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여행에서 만난 신기한 가이드 스마일 양, 치열한 삶을 응원한다.
캐나다 동부 여행
현지에서 패키지 투어를 골랐다.
"해외여행"이라고 하면 좀 거창해 보이지만 여행깨나 해봤다고 생각하는 나는 어지간해서는 "패키지 투어"는 가지 않는다. 일단 뭔가 엄청 많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도 싫고, 깃발 들고 쫄쫄 쫓아다니며 시간에 쫓겨 뭘 봤는지도 모르게 후다닥 "보고 오세요~"하고 마음 급하게 돌아보기도 싫고, 쓸데없이 이상한 가게 데려가서 물건을 사라고 부추기는 "강매" 행위에 내 시간을 빼앗기는 것도 싫다. 게다가, 여태까지의 경험상 한국의 여행사의 패키지여행이 "싸지 않다." 자유여행으로 여행을 다녀와서 비용을 계산해보면, 같은 기간 비슷한 코스(혹은 나의 여행보다 덜 좋은 숙소, 덜 좋은 액티비티)인데 패키지 상품이 훨씬 비싸다. (랩 스타일로 숨 안 쉬고 읽어줘야 맛인 구절이다)
그래서 늘 가족여행이든 나 혼자 여행이든 내가 알아보고, 내가 티켓팅을 하고, 내가!! 주도적으로 여행을 끌어간다. 정 안 되는 경우 꼭 여행사를 이용해야 한다면, 현지에 있는 "현지 여행사"를 알아보는 편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의 캐나다 가족 여행도 티켓팅은 내가 직접 했다. 그리고 우선은 자유여행으로 할 생각으로, 렌터카로 쭉~ 둘러보는 개략 코스까지 구글 지도에 그림을 그려보고!! 동유럽 가족여행도 계획부터 여행까지 완벽하게 혼자 해낸 경험이 있으므로 이번에도 순수히 자유투어를 할까 했으나, 운전하기에는 이동 거리가 길어서 피곤할 것이라는 주변의 우려와(가족, 친구 다 말려주셔서 흔들리는 척, 못 이기는 척 선택하기 좋았다), 운전은 할 수 있으나 운전할 땐 주변을 같이 볼만한 운전실력은 아직 갖추지 못한 탓에 (하와이에서 이미 한번 경험했다. 분명 해안도로인데 "해안"은 모르겠고 "도로"만 기억에 남아있다.) 게다가 무언가 꼼꼼히 준비하기엔 유난히 바쁜 회사 업무 탓에 단풍 여행은 현지 투어로 이동하기로 결정!! 다만 못내 아쉬워 앞, 뒤에 자유여행을 3일 정도 넣어두기로 했다!
현지 여행사를 통해서 여행을 하기로 했으니 여행사를 찾아야 한다. 뭐 하나 고를 때 호락호락 한 성격도 아니다마는,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늘 제일 좋은 걸로 골라야 하니까 무한 검색 시작. 2013년 캐나다 로키 투어는 이미 현지 여행사를 골라 투어로 다녀온 경험이 있는데 (그때야말로 운전도 잘 못해서 렌트는 꿈도 못 꾸던 시절) "그때도 좋았지만 그것보다 더 좋은 여행사"를 찾기 위해 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의 투자를 했더랬다. 폭풍 구글링은 기본, 각종 카페, 블로그, 홈페이지를 뒤져서 가격, 일정, 후기 탐색에, 이 후기는 "광고성"인가, "정보성"인가를 판단하기까지 엄청난 공을 드린 후. 여행사를 골라내서 예약을 마쳤다.
이상한 가이드, 스마일 양을 만나다
5박 6일 투어의 시작은 오후부터 시작하는 일정으로, 토론토 시내 투어를 하는 날이다. 오후 2시. 우리의 약속 장소는 CN타워 앞. 처음 만난 가이드는 "스마일 양"이라고 자기를 소개했다. 여자도 아니고 웬 양? 싶었더니 "양 씨 아저씨"라서 "스마일 양" (어째 좀.. 촌스럽다 했으나, 이 여행이 끝날 무렵 모두가 인정해주는 입에 짝짝 붙는 이름임을 인정!)
