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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플 Aug 31. 2020

집에 TV가 없다고요?

운명의 책은 언제나 곁에 두고, <공부하는 엄마들>



운명의 책은 언제나 곁에 두고 마음이 내킬 때마다  꺼내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집 작은 도서관을 그런 책들이 채워나간다고 상상해보라.
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 공부하는 엄마들 중에서




티비없는 우리집.


2019. 마지막줄 가운데칸은 고양이를 위해 비워뒀었다.




작은 아이 태어나고 티비를 없앴으니 꼬박 8년.

다들 티비없는 줄 알게 되면 힉. 아이 교육을 위해서요? 하고 놀라듯 물어보지만 사실은 내가 너무 티비를 좋아해서 없앴다.



무슨 말인고 하니

김수현 나오는 '별에서 온 그대'를 봐야 하므로 드라마 시작 한 시간 전부터 방에 불을 끄고 돌 지난 애기랑 들어가 눕는다.

엉덩이 두드리며 노래 불러주고 옛날이야기 해주는데도 아이 눈이 말똥말똥하면, 결국 먼저 자는 척을 시작한다. 엄마가 자는 것 같은데도 살금살금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하면 큰소리로 이름을 부르니 기저귀 찬 아이는 방 밖으로 나가지도 못하고 침대 위에서 몸살을 한다.

엄마 눈코를 찌르고 앞구르기 뒷구르기까지 마쳤는데도 잠이 안 오면 좀 울기도 하고. 그래도 엄마의 반응이 없으면 그제서야 잠이 든다. 아 기나긴 수면의 과정이여.



그러고 나서 거실에 나와 티비를 켜면 이미 드라마가 반쯤 지났다. 하. 짜증나. 해놓고도 티비 앞에 앉아 이제야 나의 휴식시간이라며 티비를 보고,

드라마 끝나면 재밌는 거 안하나 이리저리 틀어보다가 재밌는 거 드럽게 안해, 하면서 아이 옆에 누울 땐 벌써 새벽 한두시. 이때만이 나의 자유시간인 거 같다가도 아이 옆에 누우면 미안한 마음이 썰물처럼 밀려오는 것이다.




그래서 내 손으로 티비를 없앤 후 8년.



여전히 친정에 놀러가기만 하면 티비를 켜서 동생은 나를 티비쟁이라 부른다. 아이들은 할머니네나 친구네 가서 티비시청을 하기에 모르는 캐릭터와 만화가 없긴 하지만.



고양이랑 창밖을 구경하는 아침.



우리는 티비를 보는 대신 책을 읽기로 했다.

아이를 키우며 부딪히는 여러 문제들의 해답을 영상이 아닌 책에서 찾아보고자 했고, 아이를 재워두고 만들어진 자유시간엔 멋드러진 로맨스 소설을 읽는다. (별그대만큼이나 말랑말랑하다.)



아이들은 당연히 하루 종일 책만 읽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시간은 뒹굴거리고 찢거나 그리고 뭘 잔뜩 꺼내 어지른다.

책을 읽는다 해도 읽은 책만 또 읽고 읽어 좋아하는 책은 너덜너덜거리는데, 어떤 책은 첫 표지를 열 때 쩍 소리가 날만큼 새 책이기도 하다.



티비를 없애서 아이들이 더 똑똑해지지도 않았고 엄마가 재미지게 놀아주지도 못한다.

학교도 학원도 못가는 요즘 같은 때엔 특히나 더 심심해심심해 노래를 부르는 때도 많지만.



2020 겨울. 소꿉놀이 중에 빵 터져서 웃는다.
2020 여름. 친구가 놀러오자 좋아하는 책을 찾아보여준다.




아이들은 티비와 소파가 없는 넓은 거실에서 자기들이 하고 싶은 것들을 찾아낸다. 킥보드를 타고 쭈욱 미끄러져도 걸릴 것이 별로 없다. 엄마인 나는 티비 그만 봐라, 잔소리할 일이 없다. 요가 수련한다고 물구나무서다가 쿵 넘어져도 부딪쳐 다칠 것이 없다.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책과 좋아하는 놀이의 타입을 너른 공간과 시간 속에 찾아간다.



무엇보다 일어나자마자 그리고 자기 전에 다른 소음에 방해받지 않는 그 산뜻함이 주는 기쁨이 있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계절에 따라,

해가 들고나는 시간에 따라 책상을 이리저리 옮겨본다.



책장과 책상. 말고는 주요한 가구가 없는 거실에서 우리는 자기와 서로의 취향을 알아가는 중이다.

우리의 운명을 만날때까지.




"평생을 읽어도 새로운 감동과 의미를 주는 책을 만나려면 일단 읽어야 한다. 우연하고 즉흥적인 만남이라도, 만남이 계속되다 보면 내 운명의 책을 만날 수 있다."


<공부하는 엄마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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