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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혜 Jun 07. 2022

결혼과 이혼 사이 #6. 우리는 사랑받을 의무가 있다

이 세상 모든 며느리와 사위는 사랑받아야만 한다.

자신의 형과 절대 헤어지지 말아 달라던 도련님과의 통화 후, 나는 남편의 가정 속에서 바른 정신으로 버틸 자신이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깨달았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이혼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도련님 때문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이유는 3가지이다.


첫째.

도련님은 시어머니가 '아직 소녀 같다'라고 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성인 여자에게 '소녀 같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이 아니다. 작은 것에도 감동하고, 꺄르륵거릴 정도로 즐거워하는 귀여운 여성들에게 붙여지는 말이다.

본인의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고, 차분하게 말하는 방법을 몰라 고집스럽게 우기는 여성들은 '소녀'가 아닌 '아집에 둘러 쌓인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다.


한평생 본인의 엄마를 봐왔던 도련님 조차도, 자신의 엄마 행동을 '소녀 같다'라는 말로 예쁘게 포장한다. 아마도 이 상황을 깊게 관여하고 싶지 않았으리라. 지금껏 모른 척 포기하며 살아왔듯, 앞으로도 시어머니의 무절제한 감정표현을 무시하고 싶었을 것이다.


둘째.

도련님 말에 따르면, 시어머니께서 갑자기 그토록 화가 난 근본적인 이유는, 시어머니가 증오하는 시아버지와 새로 들어온 며느리인 내가 사이좋게 지내는 꼴이 보기 싫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개인의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키려고 노력하는 인간류를 혐오한다. 그들의 부정적인 기운은 너무나 강력해서 내가 객관적인 시각으로 상황을 볼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사이가 좋다는 것은, 며느리가 시댁에 좀 더 애정을 갖고 대할 수 있는 좋은 신호이다. 시아버지로 인해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사이가 더 좋아질 수도 있고, 며느리로 인해 서먹했던 아들과 아버지가 서로를 이해하고 애정 할 수 있는 기회인 것이다. 사랑은 사랑을 낳고, 긍정은 또 다른 긍정을 부른다.

그러나 내 시어머니가 그 당연한 사실을 이해하기엔 너무 고민 없이 삶을 살아왔다.


셋째.

남편의 무관심과 혹독한 시댁살이가 있었다고 해서 우리나라 모든 엄마들이 자식에게 분풀이를 하거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기대하진 않는다.

많은 어머니들이 삶에서 느끼는 억울함과 설움이 있지만, 그 부정적인 감정이 얼마나 고단하고 힘든지 알고 있으니  당신 자식들에게만큼은 절대 그런 감정을 물려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당신이 힘들었을지 언정, 그들의 자식은 자존감 높고, 밝은 사람이 되길 원하는 위대한 어머니들이 참 많다. 우리 친정엄마도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내가 2년 동안 본 시어머니는 본인의 분노를 그녀의 첫째 아들인 내 남편에게 쏟아붓기 바빴다.


그녀가 내 ‘앞’에서 시아버지를 험담하고, 본인 시댁 살이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쏟아낸 그 시간들.

그녀가 내 ‘뒤’에서 내 남편에게 나를 다른 며느리와 비교하고, 내 친정가족을 험담했던 그 시간들.

그 모든 시간들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피해받은 여성이라는 것을 각인시키기 위한 어리석고 허망한 시간들이었다. 미래에 내가 아이를 낳는다면, 시어머니는 내 아이에게도 분노를 주입시킬 분이다.


시어머니의 각인은 두 아들에게 성공했을지 언정, 내게는 철저하게 실패했고 난 시어머니가 아닌 그녀 옆에서 한평생 살았던 두 아들이, 그리고 시아버지가 오히려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그녀를 알고 지낸 약 2년이라는 시간이 내 인생에서 가장 지독한 시간이었는데, 그 세 남자는 맨 정신일 수 있을까.




시어머니와 싸우고 온 그 날 밤.

남편은 절망스러워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내가 모르는 사이 시어머니랑 많은 대화와 약속을 했다고 한다. 아마도 내 앞에서 시어머니와 시아버지가 싸우지 않으시길, 나에게 가시 돋힌 말을 하지 않길, 서로 예의는 지키되 편안하고 좋은 가족이 될 수 있게 노력하길 약속했을 것이라 예측할 뿐이다.


그러나 늘 그러하듯, 남편의 노력은 산산이 부서져버렸고 그는 배신감과 분노, 슬픔에 한탄했다. 허무하고 허탈해보였다.


그리고 그는 깨달았다.

'엄마가 진심으로 날 사랑했다면, 아빠한테서 발현된 분노를 나와 내 아내에게 쏟아낼게 아니라, 우리가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세상 모든 며느리와 사위는 배우자 부모님들께 사랑받을 '권리와 의무'가 있다.

세상 모든 며느리와 사위는 결국 내 딸, 내 아들을 가장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 자식이 외롭지 않게, 앞으로 있을 인생의 역경을 함께 헤쳐나갈 고마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끼고 배려하고 사랑해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딸과 내 아들의 인생이 무너질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사랑받아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사랑해야만 하는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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