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6학년 때 친구와 귀가길은 늘 수다삼매경이었다.
그 와중에 미묘한 신경전이 있기도 했다.
조용필 VS 이용 중 누가 더 멋진 가수냐는 논쟁이 붙을 때였다.
이 두 가수는 그 시절 대한민국 가요계의 투톱이었다.
연말 가요대상으로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되어야 하는 이유를 끊임없이 찾았고, 어제 티비 방송 모니터링까지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지금 K-pop의 팬심의 원조랄까~^^
요즘 라디오에서 우연히 들은 조용필의 노래에 다시 필이 꽂혔다.
'바람의 노래'였는데 이 노래가 이렇게 아름답고 철학적일 수 있나 싶었다.
살면서 듣게 될까. 언젠가는 바람의 노래를
세월가면 그 때는 알게 될까. 꽃이 지는 이유를
나를 떠난 사람들과 만나게 될 또 다른 사람들
스쳐가는 인연과 그리움은 어느 곳으로 가는가
나의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네.
내가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 뿐이야.
보다 많은 실패와 고뇌의 시간이 비켜갈 수 없다는 걸
우린 깨달았네.
이제 그 해답이 사랑이라면
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사랑하겠네.
이 노래를 듣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나랑 다른 사람들이랑 특별히 구분되는 것이 아니구나.
내 안에도 저 사람을 싫어하는 이유가 있고, 저 사람 눈동자에도 내가 비취지고 있구나 싶다.
내가 그리 거부하고 싶었고, 싫어했고, 미워했고, 벗어나고 싶었고, 탓했던 그 모든 것들이 결국 나에게도 있는 모습들이었구나.
나의 화, 나의 생각, 나의 말, 나의 행동, 나의 모습 이 모든 것은 어쨌든 내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내가 선택한 것들이다.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었을텐데 내가 선택한 것이다.
그 뜻을 알든 모르든 여하튼 내가 선택한 데에는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그 의미를 조금 더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힘과 여유를 키우는 것 또한 내 몫일 뿐이다.
그러면서 상황을 거울 비추듯 있는 그대로, 있지 않는 그대로 바라볼 용기도 내어보는거다.
지금의 나의 모든 것을 아무런 조건없이 제3자처럼 비춰보는 연습도 하면서 말이다.
이 생각들이 한 순간 나에게 다가왔다.
물론 나는 아직도 인생을 사는 법을 다 알지 못한다.
막상 예상치 못한 일이나, 당황스러운 오해를 받을 땐 속이 상하고 눈물도 나고 힘도 부친다.
그럼에도 이젠 하루를 정리하며 일기를 쓸 즈음에는 그냥 그럴 수 있겠지 싶다.
노래의 가사처럼 고뇌나 실패는 삶의 당연한 부분이다.
이 모든 것을 그저 바라보고, 그럴 수 있다고, 괜찮다고 안아주는 어른이고 싶다.
그리고 그 관대함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꼬꼬마 6학년 아이들도 반하게 한 조용필님은 역시 시대에 남을 가왕이시다.
그나저나 그 때 단짝으로 붙어다녔던 그 친구는 잘 지내고 있겠지.
체력도 떨어지고 여기저기 관절도 아파오는 요즘이지만,
조금이라도 마음의 품이 넓어짐이 나이 먹기에 가능한 거라면 굳이 서글플 일도 아니라고 위로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