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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나다 이군 May 20. 2024

왕을 참하라. 에라이....


'왕을 참하라'  제목부터 도발적인 책을 읽었다. '참'의 령을 내릴 수 있는 존재가 왕인데, 그런 왕을 참하라니. 과연 누가 그런 령을 내릴 수 있을까? 책에는 '백성의 편에서 본 조선통사라는 부제'가 붙었다. 오호라. 백성이 나랏님에게 령을 내리는 것이로구나. 삐딱선 타기를 좋아하는 나의 호기심을 충분히 자극할 만한 책이었기에 주저 없이 거금 들여 인터파크에서 구입했다. 


1. 역사는 주관이란 말을 먼저 해야겠다.


소감을 적기 전에 먼저 밝혀야 할 것이 있겠다. 나는 이 책의 주장과 내용, 그리고 저자의 관점과 역사의식을 역사를 바라보는 주관적인 시각으로 인정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주관적이란 글귀에 대해 오해 마시길.... 나는 객관적인 역사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므로 어느 누가 써재껴도 주관적이라고 평할 것이기 때문이다. 신채호도 주관적 역사관이고, 김부식도 주관적 역사관을 가진 사학자일 뿐이 라는게 내 생각이다. 이 또한 주관적인 생각이다.


E.H. 카가 그랬던가 역사란 현재의 창을 통해 바라본 과거의 머시기라고....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역사란 현재의 어떤 놈이 가지고 있는 생각대로 분류하고 간추리고 골라내서 그 입맛으로 풀어쓴 과거의 머시기라고 얘기하고자 하는 게 내 생각이란 얘기다. 팩트의 해석도 중요하겠지만 차용하는 소재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주관일 것이다. 그런데 현재 교과서에 4.19 혁명이니 5.16 군사쿠데타니, 5.17 민주항쟁이니 6.10 민주화 운동 등이 곡해는 고사하고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니 오호통재라... 아니할 수 없겠다.


그래서 역사는 주관이다. 이 책에서도 어차피 실록을 토대로 뼈대가 꾸려져 있으니, 수도 없이 언급되지만 역사란 이긴 놈의 역사라고 줄창 얘기한다. 광해군을 몰아낸 서인 들이 쓴 광해군일기는 당연히 광해군은 임금 자리에서 조차 쫓겨나야 할 만큼 찢어 죽일 놈이어야 했을 테니. 그런 의미에서 이 책도 의미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역사적 사건을 열거하면서 저자의 주장 즉 역사적(주관적) 평가를 동시에 풀어간다는데 묘한 매력이 있는 책이다. 또한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영어는 나와도 한자는 한 글자도 표기되지 않은 최초의 역사책이라는 점이다. 아무튼 결론은 역사적 지식이 해박한 입담 좋은 사람과 술자리에 같이 한 느낌이다. 그런 술자리를 좋아한다면 한 번 읽어보기를 권할 만한 책임에는 분명하다.  


2. 작자 청장 백지원


나는 영화를 볼 때도 감독이나 배우, 음악감독, 카메라 등의 스탭들도 보는 편이다. 음악을 들을 때도 그렇고 특히나 책을 고를 땐 더더욱 누가 썼는지가 중요한 기준이 되곤 한다. 그리고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으면서 왜, 무슨 의미를 가지고 이런 얘기를 하고 있을까... 연출이나 작가, 아티스트의 의중을 알아보려 노력한다. 왜 그런지는 굳이 구구절절이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런데 이 분은 도통 모르겠다. 심지어 네이버도 잘 모른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내용보다도 도대체 어떤 인간일까? 어떤 생각을 가진 인간일까를 캐치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바뀌어버렸다.


청장 백지원. 재미사학자라는데, 유추컨대 이 분은 아마도 국방대학원 정도에 다닌 경험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군바리 출신일 것 같다. 그리고 적당히 군생활과 주변 생활을 겪고 지금은 미국에서 책이나 읽으면서 그동안 관심이 많았던(혹은 전공했던) 역사, 특히 전사(戰史)를 통해 소일하고 계신 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다시 한번 사족을 달지만, 이는 결코 폄하하자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이런 사람들이 더욱더 많아져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따위 글을 끄적이고 있는 나 역시 예외가 아닌 것처럼.... 


3. 본격적으로 내용에 대해 들여다보자. 이제부터는 이 책의 문체(?)를 빌어 표현하겠다.


