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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를 몰라도 카페 La Biela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

by 김홍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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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라 비엘라(La Biela)'의 문을 열기 전, 나는 한 작가의 이름만을 떠올렸다. 보르헤스. 노벨 문학상 수상 거부라는 파격적인 소문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그의 작품을 단 한 줄도 읽어본 적은 없다. 선천적 시각 장애를 극복하고 라틴 아메리카 문학의 거장이 된 소설가. 노벨문학상 수상 거부라는 타이틀에 대해서도 자료를 더 읽어보면, 논란이 조금 있어 보인다. 독재자에 대한 그의 태도 역시 논란 거리가 남은 부분. 그런데도 나는 그가 즐겨 찾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175년 된 카페 ‘La Biela’ 카페를 여행할 수 있었다.


1850년부터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심장을 지켜온 이 카페는 단순한 명소가 아닌, 도시의 살아있는 역사 그 자체였다. 낡은 테이블과 의자, 그리고 빛바랜 벽에 걸린 초상화와 사진들은 비엔나와 파리에서 유명인사와 작가들이 찾아서 유명해졌다는 카페를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역사적인 명소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남는다. 잘 나갈땐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남미의 파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는데, 곳곳에 남아있는 카페와 탱고 극장을 보면 파리..., 95퍼센트 정도는 공감할 수 있을 것 같다.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탱고의 선율이 흘렀던 낡은 극장들과 저명한 인사들이 자주 찾았다는 카페와 레스토랑들을 도시의 문화유산으로 보존하는 것처럼, 라 비엘라 카페도 이 도시 사람들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또 다른 명소인 카페 토르토니와 이 곳 라비엘라는 단순히 오래된 장소를 넘어, 기억과 이야기가 켜켜이 쌓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그 자체라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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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곳에서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순간은 카메라에 담을 수 없는 풍경이었다. 오랜 경제 불황과 세계 최고 수준의 빈부격차가 공존하는 이 도시의 풍경을 단적으로 보여주듯, 한쪽 구석에서는 낡은 나무 상자에 구두약과 솔을 가득 담은 한 시민이 부유해 보이는 손님의 구두를 닦고 있었다. 카페 손님들의 여유로운 분위기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그들의 익숙하면서도 씁쓸한 일상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졌다. 라 비엘라 카페가 위치한 레콜레타 지역은 부촌이라 불리며, 유명한 에바 페론의 묘지가 있는 곳인데 카페 공간에서 본 장면은 강렬한 빈부의 대비 그 자체를 볼 수 있었다. 부유한 동네이다 보니 ‘라 비엘라’에서 걸어갈 수 있는 곳에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으로 꼽히는 ‘엘 아테네오 서점’도 있다.


20190615020019_IMG_3007.JPG 오페라 극장을 서점으로 개조한 엘 아테네오.


‘보르헤스 + 1850년 오픈한 175년의 역사’ 두 가지로 이렇게 보존해주어, 여행자에게는 남다른 여행 기억을 만들어준 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La Biela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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