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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수책방 Jan 21. 2021

팀장님, 저한테 왜 그러세요?(회의 지옥 편)

-이놈의 조직 문제 3. 

천 팀장이 과거 팀원이었을 때 팀장은 뭐든 독단적으로 결정했다. 천 팀장은 그게 힘들었던 경험이 있어 나중에 팀장이 되면 꼭 팀원들의 의사를 묻고 일을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월요일 오전 10시. 천 팀장이 공 과장 자리로 왔다. 

“공 과장님, 잠깐 미팅 좀 할까요?”

천 팀장과 공 과장은 회의실에 들어가 지난 주말에 뭐했는지 잡담을 시작했다. 30분 뒤 천 팀장은 본론에 들어갔다. 

“지난 주 프로젝트 진행 일정은 어떻게 하기로 했죠?”

“A, B, C안 새로 수정해서 오늘 최종 결정하기로 했어요.”

“아, 맞다. 이따 오후에 회의지? 기대해도 되죠?”

이런저런 이야기가 끝나고 1시간 만에 미팅이 끝났다. 

월요일 오후 3시. 천 팀장, 공 과장, 엄 대리, 나 주임이 회의실에 들어갔다. 일단 공 과장이 수정된 시안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다들 어떤 안이 제일 괜찮아요?”

“전 B안이 좋습니다.”

“저도 B안이 제일 무난할 거 같습니다.”

“전 A안, B안 둘 다 괜찮습니다.”

“아, 나도 C안은 별로인데, 여기엔 다들 동의하는 거네요. 근데 A안이나 B안이나 좀 약하지 않나? 둘을 좀 섞으면 어때요? 괜찮을 거 같은데….”

“A안이랑 B안은 성격이 좀 달라서 섞으면 산만할 거 같은데요.”

“아니에요. 좀 성격이 달라서 섞으면 색다를 수 있어.”

팀 전체가 두 개의 안을 어떻게 섞을지 고민하며 회의를 하다 오후 6시 30분이 되었다. 

“아, 퇴근 시간 지났으니까 다들 어서 퇴근하세요. 내일 다시 얘기하죠.”

“팀장님 근데 프로젝트안 본부장님이 수요일까지 보여달라고 하셨는데 빨리 결정해야 할 거 같은데요.”

“그러니까요. 내일 빨리 결정해서 수요일에 완성하죠.”

다음 날, 2시간의 짧은 회의 끝에 ‘A+B안’에 대한 이야기가 끝났고, 엄 대리가 최종안을 만들어 수요일에 다시 회의하기로 했다. 

수요일 오전 9시 30분. 최종안에 대한 검토 회의가 시작됐다. 

“아, 이게 아닌데…. 어제 제가 말한 건 이게 아니고 A안의 요 부분을 좀더 크게 하고, 조 부분은 좀 작게 하고…. 무슨 말인지 이해하셨죠? 오전 중에 수정하고 이따 점심 먹고 바로 미팅할까요?”

오후가 되어 수정안을 봤지만 천 팀장은 여전히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듯했다. 

“제가 본부장님한테 말씀드려서 하루만 연기해 달라고 해볼게요. 이대로는 안 될 거 같아요.”

목요일 오후. 천 팀장이 어느 정도 마음에 든 ‘A+B안’을 가지고 본부장과 회의가 있었다. 본부장은 마음에 들지 않다며 다른 안도 보자고 했다. 

금요일 오후. 본부장이 최종 시안으로 고른 건 C안이었다.           



“나 이번에 회사 관둬.”

“왜? 무슨 일 있었어?”

“하, 팀장 미친….”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주변 동료가 그만두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이유는 대부분 함께 일하는 사람 때문이었다. 그것도 대다수가 팀장(누군가에게는 본부장이나 바로 위 선배일 수도 있겠지만) 욕을 하며 관두었다. 


사람이 다양한 것처럼 팀장의 유형도 아주 다양했다. 책임 전가형, 명령 하달형, 회의 지옥형, 생색 내기형, 윽박지르기형, 최고 소심형, 능력 부재형, 1분 1초형(1분 1초마다 생각이나 성격이 바뀜), 초등 교사형, 수습 불가형, 빨리빨리형, 몰라몰라형, 눈치코치형, 무념무상형, 복잡다단형 등등 아주 다양한 팀장이 있었다. 팀원에게는 어떤 팀장을 만나느냐에 따라 나의 회사생활이 좌지우지될 정도로 팀장과의 만남은 중요했다. 


직장인마다 나와 맞는 팀장의 유형이 다르겠지만, 내가 겪었던 팀장 중 가장 좋았던 건 칼퇴근하는 팀장이었다. 단지 나도 눈치 보지 않고 칼퇴근할 수 있어서 좋았다기보다는 회사보다 개인의 삶이 더 중요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여기서는 나와 주변 동료를 특히 미치게 만들었던 몇몇 팀장에 대해서 잠시 엿보고 가고자 한다. 


