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일본만 못하는 일
변화는 때로는 급격하게, 때로는 서서히 발생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이 만든 변화는 급격한 변화입니다. 급격한 변화와 달리 바로 눈에 띄지 않아도 서서히 발생하는 변화는 변화의 크기가 일정 수준을 넘어갔을 때 변화했음을 뒤늦게 발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점을 발견하고 급격한 변화를 시도하지만, 실패를 반복하는 경우도 있고 반복된 실패를 통해 겨우 미미한 변화를 볼 수 있는 분야도 있습니다. 문제점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던 것은 오래전이지만, 아직 획기적인 변화보다 미미하나마 예전과 달라지고 있는 모습을 조금씩 볼 수 있는 우리의 회식 문화가 그렇지 않을까요?
회식에는 순기능도 분명히 있습니다. 그렇지만 늦은 귀가, 송년회 회식 이후 힘든 택시 잡기, 취객, 망가지는 워라밸, 3차에 왜 가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노래방 등 일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만드는 것도 회식입니다. 늦은 시간까지 과음으로 건강에 큰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었고, 만취한 상태에서 사고, 너무나 안타까운 사망 사고도 주변에 있었습니다.
우리의 회식 문화에 대한 문제를 다시 짚어보고, 발전적인 변화를 위해서 외국의 회식 문화를 분석하려고 합니다.
변화의 시도, 119 운동?
문제라고 인식했던 회식 문화에 대해서 과거에도 여러 번, 우리 기업들도 새로운 시도를 했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오래전에 대기업에서 회식의 부작용을 줄이고, 회식의 장점만 살릴 수 있도록 ‘119 운동’을 펼친 적이 있습니다. ‘1가지 술로, 1차만, 9시 이전에 끝내는’ 회식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회사에서 장려하였지만 제대로 자리 잡지 못했습니다. 가끔은 뻔한 회식 술자리 대신, 문화 예술 공연을 보는 방식도 시도되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고 회식 문화에 대해 회사의 개입이 느슨해지면, 다시 1차는 바베큐, 2차는 맥주, 3차는 정말 최악인 노래방으로 이어지는 회식 코스가 다시 살아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곳도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회식을 좋아하는 조직의 구성원도 있지만, 회식이 싫거나 힘든 구성원도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회식의 순기능을 회식을 금지하는 제도로 죽일 필요도 없지만, 회식이 힘든 구성원들을 위해서 변화는 필요합니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쉽게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외국 기업은 회식을 근무 시간으로 여깁니다. 회식도 근무이므로, 회식이 있는 날에 실제로 근무하는 시간은 회식 시간만큼 한 시간 이상 짧아집니다. 그리고 회식에 참석하지 않는 사람은 평소와 같이 오피스에 남아 일하다 정시에 퇴근합니다. 사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문화적으로 우리와 같은 회식의 개념은 없거나 아주 약합니다. 그래서 영어로 회식이라고 번역할 때 딱 떨어지는 표현도 없고, 그때그때 말하는 사람들에 따라서 ‘Dinner gathering’, ‘Company/Office dinner’, ‘Group dinner’라고 다르게 말합니다. 회식에 참석하고 30분, 1시간만 짧게 참석하고 귀가하는 것도 자유입니다. 우리나라와 일본만 벗어나면 너무 당연한 회식 문화입니다.
미국에서 뉴욕 맨해튼이나 동부의 대도시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직원들은 운전해서 출근합니다. 아파트가 거의 없고, 지하철이나 버스 노선이 없는 단독 주택에 거주하는 패턴이기 때문에 자가운전이 아니라면 출퇴근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런 지역에서 회식을 하면 회사에서 꽤 떨어진 타운의 예약된 레스토랑으로 퇴근한 구성원들이 모입니다. 퇴근 시간이 5시라면, 회식이 있는 날이면 4시에 퇴근하고 회식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6시, 7시가 되면 하나둘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생깁니다. 운전하는 것 말고는 귀가할 방법이 없고, 우리가 익숙한 대리운전이 정말 드물기 때문에 과음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문화적인 차이와 교통량이 많지 않다는 미국 지역의 특성 때문에, 우리와 달리 음주 단속에 걸리는 혈중 알콜 농도(BAC, Blood Alcohol Concentration)는 0.08%입니다. (우리나라 기준 0.03%입니다.) 이런 여건 덕분에 회식에서 과음하는 사람은 거의 드물고 맥주 한두 잔만 마시는 분위기입니다. 정리하면, 회식이 있는 날에는 한 시간 일찍 퇴근하고 회식 장소에 모여 가볍게 맥주를 마시고 운전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분위기가 정착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일찍 퇴근한 만큼만 회식에 참석하고 6시에 귀가한다고 해서 문제를 삼는 상사도 동료도 없습니다. 오히려 문제를 삼는 사람이 비난받을 확률이 더 높습니다.
