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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캐럿 Nov 04. 2021

33년 만의 일

33년 만이다. 


17살 때 첨벙거리며 비를 맞았는데, 50살 때인 오늘 비를 주루룩 맞았다.


벼르고 별러 오늘 동료와 외식을 했다. 

복무를 달고 근처 국밥집에서 둘이 밥을 먹었다.

같은 업무를 함께 하고 있고, 나보다 세 살 어린 동료다.

꼼꼼하게 업무도 잘 해서 내가 보살핌을 받는 감사함을 느끼게 하고 심지어 살갑다.

무엇이 바쁜 지 분기별로 밥 먹자하는 일도 늘 일이 생겨 미루다 오늘은 기어코 짬을 내서 국밥 한 그릇 한거다.


굴국밥 한 그릇인데 외식기분도 나고, 또 좋은 사람과 먹으니까 뜨끈하니 맛있었다.

커피 한 잔 사서 산책 삼아 걸었다.

늘 다니던 산책길을 벗어나 새로운 길을 가보자 안내하여 따라 걸었다.

잠시 방향을 틀어 200미터 정도 걸었을 뿐인데 정말 다른 풍경이 나타났다.

하늘이 온전히 보이는 곳.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있고, 코스모스도 색선명하게 피어있다.

오늘은 먹구름이지만 날이 좋으면 저기 산까지 보인다며 살짝 들뜬 목소리로 풍경을 자랑한다.


늘 꼼꼼하게 일하는 모습만 봤을 때 몰랐던 마음이 전해졌다.

참 마음이 따뜻하고 고운 친구구나.

늘 가던 길, 늘 먹던 밥, 늘 하던 인사를 조금만 벗어나서 바라보니 다 알지는 못해도 그녀의 따뜻한 마음이 한결 잘 보인다.


어둑어둑한 하늘이 수상했지만 내 사무실과 7~8분 정도 거리를 남겨두고 소나기가 내렸다.

불과 100미터 정도 뛰는 동안 무섭게 내리는 소나기를 온전히 맞았다.

모자를 쓴 동료는 조금 덜했지만 난 물에 빠진 쥐랑 다를 바가 없었다.

공원벤치 그늘막에서 잠시 쉬기로 했다.

당황스러웠다.

당장 근무는 어쩌지? 아. 가뜩이나 머리숱도 줄어드는데 비까지 맞았으니 이 민망함을 어쩌지?

쏟아지는 비를 보고 있자니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난다.


난 비 속을 뚫고라도 뛰었음 좋겠건만 동료는 조금 더 기다려 비가 그치면 가자 한다.

동료 말을 따랐다.

정말 비가 사그라들었다.


여자휴게실에 가니 다행이 드라이기가 있다.

티슈로 머리 물기를 닦고 손을 빗삼아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린다.

서로 웃음이 난다.

이 또한 추억이 된거다.


33년만에 비를 쫄딱 맞은 기분은 통쾌하다.

늘 준비쟁이라 우산을 잊은 적이 없고, 또 비가 내려도 편의점에서 사면 되는 일이었다.

이렇게 아무런 준비 없이 비를 맞은건 33년만인거다. 

그런데. 정말. 괜찮은거다.

세상에 늘 겁을 먹었었다.

잘못 될까봐. 실패 할까봐. 안 될까봐. 실수할까봐. 폐끼칠까봐.

엄마되면서 더욱 그랬다.

그런데. 정말 괜찮았다.

예측하지 못 했어도, 난감한 일이었어도, 당황스러웠어도 괜찮았다.

그리고 지나갔다.

소나기가 나를 흠뻑 젖게 한 놀라게 한 것이 아니라 한낮 겁과 근심을 씻어주었다.


33년 만에 비는 나에게 앞으로 한 30년은 거뜬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있는 마음을 선물로 주었다. 
























작가님, 커피 한 잔에 글 쓰기 좋은 저녁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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