원) 면에서도 조금 부담이 된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에스프레소는 1유로도 되지 않는 그냥 한입에 털어 넣는 그런 가벼운 느낌으로 마셨으니까요. 그리고 이후에 알게 된 곳이 '보통의'라는 낙산공원 올라가는 초입에 위치한 아주 작은 커피가게입니다. 양도 적당하고 가격도 학림보다는 저렴한 편(3,000원)이라 그 뒤로 지금까지 거의 매일 아침을 '보통의' 에스프레소와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마시던 에스프레소 맛에 가장 가까웠습니다.


'학림' 에스프레소(좌) / '보통의' 에스프레소(우)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사건은 시작되었습니다.



20190918


추석 연휴가 끝나고 일상으로 복귀해서 조금은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날. 점심 먹으러 나갔다 왔더니 책상 위에 작은 상자 하나가 올려져 있었습니다. 제 생일이 추석 연휴 기간이었던 탓에 그냥 넘어간 게 미안했는지 옆 회사에 다니는(참고로 제가 일하는 곳은 '공공그라운드'라고 하는 코워킹 스페이스입니다) 오래 알고 지낸 후배가 놓고 간 선물이었는데요. 포장을 뜯어보니 비알레띠 모카포트(Moka Pot)였습니다.

모카포트 : 증기를 이용하여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주전자 모양의 기구



사실 올봄 이탈리아 여행을 가기 전에 이 후배로부터 모카포트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에어비앤비에는 대부분 모카포트가 있을 거라며 모카포트는 이탈리아 가정에는 필수적으로 갖고 있는 에스프레소 추출기라고 설명을 해줬습니다. 대략의 사용법까지 설명을 들었으나 막상 이탈리아에 가서는 써봐야겠다는 엄두가 나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이 후배는 이탈리아에서 세 달간 여행한 경험도 있고, 이탈리아를 사랑해서 이탈리아에 꽤 자주 다니는 그리고 카페에서 일한 경력도 있을 정도로 커피에는 나름 일가견이 있는 후배입니다. 이 후배가 이후에 등장하게 될 장사장입니다.


이탈리아 여행을 하며 에스프레소 맛에 눈을 뜨게 되었고 곳곳에서 보이는 모카포트를 보고 한국에 하나 사갈까 싶었지만 끝내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잘 해먹을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 모카포트를 생일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신기했습니다. 녀석은 결국 저를 만날 운명이었던 것일까요?


생일 선물로 받은 모카포트


그러나 이어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건 재질이 알루미늄이라 가스불에서만 끓여야 하고 인덕션에서는 사용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참고로 저희 집 주방은 인덕션입니다. 그냥 멋진 장식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습니다. 후배는 인덕션용 모카포트로 바꿔 주겠다고 했지만 선물로 받은걸 다시 교환해서 받기가 미안했습니다. 전 옛날 사람이라서요. 많지 않은 월급에 그래도 선배 생일이라고 해준 선물인데 애물단지 취급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잘 써보기로요.


사실 집에서 인덕션 위에서 추출하는 에스프레소보다는 공공그라운드 옥상 야외 데크에서 매일 아침 에스프레소를 내려 먹는 게 훨씬 더 좋겠더라고요. 상상만 해도 막 행복해지더군요. 그래서 휴대용 버너를 하나 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때만 해도 배꼽이 커져봤자 배꼽이지 했습니다.  


배꼽이 배보다 커지기 시작했다


휴대용 미니 버너의 세계는 신세계더군요.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버너 (사진 : PLOG 공식몰)


검색하다가 처음으로 마주친 이 버너가 제 마음을 확 사로잡았습니다. 기존 코베아 제품에 손잡이와 옆면을 나무로 튜닝한 것인데 여자분들이 옷이나 구두를 보면 '날 데려가요'라고 말한다는 이야기가 이런 기분이구나 싶었습니다. 메탈로만 된 원래 코베아 버너는 3만 원 정도였지만, 저 나무 덕택에 이 제품은 78,000원이 되더군요. 구매 직전까지 갔다가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검색을 시작했습니다. 참고로 전 쇼핑을 잘 못해요. 돈 잘 안 쓰는 절약가 이기도 하거든요.


