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날아가지 못하게 하는 것들
아이들을 품에 안고 동화를 읽어준다.
날개옷을 훔친 나무꾼은
나쁜 사람임을 잊지 않고 일러주며,
아이가 둘일 때 나무꾼이 날개옷을 보여주는 바람에
하늘로 날아가버린 선녀에 대해 이야기한다.
"왜 아이가 셋이면 하늘로 못가?"
그거야 선녀의 팔이 두 개니까,라고 대답하려다가
너무 무심한 응대인 것 같아 다시 말을 골라본다.
"응, 아이들은 너무 소중한 존재라
놓고 갈 수 없는데, 아이가 셋이면
두 팔로 다 안을 수가 없어서 그런 거야."
"그럼 나무꾼은 놓고 가도 돼?"
하늘로 날아간 선녀를 향해 팔을 뻗으며
엉엉 울고 있는 나무꾼의 그림을 보던 아이의 의문에
어색한 미소를 지어본다.
나무꾼이 애당초 죄 없는 선녀의 옷을 훔치고
이 혼인사기극을 펼친 범죄자이며,
사슴은 나무꾼의 소원을
그런 방식으로 들어줬으면 안 됐다는
독설을 뱉을 순 없으니 말이다.
선녀에게 아이가 셋이었다면 어땠을까?
선녀는 날개옷을 보고도 하늘로 돌아가지 못했을까?
잘못된 길을 선택한 것 같은 기분은
늪처럼 거대해지고,
일상에 질식할 것 같은 공포에 사로잡힌 요즘,
나는 매일 날개옷을 발견할 길이 없나
주위를 두리번댄다.
직업을 잘못 골랐다고 생각하면서도,
내 품에 안기는 두 아이의 무게를 버텨가며
날아갈 멋진 날개옷을 찾지 못해
그저 그런 삶을 살고 있다는 좌절에 빠진다.
선녀에게 아이가 셋이었다면,
날개옷을 뒤늦게 발견했을 때
선녀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아이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 위해
지상을 하늘처럼 여기며 스스로의 마음을 바로잡으려
무던히도 채찍질을 했으리라.
지금의 내 삶도 그와 다를 바 없다.
내가 꿈꾼 길은 이 길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가정을 이룬 뒤에,
이미 먹여 살릴 아이가 둘이나 있는 판국에
이 삶을 행복하게 영위하기 위해서는
매일의 일상을 지금의 자리에서
더 낫게 만드는 수밖에 없음을 직감한다.
그리고 그런 노력을 거치면서
이곳이 하늘과 다를 바 없다고
스스로를 계속해서 다잡는다.
그 노력이 현실 인식인지,
긍정적 사고인지, 자기기만인지는
이름을 붙이기 나름이다.
도망친 곳에는 천국이 없으니,
어쩌면, 내가 꿈꾸는 날개옷을 입고 날아가 본다 한들
그곳이 아름다운 하늘나라가 아닐 수도 있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날갯짓조차 할 수 없는 순간에는
닿을 수 없는 고도를 꿈꾸는 어떤 이처럼
먼 하늘을 무한히 동경하고 마는 것이다.
그런 하루를 차곡차곡 포개어가고 있다.
어쩌면 당신에게 새로운 날개옷이 주어지거나,
아니면 우리가 딛은 이 곳이 실은 하늘임을
스스로 깨닫는 행운이 찾아오기를 기도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