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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제나 Nov 15. 2021

93년생도 MZ세대로 쳐주는 건가요

나는 꼰대인가 MZ인가


나는 93년생으로, 90년생부터를 MZ로 쳐준다고 하니까 나름 MZ세대인가 하지만 미디어에서 말하는 그들과는 약간의 이질감이 드는 것 같다.


나도 자유분방한 MZ의 일원이 되고 싶다가도 정말 그렇게 해도 되는 건가, 싶을 때가 있는 것이다.


나는 꼰대인가 MZ인가


나도 눈치가 없고 일머리가 없는 편이라 정말 많이 혼나면서 일을 배워왔다. 지금 돌이켜봐도 내가 그 때는 대체 얼마나 많은 것들을 몰라왔던 것인지, 아무것도 몰랐던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줬던 것일지 가늠이 가지 않을 정도이다.


방송 작가를 할 때의 일이다. 전화 인터뷰를 통해 섭외를 진행하고 그 사람을 파악해야 하는데, 이야기를 할 때 리액션이 항상 '아~' '응~' 이런 식으로 대응해 정말 많이 혼났었던 기억이 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었다.


"제가 그 때 너무 힘들어서 사는 걸 포기해야 하나 생각해야 할 정도였어요"

"아,, 응~(나름 음에 가까운 응이라 나는 적절한 리액션이라고 생각했다)"

"네?"


나의 리액션에 언짢아진 상대방의 감정...

"아, 잘 듣고 있었어요~ 계속 해주세요!"


이런 식이라 정말로 심하게 혼나기도 했다. 한 번만 더 응~ 이런 식으로 대답하면 진짜 한 대 맞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들었던 거 같다.

그 때는 나름 억울하고 언어 폭력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진짜 아찔한 실수를 했다는 걸 깨달아서 같은 상황을 이렇게 다르게 해석한다는 게 새삼 웃기기도 하다. 한두 번 말하는 걸로 고쳐지지가 않으니까 어떻게 해서든 내 말실수를 고쳐 놓고자 했던 말이었지 않았을까.


또, 작가 일을 하게 되면 출연자 전화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는데 이 전화 인터뷰를 통해 프로그램 출연자를 1차 선별하게 되는 작업이라 나름 막내작가에게는 가장 중요한 업무이다. 이 전화 인터뷰를 통해 이 사람이 진정성이 있는지, 또 프로그램 주인공이 되었을 때 충분히 컨텐츠가 나올지, 방송 촬영에 호의적일지 등 다양한 요소들을 파악해야 하는 작업이다.


매번 전화 인터뷰를 하는 걸로 혼이 나다보니까 질문지를 먼저 만들어 작가님에게 컨펌을 받고는 했었는데, 나는 당시 한 번의 전화 인터뷰로 이 모든 것을 파악하기가 항상 버거웠던 것 같다.


1. 보통 일주일 스케줄이 어떻게 되시는지?

-> 이 질문을 통해 파악해야 하는 것은 출연자 분이 일과를 보통 어떻게 보내시고, 그 일과 중에 우리가 촬영에 담으면 좋을 만한 내용이 있는지를 찾아내는 것이 중심이며, 동시에 어떤 성향을 가지신 분이며 주변에 만나는 지인 분들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등까지도 파악할 수 있는 질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질문을 하면 보통 이런 답변이 온다.

"이번 주요?"


그 당시 나는 이 질문을 하는 것까지는 컨펌을 받았지만, 사실 이 질문을 왜 하는지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낮았던 것 같다.


"아, 이번 준가? 다음 주? 아 일단 이번 주랑 다음 주 일정 우선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뭐 이런 식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말이 기신 분과 통화하면 더욱 문제는 심각해진다..) 통화를 열심히 하고 통화한 내용을 녹음한 걸 또 열심히 받아적어서 가져간다.


그럼 내가 적은 글을 보다가 작가님이 갑자기 이런 질문을 한다.

"결혼하셨다는데 아내분 얘기는 전혀 없네? 따로 사신대?"

"아 그건 안물어봤는데요... 다시 여쭤볼까요?"

"너는 얘기 들으면서 그런 게 안 궁금하니?"

"아..."


그럼 나는 이런 반성을 했던 것 같다.


'이 분의 모든 것들을 다 궁금해해야 하는구나!'


