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의 조직 문제 7.
회사 워크숍은 아니고, 엠티를 갔다. 직원 간에 팀을 짜 게임을 하고, 고기를 구워 먹고, 술을 한잔했다. 2차로 대표와 직원이 함께 간단히 맥주 한잔하며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맨앞 상석을 마련하고 직원들은 대표를 바라볼 수 있게 테이블을 배치했다. 대표는 “회사의 철학이 어쩌고저쩌고, 나의 철학이 어쩌고저쩌고….” 일장 연설, 혹은 강의를 시작했다.
“우리 회사는 모든 임직원들이 수평 관계야. 누구나 자유롭게 말하고 질문하고 답할 수 있어야 해. 혹시 질문 있는 사람?”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고, 그때 1차에서 이미 취한 한 직원이 횡설수설했다.
“내 이야기 듣고 싶지 않은 사람은 굳이 여기 안 있어도 돼.”
한쪽에서는 취한 직원을 진정시키고, 대표는 또 질문자를 찾았다. 아무도 질문을 하지 않자 대표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질문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 일장 연설을 했다. 그제야 본부장, 이사 등 몇몇이 손을 들고 질문을 했다.
“경 본부장이 아주 좋은 질문을 했어.”
그러고 나서 또 질문에 대한 답으로 일장 연설을 시작했다.
중견기업에 입사한 지 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엠티를 갔다. 거기서 내가 받은 인상은 충격과 공포였다. 임직원이 팀을 나눠 뭐 알 수 없는 게임을 했는데, 열심히 참여했다. 그러다가 세 번째 게임까지 끝나고 우승팀이 가려졌다. 그때 이사 한 명이 강당으로 들어오더니,
“대표님 오셨습니다!”
이 한마디로 게임 사회자와 임원들이 분주해졌다. 곧 사회자가 직원들에게 말을 하는데,
“대표님 오셨으니까 아까 마지막 게임 다시 할게요. 다시 팀별로 모여주세요. 대표님한테 우리가 재밌게 놀고 있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해요.”
대표가 들어오고 강당 뒤편에 아주 편해 보이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게임을 시작했는데 다들 마치 처음 하는 게임처럼 즐겁게, 열심히 했다. 대표 앞 재롱잔치를 보는 것 같았다.
다음 날 오전에는 또 팀을 짜 족구를 하고, 피구를 했다. 대표가 심판을 봤는데, 승부가 너무 한쪽으로 기울자 편파 판정을 하며 기울기를 조정했다. 난 모든 과정이 너무 지루해 팔짱을 끼고 짝다리를 짚고 구경하고 있었는데, 한 직원이 다가오더니 “대표님 앞인데 팔짱 푸세요”라고 하고, 다른 직원이 다가오더니 “대표님 계신데 짝다리 하지 마세요”라고 했다.
분명 전날 밤 연설에서는 대표님이 우리 회사 구성원은 수평 관계라고 했는데, 뭐가 수평 관계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무도 대표를 편하게 생각지 않고 모두가 떠받들고 있는데, 질문하라면 편히 질문할 수가 있을까? 누가 봐도 상석에 앉아서 우리는 수평 관계다라고 이야기하면, 그걸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이 있을까?
이 회사에서는 1년에 한 번씩 큰 행사가 있었는데, 외부 인사도 초청해 행사를 관람했다. 대표와 외부 인사는 그럴싸한 의자에 앉아 행사를 지켜봤는데, 그 옆에는 경영본부의 막내 여성 직원 둘이 타이트한 정장을 입고 굽 높은 구두를 신은 채 시중을 들어야 했다. 외부 인사를 초청한 주체가 손님 접대하지 않고 막내들을 시키는 것도, 그중에도 여성을 비서처럼 부리는 것도 구시대적이고 차별적이었다. 이런 시중을 다 받는 대표는 그런데도 우리가 수평적이라고 한다.
회사에서 막내의 고통은 끝이 없다. 팀으로 전화가 오면 전화를 받는 것도 막내고, 회사로 온 신문이나 잡지, 여러 자료를 정리하는 것도 막내고, 택배를 포장하는 것도 막내고, 심지어 점심때 식당에 가서 수저를 배치하고 물을 따르는 것도 막내다. 군대와 뭐가 다른가. 꼰대가 되지 않으려는 선배가 늘면서 막내 일을 나눠서 하려는 노력도 있지만, 이상하게도 결코 전화를 먼저 받는 일이 없다. 막내들이 온갖 잡무를 다하고 나면 일할 시간이 부족해 일을 배워가기도 벅찬데, 막내가 못마땅한 선배들은 이런 소리를 한다.
“왜 이렇게 일이 안 늘지?”
시대가 변해 회사 구성원이 일을 할 때 소통과 자율성과 창의성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그간 쌓아온 수직 구조는 굳건하고, 바뀔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구시대적인 회사로 남을 수는 없으니 실질적인 구조는 바꾸지 않으면서 말로는 수평 구조라 한다. 우리 회사는 창의적인 회사라고 외부에다가 떠들어대야 하니까. 좀더 수평적임을 드러내기 위해서 하는 행동이 회의실 테이블 배치를 둥그렇게 하든가, 직급을 없애 ‘마이클님, 앤서니님, 수잔님’이라고 별명을 부른다. 그러나 해당 회사의 직원들은 알고 있다. 다 같이 ‘님’을 붙이지만, ‘님’의 무게감은 다르다는걸.
직장인이 좋은 회사를 꼽을 때 안정적인 회사, 즉 잘리지 않는 회사를 선호하기도 한다. 하지만 잘리지 않는 회사가 좋은 회사가 아니라 (우리의 현실과는 동떨어지긴 했지만) 잘못을 하면 사장도 자를 수 있는 회사가 좋은 회사다. 나는 잘못하면 잘리는데, 사장은 잘못해도 잘리지 않는 한 수평 구조의 회사가 있을 수 없다.
한 중소기업은 가족(?) 같은 분위기였는데, 사장 생일이 되면 팀별로 사장 앞에서 장기자랑을 했고, 돈을 모아 사장이 좋아하는 명품을 사주었다. 한 중소기업은 아침마다 전 직원이 빙 둘러앉아 조회를 했는데,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있고 뭐를 하고 있는지 돌아가면서 자유롭게 발언을 했다. 모두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고상한 취미활동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한 직원이 주말에 한 게임 이야기를 했더니 이를 못마땅하게 여기던 사장이 결국 그 직원을 자른 일도 있다. 그러니 회사에서 ‘우리는 자율적이고 수평적인 분위기다’ 하는 소리는 믿을 게 못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