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초 안에 결제가 되지 않으면 소비자는 이탈한다.
난 40대 중반을 바라보는 과일장수 아저씨다. 동시에 맥과 아이폰만 쓰는 애플빠이기도 하다. 과일장수라 애플을 쓰는 건 아니다. 나름 신문물(?)을 빨리 접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요즘같이 하루가 다르게 빨리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솔직히 버거울 때가 많다. 3월 26일 오전 애플에서 메일이 하나 날아왔다. 애플 카드의 공개 소식이다.
해외에서는 아마존, 국내에서는 마켓 컬리 등으로 대표되는 물류의 혁명과 함께 이제 본격적인 페이(Pay)의 춘추전국 시대가 왔음은 분명해 보인다. 온라인 쇼핑몰에 네이버 페이 지원은 필수가 되었고, 식당에서 밥 먹고 카카오 페이로 결제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은 일상이 되어있는 요즘이다.
오늘은 '결제'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얼마 전 박막례 할머니 맥도널드 키오스크 유튜브 영상이 여러 매체를 통해 기사화되었다. 남의 일이 아니다. 40대인 나는 아직까지 시스템을 사용할 줄 몰라서 생활의 불편함을 느끼는 세대는 아니지만 20,30대만큼 능숙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이다.
나는 아직도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주문하는 것이 많이 어렵다. 무얼 그리 많이 선택해야 되는지 그냥 포기하기 일쑤다. 코워킹 스페이스(공유 오피스)를 사무실로 쓰는 나는 주변에 20,30대와 함께 식사를 할 때가 종종 있는데 그분들의 도움으로 가끔 서브웨이를 운 좋게 맛보지만 죽기 전에 내 발로 서브웨이에 가서 샌드위치를 주문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왜 빅맥세트 와퍼세트 같은 것은 서브웨이에는 없을까?
다양성의 시대에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이 꼭 행복한 삶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듯싶다. 나 역시 머지않은 미래에 몰라서 못쓰는 것들이 점차 늘어나게 될 것이다. 박막례 할머니가 맥도널드의 키오스크를 접하고 겪는 멘붕을 나도 겪지 않으리란 법은 없다.
배워야 되겠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하는 요즘이다. 세대 차이라는 것이 단순히 김광석이냐 BTS냐의 음악적 취향 차이를 넘어 이제는 의사소통 자체가 어려운 시대가 되어버렸다. 대화중에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신조어와 카카오톡에서 흔하게 등장하는 약어, 이모티콘 등에 나는 아직 적응이 되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것도 분명히 하나의 언어일 텐데(우리말의 파괴 같은 논쟁 따위는 여기서는 하지 않기로 하자) 나는 곧바로 이해하지 못한다. 검색엔진을 통해 뜻풀이를 해야만 이해할 수 있고, 상황에 따라 달리 사용되는 그러한 말들의 완벽한 디테일을 이해하는 것은 솔직히 불가능에 가깝다. 물론 모른다고 해서 사는데 지장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머지않은 시일 내에 10대 20대와는 아예 의사소통이 불가능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박막례 할머니의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들었는데 하나는 조금 이른 감이 있긴 하지만 '공감' 그리고 또 하나는 '미안함'이었다.
전화 주문을 받지 않습니다
나는 온라인에서 작은 과일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하나라도 더 팔아야 되는 숙명을 안고 있지만 전화, 문자 주문을 받지 않는다. 온라인에서 회원가입을 비롯해 결제를 하는 것이 어려운 박막례 할머니 세대가 우리 가게에서 과일을 구매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가게의 주 소비층이 30~40대인지라 전화 주문을 받지 않는 것이 장사를 하는데 큰 걸림돌이 되지는 않지만 가끔은 온라인 결제가 익숙하지 않은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분들은 그냥 맛있는 과일을 먹고 싶고, 과일을 사고 싶은 것뿐인데 이 복잡한 온라인 세계는 이 간단한 행위조차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왜 전화 주문이나 문자 주문을 받지 않고 웹사이트 주문만을 고집하느냐? 물론 사업 초기에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닌지라 전화, 문자 주문을 병행해서 운영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문제가 생겼다. 아직 말씀드리지 않은 것이 있는데 우리 과일가게는 나 혼자 운영하는 1인 회사다. 별도의 C/S 직원이 있다면 큰 문제가 아니겠지만 나의 경우 혼자서 모든 업무를 처리해야 되다 보니 전화 주문을 받게 되면 업무에 잦은 실수가 생겼다.
