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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르조 Jan 17. 2023

꼭 서른

230110

만으로 꼭 서른이 되었다.


30년. 10,950일. 하루하루가 모여 어느새 만 일이 넘었다. 서른이라는 나이가 벌써 친근하다는 느낌이 든다. 대학 갓 입학했을 때는 서른 되면 죽어야지 했는데. 왜 다들 영원히 20대로 살고 싶어하지 않나. 커트 코베인이나 제임스 딘처럼. 삼십 대에 들어선 나는 요절은커녕 아주 팔팔하게 살아있다. 거의 활어 수준으로 말이다.


재작년부터 꾸준히 해온 운동은 내 에너지의 원동력이 되었다. 뭘 대단한 걸 하는 건 아니다. 매일 턱걸이를 한다. 컨디션이 좋으면 딥스, 좀 별로다 싶으면 팔굽혀펴기도 곁들인다. 러닝과 자전거로 유산소도 챙겨준다. 네 달 전부터는 필라테스도 하고 있다.

운동은 맑은 정신을 유지하게 해준다. 흐물흐물해진 몸과 하기 싫은 정신을 이끌고 철봉 앞에 서는 것은 그 자체로 굳은 의지를 필요로 한다. 스트레칭으로 몸을 깨운다. 준비되었다 싶으면 하나씩 동작을 수행해 나간다. 정해진 루틴을 매일 반복하다 보면 구도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모든 잡념이 사라진다.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호흡만 남는다. 살아있음을 느낀다. 한 세트가 끝난 후에 호흡을 센다. 처음에는 20번 정도 숨을 들였다 내보내고 다음 세트를 시작한다. 중반부에 이르면 30번 쉰다. 모든 걸 단순하게 유지한다. 단순함은 삶의 다양한 영역으로 확장한다. 일도, 관계도 필요 없는 것은 모두 없앤다. 삶이 간결해진다.

1년 반 동안 매일 몸을 단련하면서 얻은 가장 값진 선물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다. 막상 해보니 내 의지로 불가능한 것은 없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 다만 내가 원하는 걸 찾으면 된다.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 하나씩 해나가면 된다.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그런 존재로 다가온다. 사람에게 의지가 있으면 하지 못할 일이 없다. 예전에 머리를 지배했던 사회 구조, 환경이라는 화두는 개인의 의지로 대체되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다만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맹목적인 신뢰가 필요할 뿐이다.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을 들여다보면 답은 이미 자기 안에 있다.


행복한 생일이었다. 일은 크게 바쁘지 않았다. 자잘한 업무를 처리하고 예정된 출장을 위한 기안을 했다. 지루한 회의가 끝나고 5시쯤 후배가 나를 허브로 불렀다. 케이크와 치킨이 테이블이 가지런히 준비되어있었다. 나처럼 부서 이동한 사람이 절반이라 아직은 어색하지만 다들 나를 바라보며 축하한다고 웃었다. 회의가 생겨 오지 못하셨던 부장님은 카톡으로 소고기를 선물해 주셨다. 자취생은 단백질을 먹어야지, 1년 동안 잘 부탁해요,라는 말과 함께. 아직 부서에 기여한 바가 없는데. 괜히 황송했다.

6시에 칼같이 나왔다. 지하철역 개찰구 앞에서 기다리는 엄마와 만난 건 6시 7분이었다. 어지간히 빨리 움직인 셈이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 엄마가 참 귀엽다. 강남역에 있는 중식당에 도착해 코스요리를 시켰다. 엄마는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몇 번이고 얘기했다.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나도 점점 엄마와 시간을 보낼 때 따스하고 충만하다고 느껴진다. 앞으로 매달 주사만 잘 맞으시면 엄마와 관계가 크게 삐걱일 일은 없겠지. 음식은 입에 잘 맞았다. 삼선해물볶음과 깐쇼중새우가 별미였다. 돼지국밥을 먹어도 되는데 아들 생일이라고 엄마는 코스를 고집했다. 식당을 나와 엄마 손을 꼭 잡고 옛날에 살던 강남역 근처 동네까지 걸었다. 요즘 결혼 얘기가 자주 나온다. 나도 나이를 먹긴 먹었나. 엄마는 교회 다니는 여자가 아니면 결혼식에 가지 않을 거라며 익숙한 면박을 놓았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화답했다.