그러다 만난 녀석이 요 녀석입니다. 지라프 헤코 미니. 가격은 3만 원 정도. 저 위에 있는 녀석이 계속 눈앞에서 아른거렸지만 일단 이 정도선에서 만족하기로 하고 구매 클릭! 이것이 쇼ㅑ핑의 본격적인 시작일 줄은 이때만 해도 몰랐습니다.

 

차선으로 선택한 지라프 미니 버너 (사진 : giraffe 공식몰)



20190920


주문하고 하루가 지나자 드디어 미니 버너가 도착했습니다. 포장을 뜯어보니 생각보다 훨씬 귀엽고 예뻤습니다. 우선 당장 커피를 마시기 위해 원두가 필요했습니다. 평소 에스프레소 마시러 다녔던 ‘보통의’에 가서 모카포트용 분쇄 원두를 200g 사 왔습니다. 이제 드디어 에스프레소를 제 손으로 직접 올려먹을 수 있는 준비가 되었습니다. (왜 올려먹는다는 표현을 했는지는 추출되는 과정을 담은 아래의 동영상을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세척한 모카포트와 '보통의' 원두


버너의 불을 켜고 물을 끓이기 시작합니다. 불의 세기에 따라 다르겠지만 3분 정도가 지나자 추출된 커피가 상단의 컨테이너로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이탈리아에 정통한 장사장님은 로마의 트레비 분수가 모카포트를 본떠서 만들었다는 뻥카를 날리셨습니다. 전혀 근거 없는 정보이니 혹시라도 오해하시는 분들 없으시길 바랍니다.


에스프레소 추출 중


압력으로 커피가 추출되고 있는 모카포트


처음 맛본 모카포트 에스프레소의 맛은 기계로 내린 것보다는 조금 순한 맛이었습니다. 특히 한국에 와서 먹은 에스프레소들이 이탈리아에서 먹던 것보다 조금 더 진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 정도 순한 맛도 꽤 괜찮았습니다. 캡슐 머신으로 먹는 에스프레소와는 비할바가 아니었습니다.


모카포트로 올린 에스프레소가 조금 더 순한 것은 압력에 의한 것이라고 합니다. 보통 카페에 구비되어있는 에스프레소 머신의 압력이 9 bar 이상인데 반해 모카포트는 1~3 bar정도라고 하더라고요. 크레마가 약한 이유도 이 낮은 압력에 있다고 합니다.


첫 에스프레소 맛을 보는 공사장과 장사장 (사진 : 디니)


도심 한복판 건물 옥상 데크에서 모카포트로 올려먹는 커피 맛은 일품이었습니다. 일 년 중에 가장 날씨 좋은 요맘때 매일 야외에서 커피 한잔 마실 수 있는 행복은 공공그라운드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날씨가 조금 더 쌀쌀해지면 커피맛이 더 좋아질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으로 공카페가 문을 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곳은 카페가 되었고, 장사장님은 동업자가 되었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장사장의 이름이 설명이 되는 대목입니다.



20190923


주말을 보내고 돌아온 월요일. 공카페 영업 2일 차입니다. 베트남에 콩카페(CONG CAPHE)가 있다면 대학로에는 공카페(GONG CAPHE)가 있습니다. 공카페라는 이름은 이후에 등장하게 될 '앵무새 설탕' 공급책인 듀영이 아이디어를 주었습니다. 첫날 가장 아쉬웠던 것은 에스프레소 잔이었습니다. 일반 머그잔에 커피를 마시다 보니 분위기가 영 아니올시다 였습니다.



잔은 하나 있어야 되겠다 싶어 급한 대로 집에서 캡슐머신용으로 가지고 있는 잔을 하나 가져왔습니다. 아 그러고 보니 미니 버너에 장착한 연료에 대한 설명을 빼먹었네요. 역시 연료는 국민연료 썬연료입니다.


고작 영업 2일 차인 공카페의 장사장은 벌써 새로운 메뉴에 대한 고민을 시작합니다. 라테가 하나 있으면 어떨까요? 바로 편의점으로 달려가 우유를 사 옵니다. 그리고 붓습니다. 음 괜츈습니다. 이렇게 라테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공공그라운드에서 만든 공카페의 라테.  '공공그라테'로 정하기로 했습니다.


공공그라떼 신메뉴 개발중인 장사장


등장인물에 대한 이해를 위해 잠시 스포일러를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 등장하는 세명의 인물이 바로 훗날 '공카페X공공그라운드' 일일찻집을 함께 작당한 기획자이기도 합니다. 이 세명의 기획자는 공공그라운드에 입주한 입주사의 직원들입니다.


