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티 워
판교 IT회사에서 퇴사한 후,
서울에서 경기도까지 왕복 4시간 걸리는 회사에 취업해
2년 동안 실력을 갈고닦았다.
그리고 서울 강남에 위치한,
사명을 들으면 누구나 알만한 중견기업에 입사를 하였다.
꼭 해보고 싶은 직무에, 연봉도 꽤 올랐고 특히 집에서 왕복 1시간 30분 정도여서 모든 조건이 완벽했다.
입사 후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을 때,
일에서만큼은 완벽주의를 원했던 나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그냥 일복 많은 팔자여서 그런 것인지,
여전히 일 평균 14시간 이상 회사에서 업무를 했고, 그날도 늦게까지 남아 야근을 하고 있었다.
같은 팀 대리 2명이 슬쩍 내 옆에 앉아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다길래 잠시 타자치던 키보드질을 멈추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근데 수혜씨. 왜 우리 회사에, 그것도 우리 팀에 입사했어요? 비슷한 산업에서 이직한 걸로 알고 있는데, 거기까지는 우리 팀장님 소문이 안 났어요?’
그 질문을 받고 등골이 싸하면서, 다짜고짜 팀장 욕을 시작하는 그들의 모습이 좋게 보이지 않았다.
그들의 말로는, 팀장 때문에 멀쩡히 일하던 직원 2명이 갑자기 육아휴직을 갔고, 또 다른 2명이 퇴사를 했다고 한다. 심지어 나와 대화하던 대리 중 1명도 일주일 뒤에 퇴사예정이었으며 이유는 팀장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이 아니라면 주변 사람들 말에 휘둘리지 말자던 다짐이 흔들릴뻔한 순간이었다. 왜냐하면 경기도에 위치해 왕복 4시간을 통근했던 바로 전 직장에서도 팀장 때문에 1년 동안 8명이 퇴사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폭풍을 뚫고 2년간 버텨 업계 1위인 현재 회사에 이직을 성공한 나였지만, 반대로 팀장 때문에 3명 이상이 퇴사한다는 것은 분명히 끔찍한 징조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2021년 봄과 여름사이의 어느 날 주말 저녁
지속적인 팀장의 괴롭힘에 스트레스를 과하게 받았던지
집에서 과호흡증상으로 쓰러졌고, 대학병원에서 공황초기증상 판정을 받았다.
사실 과호흡증상이 발생되고 병원에 실려갔던 기억은 없다. 과호흡증상이 심해지면 뇌에 산소공급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그 순간의 기억이 없어질 수도 있다고 한다.
내가 쓰러지던 당시,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무서우면서도, 한편으로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남편이 나 때문에 많이 놀라기도 하고, 속상해하기도 해서 미안했다.
머리로는 ‘괜찮다. 버티자’라는 생각을 하면서 잘 견뎠는데, 내 몸은 괜찮지 않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따뜻한 햇살이 눈부시던 아침.
나를 치료해 주었던 대학병원에 가서 과호흡증상과 공항초기증세에 대한 진단서를 받고 다시 회사로 출근을 하고 있었다.
우수사원으로 표창받을 만큼 열심히 일했던 나에게, 결국 남은 건 병이라니 너무나 분하고 울화가 치밀어 올랐다.
남편에게 전화해서 말했다.
‘나 한번 싸워보려고. 회사에서 잘릴지 언정 계란으로 바위 쳐보려고. 회사에 팀장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해 보고, 그래도 안되면 노동부, 언론사에라도 고발해 볼래 ‘
남편은 무조건 응원한다면서 괴롭힘에 대한 자료를 정리하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했다. 내가 돈을 벌지 않으면 우리 가계에 치명타가 생길 수 있음에도 응원해 주는 그에게 고마웠다.
종종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직장인이 자살하는 안타까운 뉴스가 들린다. 그 사람이 사무실이라는 밀폐된 지옥 속에서 혼자 힘들어했을지, 얼마나 혼란스럽고 지독히도 절망스러웠을지 너무나 이해가 됐다. 나는 죽을힘을 다해 그 팀장과 싸워보기로 결심했다.
꽃향기와 풀내음이 가득했던 대학병원 그 길.
그리고 쏟아지는 햇살이 부서지는 그날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회사에서 잘릴 각오를 하고 팀장과 맞서 싸울 생각을 하니, 오히려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그래, 한번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