“사람 만나기 어려운 거 알지 엄마? 내 나름대로 열심히 찾아왔고 내 옆자리에 누군가 있었던 적도 있지만 지금은 아무도 없어. 만약 내가 정말 사랑하고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이 생겨, 근데 그 사람이 교회를 다니지 않아. 그렇다면 나는 이 사람을 교회를 다니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헤어질 수가 없어. 결국 결혼의 본질은 사랑하는 사람 간의 결합이잖아.” 엄마는 더 이상 얘기하진 않았다.

옛날 살던 동네에 이르렀다. 10년 전 J에게 고백했던 벤치를 찾았다. 엄마에게 처음으로 얘기했다. 딱 이쯤이 벤치가 있었던 곳이라고. 엄마는 아직도 그 사람이 생각이 나는지 물었다. 나는 그저 웃었다.


플랫나인이라는 강남역 재즈바 앞에서 S을 만났다. 엄마가 오늘따라 기운이 샘솟는지 S와 바통 터치하겠단다. 그렇게 엄마와 친구, 그리고 나는 강남역 길거리에서 짧게 수다를 떨었다. 길지 않은 순간이었는데 왜 그렇게 좋았는지. 엄마는 내가 맨날 혼자 있고 싶어한다며 섭섭함을 S에게 토로했고 친구는 나를 혼내는 식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만으로 인생을 채울 수는 없겠지.

S와 재즈바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무대 근처에는 테이블이 고등학교 교실 마냥 앞을 보고 다닥다닥 붙어있어, 뒤쪽에 있는 U자형 바의 끝 쪽에 앉았다. 자석으로 치면 N극 정도의 위치였겠다. S는 아트 블레이키의 문구가 적힌 플랫나인이라는 칵테일을, 나는 드뷔시의 달빛을 시켰다. 둘 다 제목이 연상되지 않는 맛이었음은 물론이다.

참 많은 이야기를 했다. 무엇부터 시작했던가. 아 일단 가볍게 생일빵을 맞고 시작했다. 별거 아닌데, 생일빵을 때려줄 사람이 이제 없구나 싶었다. 좋아해본 적이 없는 문화인데 무척이나 반가웠다. 얼마 있다 재즈 콰르텟이 연주를 시작했다. 피아노, 보컬, 색소폰, 베이스로 구성되어 있었다. 남정네 둘은 하던 얘기를 멈추고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 남자 둘이서 생일날 재즈바라니. 새삼 우리 개성이 강하다는 생각과 이런 취미를 가장 친한 친구와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축복이라는 생각이 함께 들었다. 완성도 있는 콰르텟이라고 하긴 어려웠다. 피아노는 어떤 틀에 갇혀있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 보컬은 깊이감이 부족했다.

이를 듣다 우린 자연스럽게 취향에 대한 이야기로 빠졌다. S는 본인이 요즘 푹 빠져있는 색소폰, 커피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작년에 재즈선언이라는 책을 읽게 되면서 재즈의 역사, 주요 인물, 화성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책에서 다루는 음악을 함께 듣는 건 그에게 꽤 황홀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재즈에 대한 애호가 깊어지면서 자신이 너무 모르고 있음을 자각했다. 더 깊게 파고들고 싶다는 생각이 뒤따르는 건 너무나 당연했다.

나는 조금 생각이 달랐다. 일정 수준 이상 취향을 발전시켰을 때, 대부분의 경험이 빛을 잃게 되고 그로 인해 삶의 전체 효용이 떨어지지 않을까 두려웠다. 음식을 예로 들면, 매일 호텔 코스요리를 먹다가 그럭저럭 하는 양식당에 갔을 때 행복하지 못한 뭐 그런 경험 말이다. 한 번 더 생각해보면, 나는 삶의 많은 요소에 대해서 지나치게 빠지지 않고자 했던 것 같다. 술, 담배에 의존하는 것은 물론이고 소비로 인한 충족감은 특히나 경계했다. 재즈도 비슷했다. 내가 아주 아끼는 분야이지만 더 추구했을 때 오늘 들은 것과 같은 그저그런 라이브 재즈의 경험이 내게 더 큰 실망감을 안겨줄 것만 같았다.