공카페 운영진의 기획회의



20190924


오늘도 아침은 에스프레소로 시작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새로운 손님이 오셨습니다. 장사장님의 친구 디니 님입니다. 장사장님과 같은 회사에 다니는 직원이고 공사장과 알고 지낸지도 벌써 5년이네요. 아래 사진 속에 오른손과 무릎+종아리 일부 등장하셨습니다. 한 잔은 에스프레소 잔에 담았는데 1잔은 일반 잔에... 에스프레소 잔이 2개는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집에서 가져온 에스프레소 잔이 얇은 편이라 입술이 잔에 닿을 때의 느낌이 살지를 않습니다. 에스프레소 잔을 사야겠습니다.



또 하나의 배꼽이 탄생할 예감입니다. 검색을 시작합니다. 절 데려가 주세요라고 외치는 잔을 발견하였습니다. 주저하지 않고 주문을 합니다. 주문할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전문가분들이 이야기해주셔서 알게되었지만 '안캅'이라는 이탈리아에서 유명한 브랜드라고 합니다. 아울러 야외에서 미니 버너를 사용하다 보니 바람이 불면 화력이 약해져서 바람막이도 같이 하나 주문을 하였습니다. 바로 캠핑 떠나도 될 것 같습니다.




20190925


옆 회사 직원이자 공카페의 단골손님 그리고 앵무새 설탕의 공급책 듀영님이 드디어 본격 등장할 차례입니다. 듀영님은 에스프레소를 마시기 시작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에스프레소 새내기입니다. 아직까지 설탕이 없으면 에스프레소를 마시지 못하는 본인을 위해 '새로운 세계의 백화점'에 가서 앵무새 설탕을 하나 사 왔습니다. 앵무새 설탕 한 박스로 공카페의 지분을 득한 공카페의 최대 수혜자이기도 합니다. 이로서 동업자가 한 명 늘었습니다.


앵무새 설탕 입고 완료


오늘은 장사장님이 공공그라테 레시피를 가다듬는 날입니다. 우유는 전자레인지에 데워서 라테 테스트에 돌입을 합니다. 전자레인지에 가열하는 것보다 끓이는 게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개발 중인 메뉴 '공공그라떼'


공카페 오픈 소식을 SNS를 통해서 보시곤 평소 알고 지내는 공정무역 '아름다운커피' 사무처장님(우윳빛깔 한수정)께서 커피를 후원해 주셨습니다. 모카포트용 분쇄 원두 외에 일반 원두도 같이 보내주셨습니다. 모카포트에는 곱게 분쇄된 커피만 쓸 수 있어서 일반 원두를 어디에 쓸까 고민하다 집에서 한 동안 잠자고 있던 마미체가 떠올랐습니다. 핸드 드립 커피는 이렇게 공카페의 메뉴에 추가 되었습니다.


갑자기 아메리카노는 왜 아메리카노라고 부를까 궁금해졌습니다. 이탈리아노도 아니고 말이죠. 아메리카노를 정의하면 어떤 커피지? 물을 탄 커피가 아메리카노니 메뉴명을 MULTAN COFFEE로 표기하면 더 어울릴 것 같았습니다. 인스타를 통해서 오픈 시간을 문의하는 분들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합니다.

 

아름다운커피에서 후원받은 원두와 마미체 커피 거름망



20190926


살림살이가 하루하루 조금씩 늘고 있습니다. 핸드드립 커피를 위해 집에서 가져온 마미체 덕분에 핸드밀과 드립포트를 꺼냈습니다. 다행히 이건 이미 가지고 있던 거라 배꼽 목록에서 제외되었습니다.


풀세트 장비


장사장님이 현란한 손놀림으로 마미체로 커피를 내리고 있습니다. 마미체의 촘촘함의 정도와 커피의 분쇄 정도를 가늠하면서 아주 기술적으로 커피를 내리시는 모습에 넋을 잃고 말았지 뭐예요.


마미체 핸드 드립 테스트중인 장사장님


집에서 잠자고 있던 앞치마도 꺼내 들었습니다. 앞치마를 하고 커피를 내리면 뭔가 있어 보입니다. 이 앞치마는 예전에 성북동에서 사무실을 공유하던 재봉의 달인 늴리리야님이 손수 만들어주신 앞치마입니다. 비매품입니다.