산지 출장 중에 걸려오는 주문 전화, 운전 중에 받은 주문 전화를 기억하지 못해 주문을 누락시킨 경우도 있고, 전화 주문은 무통장 입금으로 결제를 받아야 하는데 입금계좌 안내, 입금 확인 안내, 배송 안내 등의 추가적인 C/S가 여간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게 아니었다. 하루 24시간을 일하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웹사이트에서 주문을 받으면 하루에 한 번 엑셀 파일로 주문서를 다운로드하면 끝나는 일이다. 주문자 입장에서도 주문 확인 여부(입금 확인 여부), 배송 진행상황들을 사이트에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기에 훨씬 편하고 상호 효율적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일부의 손님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전화 주문으로 인해 발생하는 시간을 줄이는 게 맞다고 판단했다. 차라리 그 시간과 비용을 건강하고 맛있는 과일을 찾기 위해 산지를 돌아다니며 농민을 만나고 과수원에서 보내는 출장에 할애하고, 편하게 결제할 수 있는 웹사이트로 계속 진화하는 것이 손님들에게도 더 이득이라 판단했다. 그럼에도 아직 박막례 할머니 같은 세대는 그냥 현찰 박치기 혹은 인터넷 뱅킹이라는 고도의(?) 기술을 습득한 분들도 무통장 입금을 통해 온라인에서 물건을 주문하고 결제하는 것이 가장 진화된 방식이다.
아직도 많은 분들이 무통장 입금(현금결제)은 카드 수수료가 붙지 않기 때문에 판매자 입장에서 이득일 거라고 생각하시는 경향이 있어 상품 구매 시 가격 할인을 요구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연출된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C/S를 위한 문자 비용, 시간 비용 등을 고려하면 판매자 입장에서는 차라리 사이트에서 결제받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요즘의 웬만한 웹호스팅 서비스 업체에서는 무통장 입금 주문건도 자동입금 확인 및 안내 서비스가 가능하다.
종종 도저히 웹사이트에서 주문을 못하시겠다고 전화로 주문하면 안 되냐고 간곡하게 부탁을 하시는 손님들이 있다. 아무리 원칙을 세워놨어도 이런 문의를 단칼에 거절하기는 솔직히 어렵다. 그러나 막상 이런 주문이 쌓이고 쌓이면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심리적으로 받는 스트레스와 피로도는 체감상 무척 크다. 그래서 일단 정중히 거절하고 너무 간절히 원하시면 케바케(나도 이런 말 쓸 줄 안다)로 받아들이는 경우도 종종 있다. 물론 연령대가 높다고 해서 모두 온라인 결제를 어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몰의 경우 60~70대 분들도 원활하게 주문하시는 손님들도 많다.
무통장 입금은 자영업자들에게 천국일까?
2011년 처음 장사를 시작한 나는 온라인 시장에서의 결제 방식의 급변하는 과정을 온몸으로 겪었다. 아직 현재 진행형이라 해야겠다. 스마트폰의 빠른 보급으로 온라인 쇼핑몰은 모바일에서 보기 편한 사이트로의 변신이 요구됐다. 아울러 결제방식 또한 변화했다. 온라인 mall을 운영하는 사업자들은 서둘러서 모바일 사이트를 만들어야 했고 모바일에서 결제 가능한 시스템을 도입해야 했다.