책은 이성계의 조선설립에서부터 러일전쟁 후 한일합병되어 조선(대한제국)이 망하는 시점까지 초지일관의 관점으로 풀어나간 역작(?)이다. 여기서 초지일관의 관점이란 다음의 세 가지다. 머리말에서부터 중간중간 수없이 인용되고 마지막 마무리까지 이 주장으로 맺는다. 


1.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성리학에 죽자 사자 매달린 조선은 망해도 한참 망했을 나라였다.


2. 세계에서 가장 악랄한 신분제도를 500년간 유지해 온 듣보잡 비인권 국가로써 망해 마땅하다.


3. 당쟁이 일제가 심어 놓은 헛소리가 아니라 실제로 조선은 당쟁 때문에 망했고, 망해도 싼 나라였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19세기의 조선은 아프리카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가장 미개한 국가였으며, 일본이 아니어도 어딘가에는 먹혀도 먹혔을 나라였다고 한다. 단지, 형편없는 위정자들이 약삭빠른 일본이라는 독한 놈을 만나 '악'소리도 못 질러 보고 먹혔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조선 역대 27명의 임금을 밥값 정도 한 임금, 밥값은커녕 죽값도 못한 임금 등으로 분류하고 심지어 점수까지 매겼다. 재밌는 발상이고, 공감이 가는 언급이었다. 그런데 임금에 대한 평가는 최근에 일반적인 담론에서 벗어나는 내용이 없다. 그저 확인일뿐이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독자였다면  충격(?)이었을까? 


아울러 고려 때부터 중국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었다는 사실도 단언한다. 조금 석연치 않을지언정 맞는 얘기 아닌가? 또한 조선은 500년 내내 한 번도 풍족함을 누려 본 적이 없는 나라라고도 주장하는데, 이 시기의 생산력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이해가 갈라나? 


아.... 본문내용은 이 정도로 하자. 내가 무슨 평론을 쓰는 것도 아니고.... (틈날 때마다 업데이트하지 뭐)  

1906년 ‘일-러 전쟁 화보’에 실린 일본군 철도대대의 경의선 철로 부설 작업. 서울 신촌 와우산 부근에서 흰옷 입은 공병대대가 철길을 놓던 중 찍은 사진(지원아빠 소장 파일 中) 


4. 나머지 소소한 감상


처음에 책을 들고 읽기 시작하는데, '음. 제목만큼이나 도발적인 마인드로 책을 썼군. 의욕도 대단하구. 어디 한 번 지켜볼까?' 상당히 긍정적인 출발이었다. 그런데 진도가 나갈수록 '어? 이 새끼 뭐지?' 싶더니 '어라? 이 새끼 뭐야 이거'로 변하고 말았다.(거듭 밝히지만 본 글의 문체는 이 책의 표현을 차용하고 있는 중이다) 


일단 뭐가 백성 편에서 보았다는 것인지. 어디에도 백성의 눈과 입은 없던데, 특히 동학혁명을 얘기하면서도 뭐가 특별히 백성의 편이었다는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낚였다는 생각밖에는. 임금이나 사대부라는 작자들이 제 팔자, 제 당파, 제 친족이나 먹고살 궁리나 했지, 백성을 위해 헌신하는 놈이 없더라는 얘기일까? 그렇다고 하더라도 백성이 바라본 역사라기엔 좀 부족하지 않나 싶다. 그렇게 양반이란 작자들을 욕하고, 독자보고는 어디 가서 양반이라고 자랑하지 말라면서 자신은 또 양반가문임을 자랑스레 얘기하는 것도 좀 의아스럽다. 


결정적으로 종종 저자의 생각을 드러내는 부분에 언급되는 일련의 사고는 가히 충격적이다. 현대사를 언급하고 있지는 않아 저자의 본심과 관점을 충분히 살필 수는 없지만, 박정희를 민족의 자긍심과 애민의 정치를 펼친 군주로 인식하는 저자의 안목에서 더더욱 헷갈리는 것이다. 무엇이 자긍심이고 무엇이 애민인가? 인민을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혹은 벗어날 수 있도록 토대가 되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일터이다. 그것마저 아니었다면 역사적으로 민주주의의 싹을 짓밟아 버린 쿠데타를 일으킨 반란의 수괴이자, 친일민족반역자일 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저자는 반란 혹은 쿠데타에 대해 대단히 호의적이라는 점이다. 물론 개인적인 역사관에 따라 썩어빠진 조선이라는 조정을 뒤집어 버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선택이었다고 얘기할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그건 가정일 뿐이고. 그렇다고 박정희가 민족의 최고 지도자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을까? 그런 논조라면 책에서도 태종이나 연산군 등에 대한 평가도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저자가 가장 극찬하는 세종대왕 시대에도 못 먹고 헐벗었다면서.....  