늴리리야 표 앞치마


오후 5시는 공공그라운드에 CJ택배 기사님이 등장하는 시간입니다. 에스프레소 잔[데미타세(demitasse)]과 바람막이가 동시에 도착을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지금까지 주문했던 모든 상품이 모두 CJ택배로 배송이 되었네요. CJ 택배 기사님이 산타클로스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데미타세와 바람막이



20190927


금요일입니다. 어제 도착한 안캅 에스프레소 잔으로 맞이하는 아침입니다. 바람막이가 있으니 커피를 올리는 시간도 조금 단축되는것 같습니다. 역시 데미타세의 도톰한 두께감이 에스프레소의 분위기를 한 껏 살려줍니다. 잔은 정말 잘 산 것 같습니다. 커피나 차를 업으로 하시는 분들이 왜 그렇게 잔에 목숨을 거시는지 어렴풋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장비가 조금씩 늘다 보니 물품을 보관하는 것도 일이 되었습니다. 공공그라운드는 코워킹 스페이스인지라 여러 사람이 함께 쓰는 공간이라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뭐든지 다 있는 다잇소에 가서 그래도 비교적 다잇소 스럽지 않은 수납박스를 2개 사서 말끔하게 정리를 하였습니다.



생일 선물로 받은 모카포트 하나가 제 일상을 바꿔놓고 있습니다. 친한 지인분들 누구나 부담 없이 오셔서 커피 한 잔 하고 가실 수 있는 그런 공간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당이 있는 2층짜리 단독 주택을 짓고 2층은 사무실로 쓰고 1층은 과일가게와 함께 커피를 마실 수 있는 진짜 공카페를 만들고 싶어 집니다. 꿈은 꾸는 사람만 이룰 수 있다고 했던가요? 오늘부터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합니다.



20190930


주말이 지나고 찾아온 월요일. 장사장님이 구입한 수동 거품기를 가지고 출근을 하셨습니다. 장사장님의 지분이 점점 높아지고 있습니다. 장비가 하나 생겼으니 신메뉴가 또 하나 등장할 타이밍입니다. 네 맞습니다. 카푸치노 입니다. 저희는 캪취노라고 부릅니다. 캡취노 아니고 캪취노. 장사장님이 직접 절구에 빻아서 갈은 시나몬 가루도 가지고 오셨습니다. 향이 장난이 아닙니다.


수동 거품기


열심히 피스톤 운동을 반복하여 부드러운 거품을 냅니다. 게거품이 생기지 않도록 마지막에 3~4회 천천히 눌러주는 것이 포인트라고 장사장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거품기 처음본 공사장은 마냥 신기합니다.


카푸치노 제조 공정


마땅한 카푸치노 잔이 없다는 사실에 공사장 또 한 번 카드를 꺼냅니다. 마지막 배꼽이 되길 바랍니다. 이미 에스프레소 잔에서 잔의 중요함을 뼈저리게 느꼈던 터라 카푸치노 잔을 구입하는데 전혀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잔을 계속 사게만드는 신메뉴 개발의 주범 장사장에게 잔값을 청구해야겠네요. 


공공그라운드는 5층에 001 라운지와 테라스라는 공간이 있습니다. 대관을 해서 행사도 진행할 수 있고 평소에는 입주사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용공간인데 야외 데크가 압권입니다. 어떤 날은 구름 맛집으로 변신을 하고, 가끔은 노을 맛집이 되기도 합니다. 비오는 날은 빈대떡에 막걸리 생각이 나게합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아름다운 공간을 좀 더 많은 분들이 만끽하셨으면 좋겠다는... 이 좋은 날씨도 길어봤자 앞으로 한 달 뿐일 텐데...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이 곳에서 일일찻집을 한 번 열어보면 어떨까 하고요...


공공그라운드 5층 001 라운지



20191001


10월의 첫날이 되었습니다. 오늘 아침은 장사장님이 가져온 바나나와 에스프레소로 시작을 합니다. 이제 매일 아침 10시는 자연스럽게 공카페 오픈 시간이 되어버렸습니다. '10시'의 의미가 가기 싫은 회사 문턱에 발을 넘겨야하는 데드라인이 아니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얼른 맞이하고 싶은 시간이 된 것입니다. 