과거 군대식 조직이 공고할 때는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팀장이 많았다. 이때를 힘들게 보냈던 천 팀장과 같은 사람은 민주적으로 의사 결정을 하고 일을 진행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사소한 일도 팀원과 미팅이나 회의를 통해 이야기하고(요즘은 회의 못지않게 단체 대화방에서 1시간마다 말을 걸기도 한다), 사적인 이야기도 나누며 팀원에게 관심 많은 팀장으로 남고자 한다. 처음 천 팀장을 겪는 팀원은 자신의 이야기도 많이 들어주고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는 좋은 팀장을 만났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제는 곧 들이닥친다. 


먼저 일할 시간이 부족해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뭐가 그렇게 미팅하고 회의할 일이 많은지 아주 사소한 일에도 회의실에 모여야 한다. 게다가 딱히 회의에서 결정되는 것도 없다. 사적인 이야기로 30분, 1시간이 지나면 짜증부터 난다. 빨리 회의 목적을 달성하고 싶지만, 꼬치꼬치 캐묻고 자기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는 팀장 때문에 그것도 쉽지 않다. 일주일에 서너 번씩, 한 번 하면 짧게는 1시간, 길게는 3~4시간 하는 회의 때문에 일을 하러 회사를 가는 건지 회의에 참여하러 회사를 가는 건지 모를 때가 많다. 회사에서는 여러 가지 일을 결정할 권한을 팀장에게 주었는데, 팀장은 그 권한을 행사할 생각이 전혀 없다. 자꾸 결정하지 않고 팀원에게 “이건 어떨까요? 저건 어떻게 생각해?”라며 질문만 던지며 나는 민주적인 팀장이다라고 착각한다. 


한 회사에서는 팀장이 주최하는 회의가 너무 많자 팀원들이 참다 참다 이야기를 했다. “팀장님, 저희 회의가 너무 많은 거 같아요.”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그래요? 전 근데 우리 회의가 너무 적다고 생각해요”였다. 이런 팀장을 만난 팀원들은 오히려 독단적으로 결정하는 팀장을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뭘 원하는지 맞혀볼래?     


회의에 빠진 팀장의 문제는 사실 독단적인 팀장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데 있다. 팀원에게 온갖 의사는 다 묻지만 그 의사는 팀장에게 하나도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질문을 던지고 회의를 또 하고 이런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내 마음에 드는 대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 마음에 쏙 드는 대답이 나올 때까지 묻고 또 묻는 거다. 


이런 팀장을 겪은 팀원은 처음 회의에서는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다가 나중에 가서는 그게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닫고 팀장이 원하는 게 뭔지 맞히려고 노력하게 된다. 마치 시험에서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 맞혀보세요’라는 문제를 만난 것과 같다. 팀원이 저자의 의도가 무엇인지를 맞혀야 회의가 끝나고 일이 진행되지, 팀장 결정을 기다려서는 끝나지 않는다. 팀장은 곧 죽어도 자신은 독단적이지 않고 팀원 전체가 이야기해서 결정하는 사람이어야 했으니까. 게다가 팀장이 뭘 원하는지 정답에 대한 힌트도 없고, 팀원에게 자신의 의도(의도가 없고 느낌만 있는 경우도 많다)도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고 늘 돌려서 이야기하는 통에 팀원은 정답 맞히기 게임이라는 구렁텅이에 빠져버린 것만 같다. 



작가의 의도를 맞히는 문제가 많은 이유는?



그랬다. 생존을 위해서. 



전에 내가 담당인 책 표지를 결정하는 회의를 한 적이 있는데, 나는 분명 A 표지가 좋다고 결정했는데, 팀장은 “그건 이래서 별로지 않아? 저게 더 낫지 않아?”라는 말을 반복하면서 내 결정을 통과시켜 주지 않았다. 그래서 “그럼, 팀장님이 고르세요. 그거대로 갈게요”라고 했더니 “너가 담당인데, 네 생각이 중요하지”라고 했다. 결국 팀장이 원하는 표지에 대해 내가 “아, 다시 생각해 보니 그 표지가 더 좋네요”라고 이야기해야 일을 진행할 수 있었다. 


기획 회의 때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만들고 싶은 책의 기획안을 들고 회의에 들어가면 못마땅한 팀장은 고개만 갸우뚱거렸다. 그리고 “나를 설득시켜 봐라”라고 하며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이유를 내놓길 원했다. 그렇지만 내 기획안이 마음에 들지 않은 이유는 그냥 ‘재미없다’였다. 만약 이 기획안을 통과시키지 않을 생각이라면 첫 회의에서 바로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면 시간 낭비할 필요도 없는데, 꼭 지금 기획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하니 더 보충해서 가져오라고 했다. 다음 회의, 그다음 회의가 되어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여전히 재미없어 통과는 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탈락도 아닌 상태가 유지됐다. 나 스스로 해당 기획을 포기해야만 하나의 기획에 대한 결정이 끝이 났다. 결국 나중에 통과되는 기획은 전부 팀장이 “이런 소재 재밌지 않아? 이거 구체화해 볼래?”라고 이야기한 것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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