그래서 나는 일이 항상 다른 사람들보다 두 배, 세 배는 많았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일들을 해왔다. 출연진 분들은 얼마나 고역이었겠는가. 전화를 하고 또 하고, 나중에는 전화를 잘 안 받아주시다가 캔슬이 되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문제는 질문을 통해서 무엇을 파악해야 하는지, 그걸 파악하기 위해서는 어떤 질문을 해야하는지 등에 대한 이해도와 센스가 필요했던 것이다.


-


그렇게 시간이 흘러 나도 누군가에게 일을 가르쳐주어야 하는 감개무량한 순간이 찾아오게 되었다.


나도 일머리가 없는 편으로 부지런히 깨지면서 배워왔다 보니 꽤나 잘 공감하고 차근차근 알려줄 수 있다는 것이 내 장점으로 대두되기도 해 인재 양성이나 H/R 업무를 맡게 되었다. 처음부터 일머리가 있었던 친구들은 일머리가 없는 친구들을 만나면 왜 거기서 막히는지 이해를 못하곤 해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어도 어떻게 해결해줘야 할 지를 잘 모르곤 했다. 나는 일머리가 없는 것에 너무도 잘 공감하기 때문에 일이 막혀 있을 때 본질적인 문제를 파악하는 것에 제법 능통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다 일머리가 없는 한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일단 이 친구는 너무 산만한 것이 문제였다. 일을 집중해서 제대로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고 두 번째는 자기가 한 게 아니라고 거짓말을 하거나 상황 탓하는 것, 세 번째는 머릿속이 정리가 잘 되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우연찮게도 이 친구와 함께 하게 된 일은 내가 일을 처음 배웠을 때처럼 전화 면접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한 달 살기 프로그램에 지원해준 참여자 분들 중 문제요지가 있는 참여자가 왔을 경우 다른 참여자 분들께 민폐를 끼치는 경우가 더러 있어 전화 면접을 통해 기본적인 공동체 생활이 가능한지 정도를 파악하는 일이었다.


나도 일을 배울 때 그랬듯이, 전화 면접 진행한 내용을 일단 다 적어서 공유해달라고 했는데 매번 '놓쳤다' 또는 '날아갔다'는 식으로 나에게 공유가 되질 않았다.

피드백을 받았을 때 실수한 것이 있을까 해서 숨기는 듯했다.


나도 일을 배울 때 혼나는 것을 많이 두려워하고 내가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기 어려워했기 때문에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 날 나의 실수를 되돌이켜보았을 때 그런 것들을 누군가가 알려주지 않고 계속 그렇게 제멋대로 판단하고 진행했을 때 책임이 오히려 본인에게 더 많은 추가 돌아갈 수 있으니 나에게 공유를 해주어야 문제가 커지지 않는다는 점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무사히 공유를 받게 되었고 인터뷰 질문들과 그 답변들을 통해 어떤 것들을 알 수 있는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과정들을 반복했다. '여기서 이걸 왜 물어보라고 했냐면' 혹은 '이 대답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건 어떤 거냐면' 하면서 나 또한 이 작업을 통해 뭘 얻을 수 있는지를 몰랐기 때문에 어떤 것들을 파악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해를 할 수 있도록 알려주었다.


그래서 충분히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발생했다.

나에게 공유된 내용과 실제 참여자에게 안내된 내용이 달랐던 것이다. 결국에는 참여자 분들이 나에게 와 울며 하소연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안내가 잘못된 것 같다고 몇 번이나 이 친구에게 이야기했는데 무시 당하게 되었고, 내가 왜 제주도까지 와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컴플레인이었다.


나로서는 같이 일하고 있는 친구 말을 믿어야 하는데, 나도 이 친구에게 신뢰가 안 가는 상황이 벌어졌다.

참여자 분께 사과를 하면서 그 친구가 서툴어서 그렇다는 말을 변명처럼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와 나도 이 상황을 곱씹어본다.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하는 게 성숙한 대처였을까?