지금은 반응형 웹이 일반화되어 피씨와 모바일에서 쉽게 연동되는 웹사이트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초창기 10%를 넘기지 못했던 모바일 결제 비율은 이제 전체 결제의 80%를 넘어서고 있다. 젊은 세대나 중장년 세대나 이제는 피씨 결제보다 모바일 결제가 더 편하고 익숙하다.
그 급변하는 시기에 모바일 결제 시장을 평정하기 위해 혜성처럼 등장한 것이 네이버 페이였다. 네이버 페이가 처음 나왔을 때 사람들은 기존의 현금, 신용카드, 휴대폰 등과는 다른 결제 수단에 조금은 낯설어했다. 왠지 진짜 돈이 아닌 가짜 돈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판매자도 다르지 않았다.
네이버 페이가 처음 등장했을 때 판매자에게 수수료를 부과하지 않았다. 결제 수수료 0% 판매금액 100%를 그대로 다 정산받다니? 판매자 입장에서는 노다지가 따로 없었다. 그러나 딱 1년 동안만이었다. 1년 후 네이버는 결제 수수료 유료화 정책으로 돌변했다. 뭐 PG사 역할을 하는 것이니 결제 수수료를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대기업에서 하는 일들이 다 그렇지 뭐 예상했던 일이잖아? 그리 생각했는데 네이버 페이가 제시한 결제 수수료는 정말 입이 떡 벌어질정도로 정교하고 치밀하였다.
카카오페이가 등장하며 가맹점 수수료 0%를 미끼로 가맹점수를 확대하고 있는데 네이버 페이와 똑같은 과정을 겪게 되지는 않을지 조심스럽게 예의 주시하고 있다. 최근 발표한 카카오페이의 은행 계좌 송금 수수료 무료 정책을 2년여 만에 종료한다는 소식은 더욱 더 이러한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네이버 페이는 1년 동안 테스트를 통해 쌓은 막대한 양의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결제 방식에 따른 차등 수수료를 부과하였는데(당연히 결제 비율이 높은 결제 수단에 높은 수수료율을 부과하고 비율이 낮은 무통장 입금에 가장 낮은 수수료를 부과하였다.) 1년 동안 수수료 없이 장사한 우리들이 결국 실험용 쥐였음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건 소비자들은 전혀 모르는 내용일 것이다. 소비자가 주문을 하면서 결제 수수료를 지불하는 경우는 없으니까.
거기에 네이버 검색을 통해서 구매하는 상품에 대해서는(거의 대부분) 건당 2%의 검색 수수료가 판매자에게 부과된다는 사실은 소비자는 절대 알리가 없다. 참고로 2019년 1월 31일 자로 소상공인을 위해 신용카드 수수료가 인하되었는데 연매출 3억 이하인 업체의 카드결제 수수료가 2.1%(VAT 별도) 임을 감안하면 2%의 검색 수수료가 얼마나 엄청난 금액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네이버의 노예
물론 소비자 입장에서 네이버 페이는 일단 편하고 구매만 해도 1% 적립금이 쌓이고 구매평 2개를 쓰면 150원을 추가로 주니 쌩유베리머치인 훌륭한 결제 수단이다. 그렇다 보니 온라인 사업자 입장에서도 결제수단으로 네이버 페이를 장착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참고로 난 이렇게 살다가는 네이버의 노예가 될 것 같아서 작년 11월 사이트를 리뉴얼하면서 4년 동안 사용하던 네이버 페이를 과감하게 벗어던지고 독립했다. 무모한 모험일 수도 있지만 버티고 있는 중이다.