파란 반팔티셔츠에, 피부는 까맸고, 머리는 직업군인처럼 짧았고, 몸은 호리호리한 편이고, 키는 적당했다. 나이는... 40은 안되어 보이고, 사투리를 적당히 쓰고, 말이 살짝 빠르다 싶은데 말이 좀 많은 것 같기도 하고, 자꾸 어딜 후다다닥 뛰어다닌다. 일단 가이드가 이상하면 5박 6일이 괴로울 수 있으므로, 경계를 늦추지 않고!! "지켜봐야 한다"! 는 마음으로 투어를 시작했다. (나는 치밀하니까!! 마음에 안 들면 단번에 컴플레인의 여왕으로 변신하여 단디 혼쭐을 내줄끼다! 하는 마음으로 철통 감시!!)
"잠깐만 계세요~!!" 하더니 후다다닥 뛰어가서 표를 끊어와서, 또 후다다닥 앞장서서 우리를 이끌고 엄청 빠른 입장을(우리가 단체라서 가능하겠지) 한 뒤, CN타워 안의 포인트 포인트를 데리고 다니면서 좌라락 설명을 한다. 해주고 싶은 말은 많고, 시간과 공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말을 살짝 빠르다 싶게 하는 동시에, 투어 하시는 분들이 정신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집중할 수 있게 끌고 가는 열정의 표출이자 전략인 듯했다. 하긴... 가이드하면 말을 질리게 할 텐데, 좋아서 말 많이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싶었다. 다 자기 밥줄이니 최선을 다할 테고, 그 이상 열정이 있으니까 저렇게 열심히 하겠지. 포인트로 딱딱 집어서 '반드시'봐야 할 것은 놓치지 않게 해 주고, '반드시'찍어야 할 포인트에서는 사진기를 바로 들이대며 "찍어야 할 포즈"로 찍게 해 주고야 마는 가이드였다. 그래서 얼떨결에라도 CN타워의 유리 바닥에서 누워서 사진을 찍는 경험을 했다.
CN타워에서 내려와서 우리가 향한 곳은 CN타워 옆에 있는 Steam Whistle. 무료 맥주 시음코너가 있는 곳이다. 사실, 책에도 나오지 않고, 우리가 머무는 동안 어떤 여행사도 거쳐가지 않았다. 물론 여행사에서 소개한 Tour 코스에도 없던 곳이다. 알고 보니 귀찮을 법도 한데, 후다다닥 달려 다니더니, 시간을 쪼개서 우리를 데려간 곳!! 현지인들이 아는 곳인데, 이왕이면 맥주 한잔 공짜로 먹고 이런 구경 하는 것도 좋지 않나 싶어서 자기가 맡은 팀은 종종 데려간단다. 이런 곳을 찾아내고, 데려갈 줄 아는 사람이라니!! 맘에 들잖아!! 완전!!
사진 찍어주는 가이드! 스마일 양!!
투어에 참가해서, 그래 가이드가 사진 좀 찍어줄 수 있다. 그런데 이 가이드 좀 이상하다. 자기 카메라를 들고 나와서 찍는다. 보통 손님들 카메라로 한 장씩 찍어주는 게 일반적인데 이 가이드는 자기 카메라를 들고 나온 것도 신기한데, 그냥 찍어주는 정도가 아니라 "엄청 열정적으로!!"찍어준다. 포즈를 취하라 하고 이래저래 디렉팅도 하고, 바닥에 앉고 눕고, 비 맞고! 게다가 찍은 사진을 투어 끝나고 일주일 후에 잘 다듬어서 보내주기까지 했다.
사진 찍는 사람은, 사진 찍는 사람의 마음을 아는 법. 내가 사진을 찍으면 좋겠다 싶어 가는 곳곳마다 이미 그가 와있었다. "어디에서 찍어야 하는가"를 바짝 준비했다가, 재빠르게 데리고 가서 위치를 선점한 뒤 최상의 포즈를 추천해주고, 또 찍어주는 그를 보니 적당히 설렁설렁하려는 사람이 아니었다. 앉아서 찍고, 누워서 찍고, 무릎 꿇고 찍고...!! 위에서 찍고, 내려가서 찍고!! 우리는 사진작가랑 여행을 시작했던 모양이다.
함께하는 가이드! 스마일 양!
