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뿌듯한 홍콩 3박4일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족끼리 해외여행을 가게 됐다. 대외적 명분은 아빠 회갑 기념이었지만 나와 동생이 몇 년 새 결혼을 하게 되면 앞으로는 더욱이 가족 여행을 가기 힘들 것 같아서 겸사겸사 가게 됐다. 나는 해외로 나가보자는 말을 꺼냈다는 이유로 여행 준비부터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필요한 모든 것을 도맡아야만 했다. 모두들 '언제 몇박몇일 시간을 빼면 되냐' 외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무관심 속에서 시작된 홍콩 여행이었다.
여행지 선정부터 상품 예약까지 혼자 결정하고 진행했다. 물론 부모님께 바란 건 아니었고, 동생이 조금이나마 도와줄 줄 알았지만 역시나 헛된 기대였다. 원래 오키나와를 갈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내가 예약한 여행사 패키지 상품에 최소 인원 모객이 되지 않아 여행 일주일 전에 다른 상품으로 변경을 해야만 했다. 같은 일정으로 오키나와를 가는 건 도저히 찾을 수가 없어서 부득이하게 여행지를 옮길 수밖에 없었다. 하... 그때도 답답한 건 나뿐이었다. 나만 발 동동. 모두 나몰라라였다. 여행 일주일 남았다고!! 나 혼자 가는 여행 아니라고요!!
요즘 젊은 부모들은 본인들끼리도. 가족들과도 해외여행을 많이 가는 것 같다. 회사 후배 중에 매년 휴가 때마다 가족끼리 해외여행을 가는 아이가 있었다. 경제적인 걸 떠나서, 서른이 넘거나 가까이 된 자식들과 함께 여행을 다닐 정도로 아직까지 친밀? 화목하다는 것에 놀랐고 매년 여행을 떠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부러웠다. 반면 우리 부모님은 시골분들이기도 하고, 여행이라고 하면 주로 부모님 친구들이나 모임에서 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최근에야 해외로 나가셨지 그전에는 거의 국내 여행이었다. 여하튼! 엄마 아빠한테는 이번에 가족끼리 다녀온 이 여행이 은근 자랑거리인 것 같았다. 확실히 느꼈던 상황은, 홍콩에서 아빠가 전화를 받으며 "딸내미, 아들내미랑 홍콩 와 있다"라는 왠지 모르게 여유 있는 그 말투와 으쓱하는 어깨를 봤을 때.
진짜 이뻤다! 강변에서 봐도 산 위에서 봐도 우와우와 소리가 계속 나왔다.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도 입을 계속 벌리고 있었던 것 같다. 몇 시간이고 보고 있고 싶을 정도로 좋았다. 사실 나는 어떤 경험을 함에 있어 역사와 전통을 가장 중요시한다. 그리고 그것이 곧 의미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관점에서 홍콩은 나에게 크게 의미있는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야경을 보는 순간 그런 게 뭣이 중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강을 따라 끝없이 늘어선 건물들의 불빛, 까만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 찰랑찰랑 반짝이는 강물... 그 자체가 의미이고 가치였다. 아름다운 불빛들이 내 눈과 마음까지 반짝반짝하게 만들었는걸...! (좀 오글 >.<)
패키지는 비행기와 숙소에 따라 비용이 차이가 많이 난다. 만약에 친구랑 가는 거였다면, 저가 항공을 타고 경비를 세이브해서 쇼핑이나 먹는 거에 더 많은 돈을 썼을 것 같다. 그런데 부모님이랑 같이 가는 거라서 국적기를 타야겠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대한항공이나 아시아나 중에서 출발/도착 시간대에 맞는 것을 선택했다. 대한항공으로... 절대로~~ 타고 싶지 않았지만.. 부모님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무래도 국적기가 주는 안정감을 무시할 수는 없었기에. 그리고 숙소는 모든 객실에서 리버뷰를 볼 수 있다는 호텔로 선택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내방에서는 흔히 생각하는 전망 좋은 리버뷰라기보다는 단어 그대로 '강이 보이는' 방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보통 패키지 관광객한테는 저층 위주로 배정해 준다고 한다. 진짜 전망 좋은 리버뷰를 볼 수 있는 곳은 보통 20층 이상인데 ㅡㅡ) 그래도 다행인 건 호텔로 오면 밤이라서 방에서 커튼을 걷어서 밖을 볼 여유가 없었다. 조식 때 식당에서 강이 보였기에 그걸로 만족.
비행시간 편도 3시간 30분. 비행기 안에서 피곤함도 없었고 무엇보다 여행지에서 이동 동선이 짧은 것이 편했다. 홍콩은 땅도 작을뿐더러 대표적인 볼거리가 몰려 있어서 이동 시간이 길지 않았다. 그래서 짧은 일정 내 근처 나라를 다녀올 수 있다는 장점도 큰 것 같다. 우리도 3일 중 첫째 날 홍콩 구경, 이튿날 마카오, 셋째 날 중국 심천을 다녀왔다. 그중 심천은 선택관광이라 부모님만 다녀오셨는데 어른들이 좋아하시는 장가계 같은 멋진 자연 풍경과 전통 공연도 보고, 마사지까지 받고 오셨다. 딱 어른들 관광코스라 좋으셨던 것 같다. 그리고 새벽부터 밤까지 다니는 일정도 아니라서 힘들지도 않았고! 만약 홍콩에서만 3박 4일을 있었다면 지루했을 것 같은데, 여러 곳을 다니면서 볼 수 있어서 일타 쓰리피가 아니었나 싶다. (물론 입국심사를 여러 번 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줄 서서 기다리는 거 너무 피곤함ㅜㅜ)
홍콩이 첫 해외여행이었던 남동생은 이번에 꽤 재미가 있었나 보다. 엄마한테 "내년에는 태국이나 그런 곳으로 한번 가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뒤이어 엄마는 "그래, 그럼 이제 각자 얼마씩 모으자" 나는 그들이 대화에 끼지 않았다. 내년을 기약할 수 없었다. 일단 아빠와 나는 코드가 맞지 않는 것 같다. 아빠는 아빠 친구분들과 함께 일 때 가장 즐거우실 것 같다는 생각이 왕왕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년에는 친구분들과 여행에 돈을 보태드리는 방향을 제안하고 싶었다... 그런데 또 여행을 다녀온 지 일주일이 지나니 기억이 미화되었는지.. 내년에 더 괜찮은 곳으로 한번 가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ㅋㅋㅋ
그래도 좋은 추억을 많이 쌓은 것 같다. 주변 사람들한테 홍콩은 쇼핑 빼면 아무것도 없다고 들어서 걱정을 많이 했었는데, 막상 가보니 그런 것 같진 않다. 특히 홍콩과 마카오를 묶어서 가면 3박4일도 딱히 지루하지 않고, 아이나 어른 모두 좋아할 만한 야경이나 분수쇼나 카지노처럼 쉽게 가기 힘든 곳도 가 볼 수 있으니 가족 여행으로도 좋을 것 같다. 총평을 하자면, 이번 홍콩 여행은 가족 구성원들의 무관심으로 가끔 짜증인 나기도 했지만 모두 좋아한 것 같아서 주최 및 진행자로서 기쁘다...ㅎ 가족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