네이버 페이 포인트 충전 혜택이 소비자들의 눈에는 어떻게 보이십니까? 그러나 네이버 페이 포인트로 결제를 하시게 되면 판매자는 네이버 페이 신용카드 결제 수수료 2.2%보다 훨씬 높은 3.74%의 수수료를 지불해야 합니다. 결국 소비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파트너사 판매자들이 고스란히 부담해야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현재는 네이버 페이 카카오 페이 PAYCO 등에서도 '간편 결제'라 불리는 결제 방식이 대세다. 내 신용카드 정보를 등록해놓거나 페이로 충전을 해 놓으면 결제할 때 신용카드 번호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거나 공인인증서 따위는 전혀 필요치 않다. 비밀번호 몇 개만 입력하면 바로 결제. 무통장 입금방식의 주문이 10년 전에 비해 현저하게 줄었다. 7~8년 전까지만 해도 카드결제:무통장 입금의 비율이 7:3 정도는 유지했었지만 지금은 무통장 입금 결제 건수가 전체 매출이 10% 이하로 떨어진 수준이다. 현장에서 판매자로서의 체감은 멸종위기 직전까지 온 듯싶다.
'3초 안에 터지지 않으면 채널은 돌아간다'라는 모 방송국 피디의 유명한 명언이 변형되어 이제는 '3초 안에 결제되지 않으면 소비자는 이탈하는 시대'가 되었다. 판매자의 입장에서는 결제의 편리성을 갖췄는지의 유무가 매출과 직결되는 시대인지라 결제수단에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지금의 10대~30대 초중반의 세대에게 현재의 결제 수단은 편리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그것은 따로 배워서 해야 되는 것이 아닌 그냥 일상일 테니까. 그러나 온라인 카드결제조차 어려운 세대들에게 다양해진 PAY들은 배워야 할 대상이 되었다. 무언가에 쉽게 반응하고 적응하는 것은 적잖은 스트레스다. 무엇보다 소비자들을 편하게 해 주기 위해 만들어졌을 테지만 실제로 그것이 편리하게 느껴지지 않는 소외된 세대들이 발생했다.
결제 수단은 점점 더 간편해질 것이다. PAY의 춘추전국시대가 어떻게 결론이 날지 사실 나는 무척 궁금하다. 온라인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들도 지금의 카카오톡 정도는 무리 없이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쉽고 편한 결제 시스템이 분명히 생겨나겠지.
기술이라는 것이 결국 인간을 편하게 만들기 위해 발전하고 있지만 거기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배려도 이제는 필요하지 않을까? 소외된 세대에게는 적응할 것이냐 아니면 낙오될 것이냐 이외의 다른 선택지가 선명하게 눈앞에 보이지 않는 게 현재의 상황이다.
네이버 페이와 작별한 내가 과연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사실 난 확신할 수 없다. 카카오 페이를 사이트에 장착해야 할지의 문제도 현재 시점에서의 고민이다. 올해 1년을 지내보면 어느 정도의 답이 나올 것도 같지만 애플 카드 애플 페이처럼 새로운 페이의 등장이 한편으로는 반갑지만 또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는 것이 사실이다. 판매자의 입장에서는 운영의 간편성과 수수료를 먼저 체크하게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제 상품을 선택하고 결제를 하는 단계에서 결제 수단을 선택하는 항목만 화면의 1페이지를 채우게 될지도 모르겠다. 모든 손님을 만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최소한 불편하더라도 '가능하게'는 해야 하는 것이 기술을 개발하는 기업에게 요구되는 최소한의 임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나는 ‘공씨아저씨네’라는 온라인 구멍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과일 장수다.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채 이 일을 시작한 지 벌써 8년 차에 접어든다.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농산물 유통구조는 나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것 투성이었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외모 지상주의'가 농산물 시장에서도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은 큰 충격이었다. 그래서 나는 '크기'와 '모양' 중심이 아닌 과일 본연의 '맛'과 '향' 중심의 조금 다른 과일 유통을 시작했다. 나는 이 땅에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농산물의 외모지상주의를 깨뜨리기 위해, 아울러 농부들의 수고스러움에 대한 ‘가치’를 ‘같이’할 수 있도록 농부의 마음으로 농산물을 판매하려고 한다. ‘농사 안 짓는 농부’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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