ㅡ 마을의 향사를 카페로 운영하다
요즘은 마을에 있던 낡은 향사를 마을 사랑방, 카페로 탈바꿈하여 다시 운영을 앞두고 있다.
이번에 제2회 건설문학상이 있었는데, 이 이야기를 써보면 좋겠다 싶어 냈는데 떨어졌다.
아쉬운 마음에 브런치에 올린다 :-)
사실 이 이야기는 건축 회사에 다니는 남자친구의 이야기와 반반씩 섞어 적은 것이라, 나름의 각색이 많이 들어가기도 했는데 소설도 결국 완전히 지어낸 이야기라고 할 수 없듯이 결국 이것도 내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큰 고민 없이 꾸준히 다녀왔던 건축 회사를 돌연 그만 두고 지난 1년 동안 국내외 이곳저곳 여행을 다녔다. 어느 순간 그동안 뚜렷하고 선명하게 뻗어 있다고 믿었던 내 앞길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순식간에 앞으로 내가 어느 쪽으로 나아가야할지 종잡을 수 없게 되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흔히 인생에 있어 ‘길을 잃었다’는 표현을 쓰는데, 그것은 애초에 인생에 뚜렷한 길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닐까?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며 내가 느낀 것은 애초에 내 인생을 위해 만들어진 뚜렷한 길 같은 것은 나 있지 않으며, 단지 주어진 길을 내 스스로 걸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길을 걸어 나가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마주하는 갈림길에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선택하거나, 가끔씩 부딪히는 돌부리를 피하거나 넘어진다 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걸어 나가는 일이었다.
그동안의 나는 그저 단거리 육상선수처럼 눈앞에 보이는 목적지를 정해두고 목표를 향해 내달리기만 했으니 그 다음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었거니와 매번 정해둔 목표치의 달리기를 완주하고 나면 모든 에너지가 소진되고 마는 것이 문제였다. 무기력감을 느끼는 것이 싫어 또 다음 목표를 정해 달리고 또 다음 목표를 정해 달리다보니, 주변은 돌아볼 여력도 없을뿐더러 더 이상은 이렇게 달릴 수 없다는 두려움에 휩싸여 보낸 시간이 태반이었다. 그렇게 남들이 보기에는 그럴듯한 모습이 되어가고 있었는지는 몰라도 내부에서는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머지않아 곧 무너질 것처럼 중심을 잃고 흔들렸다.
흔히 누구보다 더 빠르게, 새롭고 멋진 건물을 지어 올리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완벽하게 굴러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내가 ‘좋은 대학만 가면’ ‘좋은 직장만 가면’ ‘이번 현상설계만 따내면’ 하고 목표를 향해 내달리면, 그 다음에는 저절로 완벽한 삶이 펼쳐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처럼 말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결국 그 공간이 얼마나 어떻게 유지가 되는지, 그 공간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좋은 가치를 느끼는지에 달려 있는데 말이다.
지금 나는 작은 섬, 그 안에서도 외딴 농촌 마을에 계신 부모님 댁에 내려와 지내고 있다. 그동안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그 길고도 험난한 길을 떠나왔는데, 다시 이곳으로 돌아왔으니 새삼 사람 일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곳에서 처음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평소 어머니와 친하게 지내시던 마을 사무장님을 통해서였다. 이곳 마을에 옛날 향교 건물 하나 있는데, 도에서 진행되는 도시 재생 사업을 통해 이 향교 건물이 재건축에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비록 버려진 폐가와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한 때 마을의 사랑방 역할을 하던 향교였던지라 터도 좋고 건물 외관도 옛 한옥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슬쩍 보기에도 탐이 나는 곳이었다. 마을 사람들도 이 향교를 되살리자는 것에는 적극 찬성인 모양이었으나 이곳을 다시 살려내기 위한 대안을 내놓자니 영 깜깜한 모양이었다.
내가 사무장님께 사정을 전해 듣고 향교에 처음 방문한 것은 향교 내부 시공이 이미 다 마무리된 이후였는데, 내부의 어설픈 행색을 처음 마주하고 느꼈던 감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내 안에서 솟구치는 여러 복잡한 감정들을 애써 감추기 위해 셔츠 소매 춤으로 얼굴을 여러 번 비벼 닦아내야만했던 것이다.
“어때, 그래도 썩 괜찮지?”
사무장님이 달뜬 얼굴을 하고는 냉장고에서 주스 한 잔을 꺼내 따르며 내게 물어왔다. 내부 공사가 끝난 향교 건물 안은 간단한 조리가 가능한 작은 주방과 화장실, 사 인용 테이블 세 개, 이 인용 테이블 네 개로 나름 카페와 같은 모양새를 갖추고 있었는데, 이렇게 설명하면 큰 부족함을 느끼지 못할 지도 모르겠다. 내부 벽은 하얗게 페인트칠되어 있었으며 천장에는 백열 형광등이 달려 있었고, 화장실 공간은 왼쪽 귀퉁이에 툭 불거져 눈에 띄게 자리 잡고 있었다. 게다가 화장실 문 앞에는 하얀 레이스 커튼이, 오른쪽 벽면에는 커다란 코스모스 사진 액자, 네 벽면에 나란히 붙은 노란 부적, 얇은 다리의 MDF 테이블과 철제 의자들부터 꽃무늬가 그려진 잔부터 집에서 반찬을 담을 때 쓰는 코렐 접시까지 이 새하얀 공간에 들쑥날쑥 멋대로 자리 잡고 있었다. 말하자면 카페보다는 사무실 탕비실에 더 가까운 모양새였다.
“네, 너무 좋네요.”
인사치레로 뱉은 대답이었는데, 그렇게 말을 뱉고 나니 또 이 공간에 정이 붙고 마는 것도 있었다. 마을 어른들이 밭일을 마치고 바쁜 와중에 매일 밤마다 모여 언성을 높이기도 하고, 마음을 맞춰가기도 하면서 만들어낸 공간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작은 공간 안에서도 어디서는 고집스런 어르신 냄새가 나고, 어디서는 40대 공무원의 냄새가 나고, 또 어디서는 따뜻한 어머니의 냄새가 나기도 했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데다 처음부터 삐거덕거리는 모양새를 하고 있었지만 문득 돌아보니 더없이 매력적인 공간으로 느껴졌다.
“이제 여기는 마을 분들의 코워킹 스페이스가 될 거예요.”
그러자 사무장님이 “커피 스페쓰?”하고 되물었는데, 순간 터져 나올 뻔한 웃음을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겨우 막아내고는 “사랑방이요, 사랑방”하고 다시 대답을 정정했다.
이 향교 카페의 정식 오픈은 다음 주 예정인데, 벌써 어른들은 수육을 삶고 잔치 국수를 낼 준비들을 하시느라 분주하다. 물론, 떡도 돌리고 막걸리도 준비할 예정이다. 향교 옆에 단란한 공터가 하나 있는데 거기서 바자회 비슷한 행사도 열릴 모양이라 마을 전체가 향교 덕분에 들썩인다. 나는 가게에 놓을 화분과 오픈 기념 손님들에게 나누어드릴 꽃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래도 화분 덕분에 이 공간에 작게나마 내 지분이 조금 생긴 것 같아 뿌듯하다. 내 주변 지인들에게도 초대장을 보내놓기는 했는데, 이곳까지 찾아 올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누군가 오게 된다면 자랑스럽게 소개해야겠다. 앞으로 내가, 아니 우리가 만들어나갈 가장 멋진 공간이라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