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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민 Apr 03. 2018

풍경은 크로아티아지.

자연에 감탄하고 인간의 노력에 감동하고.

시작은 '꽃보다 누나'

크로아티아를 처음 알게 된 건 tvN '꽃보다 누나'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다. 범국민적 열풍이었던 '꽃보다' 시리즈의 여배우 버전인 '꽃보다 누나'. 빠짐없이 챙겨 봤다. 예능에서 보기 힘든 배우들이 출연하기도 했고 의외의 캐릭터 조합이 재미있었다. 나만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직접 가본 곳이 아니면 여행지 자체보다는 거기서 일어나는 상황이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1박2일'을 볼 때도 여행지에서 멤버들이 미션을 하는 과정이나 에피소드가 더 재미있듯이 말이다. 여튼 '꽃보다 누나'라는 방송을 볼 때도 이곳이 이렇게 멋진 곳인지... 미처 몰랐다.


SNS의 힘인가?

방송 이후 페이스북을 볼 때마다 크로아티아에 대한 사진과 정보가 넘쳐났다. 방송에서 나오지 않은 명소들이 SNS에 최적화된 콘텐츠 형태로 생산되어 뿌려졌다.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곳>같은 뉘앙스가 뿜뿜하는 콘텐츠들을 많이 봐서인지 나도 모르게 '다음 여행지는 크로아티아'라고 정해버린 것 같다. 그래서 원래 가고 싶었던 스위스, 오스트리아, 헝가리는 자연스럽게 크로아티아 다음으로 미뤄졌다. 아마도 그런 곳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베스트셀러(ㅋ) 여행지이기 때문에 조금 늦게 가도 괜찮다고 스스로 합리화 해버린 걸지도 모르겠다.


NO필터, NO보정으로 달력사진 탄생!

막 찍어도 작품이 된다. 난 셔터만 누를 뿐. 파란 바다와 하늘, 주황색 건물이 사진을 완성시켰다. 너무 아름다웠다.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지루하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경치를 보다 보니 외국 해변에는 한국처럼 높고 현대적인 건물이 없다는 걸 발견했다. 이탈리아 나폴리도 그렇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항구나 해변은 대부분 옛날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것 같은데, 우리나라만 더 현대적으로 개발을 못해서 난리다. 지금 당장엔 관광 수입이 늘어날 수 있지만 먼 훗날에도 과연 좋게 작용할지는 모르겠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얘긴데, 광안리 해변의 크기가 예전보다 줄어든 것도 사람들이 모래를 다 갖다 쓰는 등 개발 때문이라 했던 것 같다. 거참.

스플리트 대성당 종탑에서
두브로브니크 반예비치


많은 바다를 봤지만 이런 바다 색깔은 처음 봤다. 지중해 바다가 새파란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다면 아드리아해에는 투명함과 영롱함이 더해졌다. 반예비치로 내려가는 계단 위에서 바라보고 있으니 '바다는 인간의 해수욕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원래 바다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며, 사람에게 한켠을 내어주는 것일 뿐'이라는 아주 기본적인 이치?섭리?가 떠올랐다. 그리고 또 광안리에 이어 해운대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에게 인심 써서 자기의 일부를 내어 줬는데 고마움은 커녕 돌아오는 건 오염과 무자비한 개발뿐이니 말이다. 마치 원래 인간의 자산 인양.


로마 황제가 사랑한 해변의 도시, 스플리트


내가 갔던 6월은 정말 더웠다. 매일매일 뜨거운 태양이 내려쬐는 여름날이었다. 살이 타는 건 속상했지만, 눈은 항상 즐거웠다. 스플리트는 길을 가다 멈춰서 봐도, 언덕에 올라가서 봐도, 눈앞에 보이는 모든 곳이 아름다웠다. 하늘에는 항상 구름이 떠있었다. 뭉게구름, 새털구름, 이름 모를 모양의 구름들. 그림으로 그릴래도 이렇게 아름답게는 못 그릴 거다! 아마 보정 없이도 사진이 잘 나온 이유 중 7할은 하늘 덕분이 아닐까 싶다.


CG 같지만 현실이야! 플리트비체


아바타 배경의 모티브가 됐다는 플리트비체. 이곳은 자연의 위대함을 안 느끼려야 안 느낄 수가 없는 곳이다. 그리고 인간은 우주에서 한 줌도 안 되는 존재란 것도 깨닫게 된다.(그 깨달음으로 인한 어떠한 실천은 아직 못했다^^;) 플리트비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국립공원인데 전체 크기가 무려 3만 헥타르에 달한다고 한다. 이 넓은 곳에 어떻게 다리와 계단들을 만들었을지 상상 조차 되지 않는다. 얼마나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이 희생했을까? 내가 내는 고작 몇 푼의 입장료로 감사함이 전해질 수 있을까?



