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이브걸스에 대한 한 박자 늦은 회고
2017년 3월. 내가 일병 5호봉이었을 때다. 당시 생활관 TV에 자주 재생되던 뮤직비디오가 있었는데, 브레이브걸스의 롤린(Rollin')이라는 노래였다. 들으면 어째서인지 힘든 아침에도 개운하게 일어나게 되고, 전투화 끈이 저절로 묶이곤 했다. 역주행한 지금이야 청량한 여름 노래에 섹시 컨셉, 뱀파이어 컨셉이 미스였다고 말하지만 군인이었던 나는 섹시 컨셉이라 좋아했던 것 같다. 4년이 지나서 유튜브 알고리즘의 "그 영상"이 군생활 추억의 걸그룹을 다시 소환했다.
조회수는 폭발했고 이후 '롤린'은 차트에서 역주행했다. 덩달아 작년에 발매됐던 '운전만 해(We Ride)'도 주목을 받았다. '운전만 해'는 한 명의 멤버가 탈퇴하고 4인 체제가 된 브레이브걸스가 3년 만에 내놓은 시티팝 장르의 곡이다. 하지만 코로나 19와 유례없는 폭우로 인해 활동을 길게 이어가지 못한 곡이기도 하다. '운전만 해' 뮤직비디오 속에서 브레이브걸스는 자신들의 데뷔일과 팬덤의 이름인 피어리스(Fearless)가 번호판에 새겨진 차에 올라탄다. 긴 무명의 시간, 줄어드는 무대 때문인지 어딘가 지쳐 보이는 표정을 하고 있다.
그러나 TV 속 음악방송에서는 차에서와 달리 무대에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이다. 역주행의 시작이 됐던 그 영상 속 모습과 같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운전만 해' 활동을 끝으로 해체의 기로에 섰던 브레이브걸스는 그들의 노력을 알아준 대중들의 부름을 받았고, 뮤직비디오 속 내용이 현실이 됐다. 데뷔 1854일 만에 음악방송 1위를 한 것이다. 이제는 각종 방송과 라디오에 출연하면서 누구나 아는 그룹이 됐다.
어떤 상황에서도 묵묵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나만 그랬던 것은 아닌 것 같지만...) 히트곡을 찍어내던 작곡가의 곡을 살리지 못했다는 생각, 우리는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인지도 없는 그룹에게 차갑고 무례한 방송가의 태도에도, 애써 웃으며 방송에 임했던 시간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히, 그리고 묵묵히 주어진 무대에 최선을 다 하며 끝내 모두에게 인정받는 모습은 우리에게도 하루를 살아낼 은은한 용기를 준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라고, 브레이브 걸스는 지켜보는 대중들도 우려스러울 만큼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고 '롤린'의 활동을 마무리했다. 개인적으로 '롤린'보다는 내 취향에 가까운 '운전만 해'로도 활동을 해줬으면 좋겠지만 모처럼의 휴식을 만끽해야 하지 않겠나. 대중들에게 널리 이름을 알렸지만, 어쩌면 앞으로의 모든 활동이 성공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작은 티끌이라도 발견되면 털어내려고 하는 대중들의 특성상 질타를 받을 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뮤직비디오 마지막 부분처럼 피어리스와 함께 용감하고 의연하게, 과속하지 않고 서행했으면 한다. 부디 즐거운 여행이 되길 바란다.©(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