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가 된 카페, '카페 토르토니'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

by 김홍재

남대문이 불에 탔다. 남대문과 5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살고 있었던 때라, 가까이서 화염에 싸여 무너지는 남대문을 보고 내 마음도 무너져 버렸다. 광화문에서 늦은 퇴근길에 접한 소식이라 남대문 화재 현장 먼발치에서 지켜보다 왔던 밤이다. 밤새 소방차 사이렌 소리에 쉽게 잠들기 어려웠지만, 마음은 불타고 무너지고 있는 남대문으로 향해 있었다. 아침이 되어 뉴스로 확인한 남대문은 비극적인 죽음만 남아 있었다.

파리 노트르담 성당이 불에 탔다. 서울에서는 늦은 밤에 뉴스로 소식을 접했는데 안타까운 마음에, 믿을 수 없는 소식에 채널을 CNN으로 돌려 확인해야만 했다. 영화 같은 재난의 광경을 보면서 한숨을 내리쉬며 지켜보았는데 같은 장면을 보고 파리지앵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울기도, 눈을 꼭 감고 기도하기도 하였다. 또 처참한 죽음의 모습이었다.

사람이나 반려견의 죽음과는 달리 생명이 있는 존재가 아닌데도 문화재가 사라졌다는 상실감이 이렇게 마음을 공허하게 할 줄은 몰랐다. 두 화재 사건 모두 밤에 접한 소식이라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포털에 올라오는 사진을 계속 확인했었다. 문화재의 소실은 그랬다. 모두가 눈물을 흘리게 만드는 상실감이었다.

남대문은 국보 1호라는 말에서 생기는 뭔지 모를 뿌듯함이 있었고, 우러러보며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 한 자랑거리였다. 노트르담 성당은 '와인 맛 증폭기', 디켄터처럼 저녁이면 붉게 물드는 세느 강변의 아름다움을 증폭시켜 여행자를 파리에 취하게 했고, 파리지앵들에겐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준 고마운 곳이었다.


우리나라 사람과 파리지앵만큼이나 커피와 카페를 사랑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사람들은 오래된 카페를 문화재로 보존하여 아끼고 즐기며 살아간다. 1858년부터 부에노스 아이레스 거리에서 처음 문을 연 '카페 토르토니'를 찾았다. 160년이 넘은 카페는 아르헨티나의 국가 유산이라고 한다. 카페는 음악이 흐르고 커피와 차를 마시는 곳이긴 하지만, 누군가는 빚쟁이에게 혼나기도 하고, 이별하는 장면에서 상대방에게 커피를 쏟아부어 테러를 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바닥에 뒹굴 수도 있는 곳인데 문화재라니..., 쉽게 그림이 그려지지 않았다.

'카페 토르토니'를 찾았던 6월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초겨울의 싸늘함에 아침 기온이 5도까지 떨어지는 곳이었다. 줄을 섰는데 30분 정도가 지나서야 입장할 수 있었다. 카페 안이 붐비거나 빈자리가 없으면 쉽게 다른 카페로 옮겨 버리는 서울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일단 줄을 서기로 한다. 싸늘한 날씨와 1분에 한 방울씩 떨어지는 빗방울 때문에 기다림의 30분은 더 길게 느껴졌었다. 낭만적인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상징하는 카페, '카페 토르토니'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했다.

바깥 공기의 차가움과 달리, 30분 줄을 섰던 사람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는 카페 내부는 사람들의 온기로 따뜻했다. 낯선 외모의 여행자가 정장에 가까운 옷차림으로 들어서니 그들 사이에서 동물원의 동물이 된 것 같은 시선이 느껴졌지만 자연스레 외면하고 자리를 잡았다. 큰 카페 내부에 아무리 둘러봐도 동양인은 없었고, 관광객도 없는 것 같았다. 주문을 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카페 안의 사람들은 대화에 집중하여 여행자는 안중에도 없었고, 핸드폰이나 신문을 보면서 카페를 즐기는 우리의 그것과 다를 바 없는 풍경이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사람들의 일상은 커피와 카페에 푹 빠져있는 것이었다. 커피와 츄러스를 먹으며 카페 벽의 오래된 사진과 장식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저녁이면 탱고 공연을 하는 곳이다. 탱고를 상시 공연하고 연주하는 곳은 부에노스 아이레스뿐이라고 한다.

탱고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항구 노동자들이 추기 시작하면서 태어났다. 탱고를 출 줄 몰라도 이제는 빛바랜 영화 '여인의 향기'와 배경음악 '포르 우나 카베차 Por una cabeza'는 너무나 유명하고, 이 곡을 작곡하고 부른 '가르델'과 '리베르탱고, Libertango'의 작곡가 '피아졸라' 두명만 기억해도 좋을 것이다. 가르델과 피아졸라의 탱고 곡들의 제목에는 '포르테뇨(porteno)'라는 단어를 자주 발견할 수 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사람들을 '포르테뇨'라고 부르는데 '항구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항구에서 일하며 즐거워하고 아픔을 겪고 살았던 그들은 스스로를 '포르테뇨, Porteno'라고 부르고 자랑스러워한다. 그리고 포르테뇨의 삶은 탱고와 함께 음악이 되고 노래가 되었다.