나의 이런 태도는 내 가장 오래된 기억과도 관련성이 있는 듯하다. 그날 나는 유모차로 추정되는 곳에 반쯤 누워있었다. 해질녘 하늘이 보였고 빙빙 돌아가는 놀이기구가 있었다. 나는 놀이동산 안 어딘가에 있었는데, 곁에 부모님이 없었다.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는 철저히 혼자였다. 버려진 것 같다는 기분이었다.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이 두려움이 취향에 대한 나의 방어적인 스탠스에 어느 정도 기여를 하지 않았나 하는 게 내 추측이다. 더 깊게 무언가에 빠졌다가 그것이 소실되었을 때의 아픔을 느끼지 않기 위해, 어느 정도부터는 무언가를 추구하는 것 자체를 멈추어버리는 거다. 내 나름대로는 왜 이렇게 내가 행동했는지에 대한 나름의 이야기였는데, 성숙하지 못한 해결방안임에는 분명하다. 취향을 쫓고 내가 원하는 걸 찾음으로 인한 효용이 분명 더 클텐데, 아직 완전히 납득은 되지 않는 느낌이랄까.


그러고 우린 부끄러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떤 삶을 살고 싶냐는 질문에, 친구는 떳떳하게 살고 싶다고, 나는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고 했다. 헌데 오늘 마침 우리 둘 다 각자의 부끄러움이 있었다. 나는 현재 부서에 오게 된 게 싫었다. 원하지 않던 곳에 회사의 명령에 따라 일하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내가 조직에 속한 사람이라는 것, 나의 인사권을 타인에게 넘겼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지하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새로 일하게 된 고층에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인사도 너무 많이 해야하고 분위기도 숨 막힌다. 그런 답답함을 안고서 회사 사람들과 점심을 먹었다. 이상하게 이날 따라 마음을 놓게 되어서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다 보니 계속 불평만 하고 있었다. 본부가 싫다. 인구밀도가 높다. 엘리베이터 타는 것도 싫다. 일도 싫다. 이런 얘기를 듣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을 텐데. 기분이 태도가 되면 안 된다는 말을 가끔씩 생각하는데, 그날은 정말 기분이 태도 그 자체가 되었다. 내가 상대방을 즐겁게 하기 위해 점심을 함께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의 부정적인 기분을 타인에게 전가했다는 사실이 나를 부끄럽게 했다.

S의 부끄러움은 본인이 일을 대하는 자세에서 비롯되었다. S의 회사에 인턴이 실습을 왔는데 그 인턴의 멘토로 S가 지정되었다. 인사를 한 관리자가 그러고는 “실력이 아니라, 학교가 같아서 S를 멘토로 붙인 거야.”라고 했는데 그 말이 S에게 비수가 되었다. 등에 땀이 날 만큼 말이다. 맥락과, 문장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멘토를 할 수 있는 두 명 중에서 실력을 가리는 것이 무의미하니, 같은 학교 선후배끼리 붙였다는 의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S가 그 말을 듣고서 본인의 업무를 대하는 마음을 돌이켜보게 된 계기는 그만큼 S가 스스로 최선을 다하고 있지 않다는 자각을 했기 때문인 듯했다. 실제로 S는 아침마다 시간을 들여 커피를 내렸고, 평일에는 틈틈이 색소폰 연습을, 주말에는 데이트를 했다. 본인이 속한 집단에서 경력이 수십 년이 되는 상급자들도 주말에 나와 일에 시간을 쏟을 만큼 S가 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시간과 정성이 많이 필요로 하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S는 어떻게든 주말은 사수한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다녔고 실제로 대부분의 주말은 온전히 자신을 위해 썼다. 바로 이 지점에서 부끄러움을 느낀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자니, 우리가 극도로 예민하다는 생각을 했다. 남들은 투박하게 넘길 수 있는 생각들을 하나하나 따지고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돌이켜보는 행위를 둘 다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 생겨먹은 것을.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질문할 것이다.

나와 이토록 닮은 영혼을 만난 것도 행운인데, 이 녀석과 함께 생일을 보낼 수 있다는 것에 내가 인생을 헛살진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하철이 역에 들어오기 직전까지 우리는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유럽 잘 다녀와라 이놈아.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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