지인분들 중에 이 곳에서 반상회를 하고 싶다고 연락을 주시는 분들 생기기 시작합니다. 이미 반상회가 2건이나 예약이 잡혔습니다. 공공그라운드 핫플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AM 10:00





PM 5:00


오후 5시. 네 맞습니다. 산타클로스가 오는 시간입니다. 마지막 배꼽이 되길 바라는 카푸치노 잔이 도착했습니다. 에스프레소 2잔과 카푸치노 2잔. 이제 드디어 구색이 좀 맞는 것 같습니다. 모든 분야가 다 그렇겠지만 이게 장비를 조금씩 사기 시작하니까 욕심이 한도 끝도 없어집니다. 


공카페는 딱 이 정도의 규모에 만족해야 할 것 같습니다. 더 이상 쇼핑은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봅니다. 구입한 도구 정리 박스도 이제 꽉 찹니다. 뭐 부족하다면 한 없이 부족하지만 이 정도면 꽤 큰 배꼽이 완성되었습니다. 그동안의 쇼핑 리스트를 살펴봅니다.


공카페 장비 리스트



20191002


일일찻집에 대한 망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습니다. 공공그라운드의 공간 매니저인 우듀님께 일일찻집을 제안해 봅니다. 아뿔싸. 우듀가 덥석 물었습니다. 어... 일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습니다. 그래서 일일찻집을 함께 운영할 정예 요원 3명을 섭외했습니다.


그 3명이 위에서 스포일러 해드린 디내(장사장), 듀영(앵무새 설탕 공급책) 그리고 디윤(쿠키인)입니다. 이 세명의 기획자는 모두 한 회사에 근무하는 직원들입니다. 어찌나 다들 재주가 많은지. 제가 탐내는 인재들입니다. 이런 능력있는 직원들과 함께하는 회사 대표는 얼마나 행복할까요? 부러우면 지는건데 쫌 부럽습니다.


회사에서 경영지원 업무를 맡고 있는 디윤은 식재료와 음식에 관심이 많아서 못하는 게 없습니다. 커피 한잔 드렸더니 무심코 '내일은 제가 쿠키를 좀 구워올까요?' 라고 던진 한마디에 일일찻집 쿠키 담당 '쿠키인'의 직함을 득하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3명의 기획자를 모시고 일일찻집에 대한 간략한 브리핑을 하면서 동맹을 다짐합니다.


오늘은 거품 day~


오늘 장사장님은 거품을 좀 내고 싶으신가 봅니다. 모든 메뉴에 거품이 올라갑니다. 에스프레소 마끼아또, 카푸치노 그리고 커피를 못하시는 쿠키인 디윤을 위해 차를 준비해왔습니다. 이제 공카페는 장사장님만 있으면 될것 같습니다. 든든합니다. 공사장은 사장 직함을 내려놓고 잡부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전략회의 중인 일일찻집 기획팀


배보다 배꼽이 더 커졌지만 그러면 좀 어때요? 그 이상의 충분한 행복을 주고 있는걸요. 무료한 일상을 하루하루 즐겁게 보내고 있는 요즘입니다. 날씨가 더 추워지기 전에 이 기쁨을 최대한 만끽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알게 되었어요. '학림'과 '보통의'의 에스프레소가 얼마나 맛있는 커피인지를요. 그러나 전 당분간 모카포트와 좀 더 사랑에 빠져보려고 합니다.


배꼽이 배보다 더 커도 행복해요 


콩카페 이태원점 (사진 : 콩카페)


공카페는 상업적으로 운영하는 정식 카페가 아닙니다. 혹시라도 네이버에서 대학로 커피 맛집, 공카페 등의 검색어를 치셔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습니다. 소소한 일상의 행복을 누리고자 꾸민 공공그라운드 안에 있는 정체 모를 작은 놀이터입니다. 콩카페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길 바라며 콩카페를 카피한 카페가 아님을 밝히는 바입니다. 아울러 콩카페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아... 그리고 일일찻집은 10월 중순경 대학로 공공그라운드 5층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전 일일찻집 준비를 본격적으로 해야 해서 공카페 일기는 여기에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수익금 전액을 기부할 예정이니 공카페가 궁금하신 분들은 이날 와주세요. 정확한 행사 일정은 '공공그라운드' SNS 채널을 통해서 곧 공개될 예정입니다. 포스터 시안 하나를 스포일러 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일일 찻집 포스터 시안
일일찻집 OT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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