뉴욕 맨해튼과 같은 동부의 대도시에서 회식하는 경우에도 보통 퇴근시간보다 한 시간 빠른 시간에 시작하고, 이른 시간에 1차를 마칩니다. 모두가 2차에 참석하는 경우는 없고 2차에 참석하고 싶은 사람들만 따로 모이고 참석하고 싶은 사람만 회식을 즐깁니다.
유럽의 경우도 미국과 비슷합니다. 회식이 있으면 퇴근 시간이 빨라집니다. 그리고 유럽은 회식을 늦은 시간까지 할 수 없는 환경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유럽여행을 하다 보면 대도시 관광지가 아니라 관광객이 적은 작은 도시에서 식당은 일찍, 빠르면 6시 늦어도 8시, 아무리 늦어도 9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2차 자체가 힘듭니다. 일찍 귀가하고 워라밸을 챙길 수 있는 환경과 문화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합니다. 파리, 마드리드, 바르셀로나는 늦은 시간까지 식당 문을 열지만, 영국 런던, 스위스 취리히, 독일 뮌헨, 프랑크푸르트 만 해도 유럽에서 큰 도시이지만 늦게까지 술을 마실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습니다. 이보다 작은 중소도시는 말할 것도 없이 더 일찍 문을 닫습니다. 유럽에서도 회식에 참석을 강요하는 상사는 없고, 역시 강요를 하면 비난받을 확률은 100%입니다. 유럽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회식에 참석을 강요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시아로 오면 모두가 참석하는 경향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모습과 비슷하지만, 비싼 물가 때문인지 2차, 3차 회식비까지 지원하는 회사는 잘 없습니다. 그래서 싱가포르와 홍콩에서 회식 2차, 3차는 정말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만 남습니다.
문제는 우리와 제일 가깝고 많이 닮은 일본입니다. 2차와 3차까지 참석이 강요되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일본 뿐입니다. 미국, 유럽, 홍콩, 싱가포르 어디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나쁜 회식을 우리나라와 일본만 고집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나쁜 회식 문화에 있어서 동반 꼴찌인 일본의 경우를 보아도 사실 우리보다 회식 횟수가 적은 편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1차 회식이 끝나고 식당 앞에서 박수를 한 번 ‘짝~’ 치는 모습은 1차가 끝날 때이거나, 마지막인 3차나, 4차가 끝났을 때의 풍경입니다. 1차가 끝나고 박수를 ‘짝’하고 치는 것은 공식적인 회식자리의 종료를 말합니다. 일본은 택시비가 엄청 비싸기 때문에 지하철을 타기 위해 1차를 마치고 귀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2차부터는 회식비를 참석하는 사람들만 분담(1/n) 하기 때문에 강요의 강도는 우리보다는 낮은 것 같습니다. 과음하는 사람들 중에는 택시비가 비싸기 때문에 멀리 떨어진 집으로 귀가하지 않고, 도심의 캡슐 호텔에서 자고 다음 날 바로 출근하는 사람들이 종종 보이는 것도 일본의 회식 문화입니다. 워라밸이 망가지고, 가족 구성원 사이에서 갈등의 요인이 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비싼 택시비, 2차 이후 회식비를 분담하는 문화 때문인지 2차에 대한 강요는 우리보다 훨씬 덜한 것도 사실입니다.
외국의 좋은 것을 보면 빨리 따라 하기로 2등이라면 서러워할 우리 국민들이 유난히 어려워하는 것이 2차 이상 이어지는 긴 회식 자리와 말하지 않아도 강요로 느껴지게 하는 분위기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미워하는 일본보다 못한 압도적인 꼴찌를 고집할 이유......,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없는 것 같습니다.
회식은 평소 퇴근시간보다 무조건 한 시간 일찍 시작하고, 한 시간만 참석하면 누구나 귀가하는데 불편함을 느끼지 않아야 합니다. 회식의 장점을 크게 보고 2차를 원하는 사람은 2차에 참석하면 되고, 강요하는 사람은 외국의 사례처럼 비난받는 문화가 빨리 뿌리내리면 좋겠습니다.
1년 이상 재택근무를 하면서, 그동안 우리가 해온 수많은 회의와 회식이 과연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에 그렇게 큰 도움이 되었는지 곱씹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업무에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갈증도 있었지만, 회의와 회식은 정말 그렇게 많이 늦게까지 필요했던 일인가요?
세 줄 요약,
1. 회식은 근무 시간만큼만, 2차부터 참석은 자유
2. 2차를 강요하는 사람은 비난받는 분위기로
3. 나쁜 습성과 문화를 압도적인 꼴찌로 계속 유지할 이유는 없다.
<굿 오피스> 몰입을 만드는 업무 공간과 사람들 (2022. 9월 출간, 플랜비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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