한 가지 더. 이 책의 주장은 장(章)과 장(章) 사이, 화제와 화제사이의 간극이 많이 보인다. 전체적으로는 마치 래디칼(Radical)한 개혁을 지상과제로  여기는 듯 하지만 면면히 살펴보면 또 아닌 것 같기도, 결국 그 개혁이란 것이 백성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며, 그러기 위해선 어떠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반추가 없어 보인다.


 더욱이 정사와 야사를 혼합해서 본인의 관점을 사실인 양 주장하는데, 그 주장의 정합성이랄까? 당위성이 약하다. 그냥 '그건 네가 잘못 알고 있던 건데 그게 아니라 이랬던 것이다'라고 질타할 뿐이다. 그렇다고 모두 근거나 논리가 없는 빈약한 주장일 뿐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너무도 명확한 기준(앞에 언급한 3가지) 중심의 평가이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다고 이해한다. (이 글이 더 구체적인 준거 없이 떠들어대는 허접한 주장이라고요? 맞습니다. 하지만 이 글은 평론이나 그런 글이 아니거든요. 이 글을 돈 주고 사서 읽으시나요?) 


작가에 대해 관심이 증폭된 것은, 실제로 얼마나 공부하고 실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일단 이 정도 책을 엮어냈다면 당연히 기본기는 인정해야 한다.) 심지어  짜깁기 티가 너무 나는 부분들도 왕왕 눈에 띄면서 아마추어적인 글짓기에 고개가 갸웃거렸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그럼 나는 이 보다 잘 쓸 수 있냐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답하리라. 평론가가 소설가 보다 소설을 잘 써서 평론하냐고. 나아가 그럼 네가 평론가냐라고 물으신다면 이렇게 대답하지요. 난 평론가 보다 무서운 독자일 뿐이라고. 


 쓰다 보니 악담처럼 되어 버렸다. 그렇다고 이 책이 그렇게 무의미하거나 심지어 유해한 책은 아니다. 많은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익숙지 않았던 사실과 관점들을 제공하고 있으며, 이러한 일련의 사실들을 통해 나와 다른 신선한 시야를 갖출 수 있는 그래서 사유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여지가 많은 책이다. 단, 나도 잘 모르겠지만 숨겨진 행간의 비밀을 살필 수 있는 비평적인 시각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아무튼 더러는 짜증도 났지만 아주 재밌게 읽었다. 




* P.S : 정정합니다.

포스트를 올리고 딱 1개월 만에 다시 토를 달게 되었습니다. 다른 역사서들을 다시 보고 그간의 생각들을 반추해 본 결과 짧게 언급하자면 이 책은 어쩌다 한 편의 역사책 정도 읽는 일반인들에게는 별로 유용한 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비판적인 내용은 최근에 일반화되고 대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는 내용 외에 새삼스러울 게 없으며, 이러한 몇 가지의 버무림으로 속에 숨겨진 독(毒), 즉 전반적인 역사적인 시각 자체를 호도하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이 책은 적어도 여러 분야의 역사적 정황과 자료를 다각적인 방법으로 접하는 분들이(아니면 역사서라도 열심히 꾸준히 그리고 많이 읽는 분이라면 모를까) 보시면서 어라? 하면서 본인의 생각을 재정립하는데 도움이나 될까? 그렇지 못한 일반인에겐 아닌 것 같습니다.  

조선이란 나라에 대해 칭찬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만, 저자의 생각처럼 그렇게 존재할 가치조차 없었던 나라였을까요? 500년이란 오랜 기간을 이어 온 조선이란 나라가 과연 저자의 궤변(일제가 주장하던 바와 같이)처럼 그렇게 단편적이 사항으로 재단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주의도 주장도 모호한 채 다양한 짜깁기식 저술에도 모자라 감성적 치기를 근거로 역사의식 자체를 부정하는 자세는 바람직한 학자(?)의 모습이 아닌 것 같습니다.(분명 학자는 아니겠지만) 독서의 선택을 해라 마라 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고 어차피 보실 분들이라면 그냥 역사서라 생각하지 마시고 조선일보나 일요신문 가십기사 정도로 생각하고 (비)웃으며 가볍게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 



(20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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