지금 돌이켜보면 이 친구를 데려와 삼자 대면을 하고 그 자리에서 푸는 게 가장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한 번은 일이 머릿속에서 잘 정리가 안 되는 것 같아 엑셀 정리를 하는 업무를 맡기며 카테고리 정리하는 법을 알려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프로그램 참여를 지원해주신 분들과 참여 확정이 된 분들을 분류하는 작업이었는데 정리는 하기 나름이지만 이름 / 나이 / 연락처 / 참여 지원 날짜 / 확정 여부

정도로 카테고리를 분류하면 되는 일이었다. 추가로 더 필요한 게 있다면 뒤에 메모 정도를 하나 더 만들어 '아직 고민 중' '0일 이후 연락 다시 주시기로 함' 정도를 적어놓는 것 정도였다.


그런데 받아본 엑셀 표에는 20여 개 정도의 참여자들이 빨주노초파남보 색으로 뒤덮여 있었고 오히려 보기가 정말 어려워져 있었다.

어떻게 분류를 한 것이냐고 물어보니 '0월 0일 지원자인데 참여 확정이신 분은 빨간색이구요 0월 00일 지원자인데 아직 확정 아니신 분은 주황색'

이런 식이었다.



게다가 어떤 일은 곧잘 배운 모양이라 잘 하다가 또 갑자기 할 줄 알던 것을 안 하거나 꼬아놓아 수습하기에 바쁜 상황들이 매일매일 벌어졌다.


이러한 상황을 겪으며 나는 점점 감정적인 롤러코스터를 타기 시작했다.

이 친구가 미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나도 못했는데, 못하는 친구를 잘 가르쳐주지는 못할 망정 화만 내고 있는 나 자신에게 실망을 많이 하기도 하면서 일을 좀 한다고 이제 와 이렇게 화를 내고 있는 내 자신이 가증스럽다는 생각도 많이 하게 되었다.


또 마음은 정말 착한 친구라 내가 못된 것 같다는 자책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친구와 저녁 늦게 함께 산책을 하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요새 많이 힘들지? 내가 화를 많이 내서..."

"아니에요ㅠㅅㅠ 언니도 다 저 잘 되라고 하는 말인데요 뭐. 전 진짜 고마워요."

"미안해.. 내가 잘 못가르쳐줘서 그런 거 같아. 나도 많이 부족해서 그래"

"전 진짜 많이 배우고 있어요!"

"나도 옛날에 진짜 많이 혼나고 그랬어. 나는 막 옛날에 작가님이 진짜 나한테 소리지르고 그랬어"

"아 저 그거 뭔지 알아요 태움 문화 그런 거잖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이 친구는 정말로 그냥 생각나는 말을 했을 뿐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 때도 그걸 알기는 알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 말을 들은 그 순간, 나는 그동안 나름으로 공부도 많이 하고 일을 잘 가르쳐주려고 했던 모든 것들을 이 아이가 속으로는 태움 문화라고 생각한다는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돌이켜보면 나도 작가님한테 혼날 때 '이 정도면 언어 폭력 아니야?'하고 생각했으니까 일리가 있는 생각이었다.

결국 나는 이 친구에게 정말로 감정적으로 마음이 많이 상해버렸고, 결국 같이 일을 못하겠다고 하고 말았다.


이러한 결정은 나에게도 여러 모로 마이너스 되는 것들이 많았다. 이런 결정과 결과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도 그렇고,

스스로를 평가할 때도 나도 나에게 실망하는 부분이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사람관리를 맡는 일에 대해 더 이상 자신감을 갖기 어려웠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친구에 대한 너무 많은 기대가 문제였다고 생각한다. 나도 변했으니까 너도 변할 수 있어, 라는 말도 결국에는 굉장히 내 중심적인 말이고 상대방을 지치게 할 수 있었다. 그 친구가 변하고 싶은지 안 변하고 싶은지를 먼저 깊이 있게 파악해야 했고 이 친구가 무리없이 할 수 있는 만큼의 역량을 파악하는 것이 훨씬 중요했다. 나는 마치 헬리콥터 맘처럼 이 친구가 변할 앞날의 미래를 모두 그려놓고 그 커리큘럼대로 이 친구가 변하기를 기대했던 것 같다.

그것이 결국 곧 나의 성과이고, 내가 만든 결과이기 때문에.


이제는 섣불리 내가 누군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거나 성장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감히 하지 않는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변할 수 있지만, 그 추는 자기 자신에게 있다. 좋은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그 사람의 변화는 그 사람이 만들어낸 것이다.


오히려 나는 내가 더 모범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거나 안 되는 것들을 도와주면서 함께 했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

이번에도 부끄러운 과거 하나가 기억에서 끄집어져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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