사실, 소제목을 쓰고 보니 웃기다. 함께하는 가이드라니. 그게 뭐 별건가? 당연한 거 아니야? 하지만, 현실은 안 당연하다. 투어 프로그램 중 배를 타거나, 곤돌라를 타거나 하면. 보통 타 여행사 가이드들은 "다녀오세요"하고 밑에서 기다린다. 그 시간이라도 쉬어야 다음 일정을 더 편하게 할 테니. 만족은 못해도 이해는 해줄 법하다. 게다가 가이드 생활하면 늘 같은 곳에 올 텐데, 얼마나 지겹도록 보고, 타고 하겠는가. 그런데 스마일 양은 늘 같이 있었다. 설명하고, 사진 찍어주고, 웃어주고, 챙겨주며. 늘 함께했다. 천섬에 갔을 때 한 시간 가량 크루즈 투어를 할 때 한국인 여행객들이 꽤 있었고, 배가 출발하는데 밑에서 가이드들이 손을 흔들어주고 "다녀오세요~!"를 하고 있었다. 그때 우리 가이드? 우리 배에 아주 당연하게 함께 올라탔다. 어느 자리가 이 배의 "핫"한 곳인가를 알려주고 선점시킨 후, 사진을 빠바바박 찍어주고 다닌다. 배는 한국어 설명 지원이 되긴 했는데 영어, 일어, 중국어가 나오고서야 한국어가 나오다 보니 설명이 나오는 포인트는 설명과 맞지 않게 지나가버리고 난 후인데, 스마일 양이 미리미리 여기라고 설명해 주는 덕분에 놓치지 않고 사진도 잘 찍고 꼼꼼히 둘러볼 수 있었다. 필수 포인트에서 필수 포즈로 필수 사진을 남기고 있는데, 타 여행사를 통해 왔던 한국인들이 자기 팀 가이드는 (육지에 있지) 어디다 버리고 "여긴 어느 여행사냐, 우린 가이드 안 탔는데"라고 묻고, 자기들 사진도 부탁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연출되었다.
이민세대의 현지 정착기
여행 내내 즐거웠고, 사진도 알차게 남겨 주었고, 심지어 여행 중간에 찍은 사진을 밤새 편집해서 손님들이 주인 이공이 되는 한 편의 뮤직비디오 동영상을 만들어서 이동하는 차에서 틀어주기도 했다. 이런 가이드와 함께라니, "그룹 투어"가 늘 이 정도라면 고민 없이 선택할만하겠다 싶었다. 여행 가이드이니까, 늘 좋은 곳을 여행하지고 늘 사람들의 사진을 찍어주지만 과연 자기 사진 한 장 제대로 된 건 있을까 싶어 몰래 찍거나, 혹은 괜찮다고 손사래를 쳐도 종종 세워놓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냥 그렇게 하고 싶었다.
여행이 끝나고 친해진 몇 집이 해산 후 저녁을 함께 했다. 그간 모든 동행이 고맙다고 엄마 아빠가 저녁식사에 같이 초대하셨는데, 여러 번의 권유 끝에 함께 저녁을 할 수 있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중에 이민을 와서 어렵게 영주권을 따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짧은 머리 군인 느낌이 강하더니, 역시나 직업군인으로 군생활을 하고 제대를 했단다. 한국에서는 희망이 없어 보였고, 어찌저찌 흘러온 캐나다에서 여기에 자리를 잡겠다고 결심한 후, 마찬가지로 억척스럽게 살아 내야 했던 이야기. 할 수 있는 모든 걸 했다고 했다. 새로 들어온 이민자에게 어느 하나 호락호락 자리를 내주는 곳은 없었단다. 닥치는 대로 영어도 새로 배워야 했고 일자리를 찾아야 했다. 진인사 대천명이란 말이 맞든 틀리든 일단 할 수 있는 걸 하고 봐야 했고, 더러는 그저 하늘인지 운인지 모르겠지만 기대야 할 때도 있었단다. 택배도 했고, 세탁소에서도 일했고, 그저 몸을 부지런히 굴려 돈을 벌 수 있다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고. 그렇게 일하고 돌아와 정말 열심히 공부해서 겨우 가이드 자격증을 손에 넣었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가이드일만 하는가 하면, 여전히 시간이 날 때마다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고 가이드가 되어 모든 일이 호락호락했겠냐면, 역시나 그럴 수는 없지. 모든 자수성가 스토리에서는 고고생과 고난의 시간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으니 말이다. 캐나다엔 이미 충분히 많은 한국인 가이드들이 있었고, 먼저 그들만의 리그를 구축한 그들은 신임 가이드에게도 그들만의 방식을 따르길 강요했던가 보다. 손님에게도 적당히 그들이 하는 만큼, 투어를 배정받을 때도 우리가 하는 방식으로 군소리 없이 따르라고 무언의 압박이 들어왔겠지. 타고난 성향이 반골기질이 강하니 스스로 이해하지 않는 것에 "YES"하고 군소리 없이 따를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어렵게 얻어낸 이 길을 버릴 수도 없었을 것이다. 모두가 그렇게 했던 건 아니지만, 호의를 보이는 쪽보다 공격을 하려는 사람이 더 많은 이 바닥 한가운데 살아남으려면 자신만의 특별한 방식으로 스스로를 차별화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저 안에서 결국 그렇게 어정쩡하게 소멸될 판이었다. 이왕 손님 돈을 받았다면 최선을 다해주자는 신념으로 손님들에게 하나라도 더 보여주게 하려고 애썼고, 이왕 여행에서 남는 게 사진이라면 여행을 이끌어주는 사람으로서 하나라도 더 멋진 곳에서 찍을 수 있게 찾아주고, 혹은 모두가 함께 찍힐 수 있도록 찍어주었다.
