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26
전 부서 사람들과 매년 1년의 어느 날에 보기로 했다.
작년에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운이 좋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업무도 업무지만 멤버 구성이 좋았다. 우리는 진지하게 일 이야기를 하다가도 심심하면 농담을 주고받곤 했다. 그러다 보니 인간적으로도 가까워졌는데, 서로를 존중하는 것을 넘어서 애정할 정도였다. 가끔씩 우리의 보스는 너무 분위기가 좋아서 걱정이라는 말을 할 정도였다.
시간은 흘렀고 우리는 각자 다른 부서로 흩어졌다. 어느 정도 각오는 했다. 올해 어떤 부서로 가게 되더라도 작년처럼 좋을 수는 없다는 걸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낙차는 꽤 고통스러웠다. 지금의 부서 분위기가 별로라는 게 아니다. 서로 각자의 업무를 보고 필요할 때 협업을 하는 전형적인 회사의 풍경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문제는 내가 너무나 특수한 상황에 처해 있었기에 이러한 전형성이 조금 숨 막히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오늘은 전 부서 사람들과 함께 환송회를 하는 날이었다. 다 말하진 못했지만 많이 반가웠다. 다시 함께 일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건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솔직하게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 이야기하기가 어려웠다. 이야기를 하더라도 강도를 조절할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됐든 회사고 나는 나의 몫을 해야하며 현재에 불만을 품는 것은 나에게도 다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대단한 얘기를 한 건 아니다. 함께 일했던 프로젝트에 대해서, 어느새 우리만의 밈이 된 몇 개의 상황에 대해서, 현재에 대해서 수다를 떨었다. 1차에서 양고기에 와인을 곁들이다 2차에는 신청곡을 받는 LP 바에서 맥주를 마시면서 말이다.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편했고 다만 같이 있다는 게 좋을 뿐이었다. 이런 감정을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게 그것도 우리 회사처럼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조직에서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로 고마웠다.
어느 한 명의 제안으로 우리는 매년 어느 날에 보기로 했다. 다 같이 각자의 달력에 '매년 반복'으로 저장도 했다. 이런 게 정말 지켜지겠어,라고 평소라면 회의적으로 생각할 나인데도 왠지 이 모임만큼은 계속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최근에 선배 한 명에게 아들이 생겼다. 다음 모임을 할 때면 아들이 걸어 다니려나. 다들 지금쯤 집에 도착했겠지. 모두들 좋은 꿈 꾸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