플리트비체 호수는 너무 투명해서 물고기의 비늘이 다 보일 정도다. 물고기도 느끼는지 사람들이 먹을걸 꺼내면 발 앞으로 몰려든다.(내가 던진 땅콩도 받아먹었다. 진짜 신기했다. 소리를 듣는 건가? 그림자로 보는 건가?) 너무 투명한 나머지 물 바닥도 다 보이는데, 수심이 어느 정도인지 도통 가늠이 안됐다. 내가 볼 땐 별로 안 깊은 것 같았는데 실제로 엄청 깊다는 얘기를 듣고는 급 무서워졌고 나중에는  자연의 신비함이 으스스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원래 새까만 물만 무서운 줄 알았는데 이렇게 투명한 물이 무서울 줄이야! 후후


플리트비체 대표 명소, 벨라키 폭포

내가 이토록 감동받은 플리체비체도 사람마다 느끼는 감흥은 다를 것이다. 아는 실장님도 플리트비체를 다녀왔는데 장가계보다 별로라고 하셨다. 나도 어쩌면 실장님이 다녀온 장가계나 대자연의 상징인 그랜드캐니언, 세렝게티 등을 안 가봐서 이렇게 큰 감동을 받았을 수도 있다. 아 근데 나의 성향상 그런 곳에 가면 거기 나름대로의 감동을 받았을 테고, 그곳을 보고 왔다고 해서 플리트비체의 감동이 적어지진 않았을 것 같다. 여기보다 훨씬 작은 규모의 제주 사려니숲길을 보고도 또 다른 감동을 받을 테니 말이다. 캬캬! 그나저나 감동 잘 받는 것도 너무 피곤하다. 내 감정 소비...


아드리아해의 진주, 두브로브니크

두브로브니크 성벽 투어 중

어디선가 주워들은 이야긴데, 플리트비체가 하느님이 만들어 놓은 절경이라면 두브로브니크는 인간이 만들어낸 찬란한 유산이라고 한다. 만퍼센트 공감된다. 그 자체로 아름다운 자연에 인간의 간절함이 더해져 이런 걸작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뭐 물론 현시대에는 더 빠르게 화려한 건축물을 만들 수 있겠지만, 역사와 감동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이다. 적의 침략으로부터 가족과 터전을 보호하기 위해 쌓아 올린 성벽.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헌신으로 만들어진 결과물일지 그 시대를 짐작케 한다. 그래서 눈이 아닌 가슴에 와 닿는 것 같다. 아름답다가도 슬프다.



진정한 낙원을 원한다면 두브로브니크로 가라!


조지 버나드쇼는 두브로브니크를 지상낙원이라 말했다. 그만큼 유럽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은 완성되어 있다기보다는 진행형이다. 음. 무슨 말이냐면, 두브로브니크 성곽에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달까. 한국의 성곽들처럼 과거 흔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벽 안팎으로 사람들이 살고 있다. 여느 도시의 사람들처럼! 본인들의 일상을! 빨래를 널고 있는 아줌마, 세차를 하는 아저씨, 농구 코트에서 뛰어 놓는 아이들도 있다. 그런 모습을 보니 잘 살고 있는 남의 나라 국민들을 괜히 안쓰럽게 여긴 것 같아서 순간 민망해졌다. 깨달은 순간 슬픈 감상에서도 금세 벗어났다.


스르지산 전망대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스르지산에 올라가서 보게 된 두브로브니크 구시가지. 장관이라는 말로는 표현이 안될 만큼 멋있다. 사진으로 다 담기지 않는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다. 나는 여행지를 고를 때, 풍경을 가장 우선순위로 고려하는데 그게 웅장한 산새나 바다같은 자연 자체라기 보다는 그 나라만의 고유한 뭔가가 담긴 풍경이길 바란다. 그런 이유에서 인지 뉴욕에 가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런 도시의 풍경은 서울의 모습에 내 상상을 조금 더해 충분히 짐작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게다가 TV로 보는 것 이상의 감동을 느끼기는 어려울 것 같기도 하다. 그저 멋진 모습을 위해, 혹은 편리함을 위해 최첨단의 기술로 만들어낸 결과물인 것만 같아서.


우리 동네 재개발, 과연 좋기만 할까?

두브로브니크의 숙소는 구시가지에 있는 아파트먼트였다. 좋은 시설의 호텔도 있었지만, 현지인들은 어떻게 사는지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촘촘히 서있는 오래된 건물들. 구글맵으로 우리가 묵을 아파트먼트를 찾았고 입구로 들어섰다. 엘리베이터는 커녕 밝은 조명 조차 없다. 하지만 밝게 웃으며 우리 일행을 반겨주던 주인아주머니의 따뜻함이 있었고, 오래된 건물에서 느껴지는 친근함이 있었다. 체크인을 하고 올라갔더니 방 내부는 입구와 달랐다. 전혀 올드하지 않았고 깨끗하게 리모델링되어 있었다. 욕실이며 침실이며 우리집보다 깔끔했다. 나중에 알아보니 크로아티아에서는 건물 외관은 그대로 두고 내부만 리모델링을 한다고 했다. 좀 놀랐다! 여행 당시 서울의 우리 동네는 재개발 지역으로 선정되어 새건물이 들어올 모습에 모두 기뻐하고 있었다. 머지않아 동네 곳곳의 빨간 벽돌집들은 빌라촌으로 바뀌겠지? 그 당시 유행인 자재를 써서 비슷한 모양으로 디자인되겠지? 개성이라곤 1도 없고,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멋도 찾아볼 수 없는 그런 건물들. 크로아티아에서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보다 우리나라를 생각하니 괜히 씁쓸해졌다.


크로아티아는 사랑입니다♥

'꽃보다 누나' 방송이 끝나고 2년 반 정도 후에 갔던 크로아티아. 한국인들 사이에서 크로아티아 유행이 한풀 꺾인 건지 어쨌는지 내가 갔을 때는 한국 사람이 많이 없었다. 아니 동양인 자체를 거의 못 본 것 같다. 그리고 주요 관광지를 제외하고는 그리 복잡하지도 않았다. 이탈리아나 프랑스와 같은 다른 유럽의 도시는 어딜 가나 사람들로 북적거려 불쾌감마저 들었는데 크로아티아는 두브로브니크를 제외하고는 여유로운 편이었다. 멋진 풍경을 보며 힐링하기 딱 좋은 곳이 아닐까 싶다.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친절한 사람들은 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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