사람 마음 다 똑같다고, 잘해 준 사람 잘되길 바라는 마음 같을 테니, 손님들은 두루두루 입소문을 내주었을 거고, 그만큼 그가 가이드로 이름을 알리게 될수록, 기존 가이드들의 음해도 압박도 심해졌을 것은 적당히 조직생활을 해본 사람이라면 짐작할 만한 하다. 한발 더 뛰는 모든 행동이 다른 가이드들에게 이쁘게 보였을 리 없었다. 적당히 썰만 풀어내고 다녀도 쉽지 않은 투어에, 카메라까지 들고 온몸으로 뒹굴며 비교당할 케이스를 만들어내는 새파랗게 어린 가이드가 일상에 익숙해진 선임 가이드들에게는 얼마나 밉게 보였을까. 그래도 그는 현재 진행형으로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머리에 땜빵처럼 남아있는 원형탈모의 흔적들이, 결코 적지 않을 그의 스트레스를 짐작케 했다.
어디서든 살아남을 사람은 살아남는다.
젊어 고생이라면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만큼 온갖 일을 다 해봤을 우리 엄마 아빠도 열심히 뛰는 젊은이에게 마음이 쓰는 모양이었다. 지금애들이야 잘 모르지만 우리도 그랬다고, 그렇게 고생했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고 났더니 살만해지더라고 형처럼 누나처럼 격려도 응원도 아끼지 않았다.
막상 한국을 떠나 이민이란 것을 결심하고 와서 고생하다 보니 이 정도 고생을 한국에서 해도, 뭐가 돼도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단다. 한국 젊은이들의 이민 열풍이, 사실은 와서 이렇게 고생해야 하는 걸 제대로 모르는 것 일도 모른다고. 다만 자기 세대의 고생을 자기 자식들한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았고, 모두에게 평등한 세상은 없겠지만, 그래도 비교적 공평한 기회를 가질 가능성이 더 많은 이곳에서 자식들은 살 수 있게 하고 싶었단다.
평생 직업으로 삼고 싶었던 군대라는 직장에서 갑자기 내팽개쳐졌는데, 이 사회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더 이상 없어 보였고, 자기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그 끝에 남은 것이라고는 외면이라는 실망을 남겨준 나라를 떠나오고야 말았지만 이런 극한 상황에 닥친 사람이 아니라면 부모형제 친구가 있는 내 나라에서도 조금 더 열심히 살아보는 것도 방법이라고. 어디든 발 딛는 곳에 희망으로 가득 찬 꽃길만 펼쳐진 곳은 세상에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이민을 와서 살아남든, 내 나라에서 살아남든, 결국 그 어느 곳에서든 살아남을 사람은 살아남으니까. 그건 그렇게 타고난 "생존 DNA"의 힘이니까.
벌써 캐나다 여행을 다녀온 게 3년 전이다. 단풍 절정의 메이플 로드를 보겠다 갔었는데, 살짝 이른 탓에 불타는 단풍은 보지 못하고 왔지만, 불타는 열정을 가진 지인 하나는 만들어 왔으니 그 여행은 또 그렇게 의미가 있었다. 단풍 얘기에 우리의 캐나다가 생각나고, 그렇게 또 그가 궁금했다. 3년 동안 그는 조금 더 편안해졌을까. 얼마 전 오랜만에 연락을 하니 4~5월 날이 좋을 때는 로키 투어도 맡는다고 부모님 모시고 한번 더 오라는 그는 여전했다. 내년 날 좋은 5월엔 캐나다 서부 투어나 한번 나서볼까. 우리의 삶이 모두 조금은 더 나아졌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