탱고가 있고 그들의 삶이 160년 넘게 녹아있는 '카페 토르토니'는 포르테뇨들의 사랑을 받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문화재라니 많은 생각이 든다. 카페가 문화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점점 부러움에 지고 있는 중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는데 우리도 좋은 카페에 이야기를 쌓아 오래 아끼고 보존하면 언젠가 '토르토니' 같은 카페를 서울에서 만날 수도 있을 것이다.

문화재가 된 '카페 토르토니'는 소설가 '보르헤스'가 자주 찾던 곳이고 아르헨티나의 자랑이 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 Martha Argerich'도 다녀갔다.(축구에서 아르헨티나 출신 포르테뇨 '마라도나'와 '메시', 피겨스케이트에서 '김연아'님 정도로 최고의 피아니스트라고 하면 설명이 될지 모르겠다) 가까운 곳에 '천사의 카페, Cafe de los angelitos'는 '가르델'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 1890년에 처음 문을 연 '천사의 카페'는 안타깝게 지금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경제 불황으로 15년간 문을 닫았을 수밖에 없었는데, 포르테뇨들이 되살려 내었다고 한다. 아끼는 카페와 탱고를 보존해준 포르테뇨들 덕분에 '천사의 카페'에서 탱고를 보고 왔다. 사장님은 아르헨티나의 경제 상황을 'tottering, 만취하거나 너무 아파서 비틀거리는'이란 어려운 영어 단어로 표현하였다.

하이퍼-인플레이션, 공공자산의 잘못된 민영화로 공공요금의 급격한 상승, 높은 실업율과 빈곤율, -4% 까지 내려쳤던 연간 GDP 성장률, 대규모 뱅크런, 이어진 코랄리토(12개월 동안 모든 은행계좌의 동결)와 모라토리움(채무상환 포기 선언), 반복되어 등장하는 IMF, 페소화 가치 폭락. 지난 30~40년간 아르헨티나 경제 뉴스를 연이어 채웠던 단어들이다. 덕분에 달러를 손에 쥔 여행자는 즐거움의 비명을 지르며 여행할 수 있었지만, 그들의 자랑거리와 아름다운 관광지만 보고 즐거워하기만 했던 것 같아 돌이켜 보면 미안한 마음이 생긴다.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지독한 경제 불황에도 탱고와 카페를 지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준 포르테뇨들에게도 좋은 미래가 있기를 바란다.

춘천 '중도'에 한반도 최대의 청동기 유적이 '레고랜드' 건설로 부서질 위기에 있고 아직도 현명한 대책을 고안해 내지 못한 채 공사는 시작되었다고 한다. 잊을 만하면 신축공사나 재개발로 문화재와 유적지가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접한다. 컨트롤할 수 있는 방법이 절대 "0%"는 아닌 상황에서 경제 논리로 우리의 소중한 것을 또 잃을 수도 있다. 대형화재나 자연재해로 겪었던 문화재의 상실은 인간의 능력 밖이라 운명이라 위로할 수 있었지만, 경제 논리로 문화재나, 유적, 자연경관을 잃어버리면 화재로 남대문과 노트르담 성당을 잃은 아픔에 더해 부끄러움도 남을 것이다. 그 부끄러움은 후세대에게 들키면 한심함을 탓하는 원망으로 남을 수도 있음을 모르는 것일까. 지독한 경제 위기에 노숙자들로 거리가 넘쳐나고 배가 고파도 오래된 것의 가치를 추억하고 문화재로 남겨 일상 속에서 카페를 즐기던 포르테뇨들이 생각나서 멍하니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우리에게 레고랜드가 포르테뇨들에게 탱고와 카페보다 중요한 일일까?

먹고사는 문제마저 큰 위기가 된 포르테뇨들에게 문화재를 지키려는 선택과 노력은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뭣이 중한지' 알았던 포르테뇨들은 현명한 판단을 하였고, 지독한 경제 불황 속에서도 지켜낸 카페에서 서로 온기를 나누며 살아가는 모습이 지워지지 않는다. 딱 30분이었지만, 싸늘한 공기와 1분에 한 방울씩 떨어지던 비의 차가움에도 줄을 서며 그들이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을 경험할 수 있어 뿌듯해하고 있는 나에게도 '카페 토르토니'의 온기가 전달되었다.

라디오에서 갑자기 오래전 즐겨 듣던 노래가 나오면 작은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분 좋은데, 뉴스에서 오래된 문화재와 유적들을 살릴 수 있다는 소식이 들리면 안도하면서 기뻐할 수 있을 것이다.

'카페 토르토니'에서는 고급스러운 디저트 자허토르테, 티라미슈가 아니라, 요즘 잘 먹지도 않는 촌스럽고 오래된 메뉴 '츄러스'를 디저트로 주었지만, 앞으로 살아갈 인생에서 '뭣이 중한지' 생각하라는 '인생 츄러스'를 맛보게 해 주었다.

문화재가 된 츄러스 맛집 토르토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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