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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민 Aug 06. 2023

덕질은 일상을 풍요롭게 한다

뮤지컬 덕후로 사는 중

어릴 때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은 은근 오랫동안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나의 첫 직장은 공연기획사였다. 주5일을 공연과 함께 했고 주말에는 여기 저기서 받은 초대권으로 연극, 콘서트 등 보고 싶은 공연을 보러 다녔다. 그때는 그게 특별할 거 없는 그저 그런 일상이었다. 그러다 공연 업계를 떠나 이직을 했고 바쁘게 살다보니 이제는 특별한 날에나 보는 이벤트가 되었다. 공연을 한번 보려면 스케줄도 잘 맞춰야하고 비용도 만만치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전히 누군가 좋아하는 게 뭐냐고, 취미가 뭔지 물어오면 꼭 "공연 보는 거"라고 대답하곤 한다.




큰맘 먹고 가야 하는 대극장 공연

티켓값이 기본 10만원은 넘는 대극장 공연은 친구와 대학로에서 '한번 볼까?'해서 볼 수 있는 것과는 체감이 다르다. 그래서 보고 싶은 공연이 생기면 최대 할인 혜택을 찾아서 봤고 관극 자체에 의의를 두고 본 것만으로 만족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무리 다른 캐스트라도 같은 공연을 또 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만약 돈을 더 들이는 거라면 차라리 다른 공연을 보는 게 이득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뮤지컬 그날들, n회차 관람 중

워낙 유명한 뮤지컬이어서 몇 년 전부터 보고 싶었는데, 최근에 시간도 좀 생기고 오랜만에 뮤지컬을 볼까 싶어 고민 없이 예매하게 됐다. 운이 좋게도 좋아하는 배우의 첫공을 보게 됐고 팬클럽 회원 중에서 신청해 뽑힌 사람만 갈 수 있다는 배우님의 퇴근길에도 가게 됐다. 1m도 안 되는 거리에서 직접 보고 악수도 하고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




덕후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

재밌게 본 영화도 2번은 안 보는 내가 같은 뮤지컬을 3번이나 봤다. 놀랍게도 매회차가 다 다르고 못봤던 장면들이 계속 보인다. 왜 우리나라에 연뮤덕이 많고 회전문 관객이 많은지 이제서야 진심 이해하게 됐다. 며칠 전엔 유준상 배우님 캐스트의 그날들을 보고 왔다. 엄기준 배우님과는 전혀 다른 매력과 연기로 극의 분위기, 공기, 온도 자체가 달랐다. 웃음 포인트도 조금씩 다르고 배우들과의 케미도 다르다 보니 이미 본 공연인데도 지루할 틈 없이 새롭게 느껴졌다.


그리고 뮤덕이 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점은 내가 좋아하는 배우의 연기를 같은 공간, 아니 바로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인 것 같다. 예를 들면 눈물이 글썽하거나 미묘한 표정 연기 등은 매체를 통해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그리고 모든 공연은 아니지만 운이 좋으면 출퇴근길에 좋아하는 배우를 잠깐이나마 마주하고 소통할 기회도 있다.


최근 유준상 배우님의 퇴근길 영상을 보고 감동받은 포인트가 있었다. 공연을 막 끝내고 나와 힘드실 배우님께 어떤 팬이 "힘내세요"라고 했더니,

유준상 배우 : "안 힘들어. 팬분들 비싼 돈 내고 보러 와주시는데 다 사인하고 사진 찍어 드려야죠!"

아니 이런 말 듣고 뮤덕 안될 사람이 있겠냐구... 그 자리에 없었던 나도 덕후가 될 것 같은데...

20230803 그날들 커튼콜 _ 유준상 & 오종혁




무조건 행복해지는 행복 버튼

일이 아무리 개떡 같고 사람이 싫고 이런 저런 고민으로 힘들 때에도 덕질 덕분에 다 잊을 수 있다. 요즘 내 일상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건 티겟 예매 사이트와 팬카페 들어가기, 이 2가지이다. 티겟 예매 사이트는 내가 예매한 좌석보다 더 좋은 자리가 있는지 취켓팅을 시도하기 위함이고 팬카페는 배우님 소식이나 퇴근길 후기 등이 올라왔는지 보기 위함이다. 이것만 해도 시간이 순삭이다. 그리고 공연을 보러 가는 날이면 하루가 더 빠듯하다. 일 끝나고 운동하고 공연장까지 가려면 시간을 잘 쪼개 써야 한다. 그럼에도 이 모든 순간이 행복하다. 팬카페에서 새로운 소식이나 사진을 볼 때, 유튜브에서 영상을 찾아볼 때, 같은 커튼콜 영상을 몇십 번 돌려봐도 지겹지가 않다. 말 그대로 요즘 100% 행복해지는 나만의 방법을 찾은 것 같다. 연예인 덕질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너무 이해되는 요즘이다.

20230715 그날들 커튼콜 _ 엄기준 & 김건우




내 덕질의 유일한 걸림돌, 텅장

찐 뮤지컬 덕후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란 걸 안다. 글을 쓰고 보니 되게 많이 본 것 같은데 막공까지 다 합쳐서 7번 정도다. 실제로 전관(특정한 작품이나 캐스트의 모든 회차를 관람)을 하는 분들도 많다고 하는데 다들 금수저는 아닐 테고 좋아하는 걸 위해 그만큼 노력해서 감당하는 것일 거라 생각된다. 나도 무리되지 않는 선에서 관극 하러 갈 생각이다. 어차피 돈내고 더 보고 싶어도 9월 초가 막공이고 또 언제 할지 모르니 볼 수 있을 때 봐둬야징


초보 뮤덕의 다음 목표는 엄유민법 앨범에다 배우님들 사인 다 받기인데, 엄마가 올해 나 운 좋다고 했으니 아마 이것도 이룰 수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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