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sslee Feb 03. 2022

오스트리아의 '반려동물 장례'

'동그람이:동물 그리고 사람이야기' 에 연재된 글입니다.

십수 년을 함께 한 반려동물은 오랜 친구이자 동료, 가족과 다름없다. 이런 반려견을 잃은 사람들은 친한 친구나 자녀를 잃었을 때와 유사한 슬픔을 느낀다고 한다.

'내 손으로 사료를 우유에 불려 젖먹이를 먹이던 네가 잘 자라 예쁜 아이가 됐을 때, 나를 바라보는 그 눈빛만으로도 나는 위로를 받았다. 너의 어린 시절을 함께한 나는 아직 젊은데, 나보다 빨리 늙어가는 너를 볼 때면 슬픔보다 미안함이라는 마음이 커져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상은 했지만 준비는 모자랄 그 순간을 맞았을 때, 나는 너를 위한 마지막을 어떻게 마련해야 할까?' 

매일 마주하는 수지의 눈을 볼 때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다.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키우는 반려인들이 늘어나면서, ‘펫로스 증후군’을 앓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이들에 따르면 반려동물의 상실은 자녀를 잃은 것과 비슷한 정도의 슬픔이라고 한다. 이에 동의할 수 없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긴 시간을 함께한 존재의 상실이란 충격적인 사건일 것이다. 먼 미래지만, 나에게도 닥칠 그날이 온다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뿐 아니라 배우자와 아이와도 가장 친한 친구인 수지를 잘 보내줄 수 있을까.


수지는 오늘도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 때마다 수지의 눈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수지가 세상을 떠난 뒤'가 떠오른다.


반려동물 역시 삶의 권리를 가진 엄연한 생명으로 다루어 법과 제도들이 개선되고 있지만, 삶 이후 반려동물을 어떻게 간주되고 있을까. 한국의 반려동물 장례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뉘는 것 같다.


1. 병원 또는 의료폐기물 처리업자에 의뢰하여 의료폐기물로 소각처리

2. 생활폐기물로 분류되어 쓰레기봉투에 넣어 폐기

3. 허가받은 동물 장묘시설 의뢰

장묘업자나 병원에 인도하는 것 외에 개인적으로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는 방법은 종량제 봉투가 유일하다는, 그것이 개인에게 법적으로 허락된 유일한 방법인, 한국의 반려동물 장례법의 현실이다. 

"'예쁜이'를 보내는 힘든 길, 국가가 도와드립니다"

그렇다면 오스트리아는 어떨까. 한국에서 동물의 매장이 엄격히 금지되는 이유는 반려동물에게 있을 혹시 모를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함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이 부분은 오스트리아에서도 마찬가지다. ‘반려동물장묘 법’의 가장 위 줄에는 ‘전염병으로 사망한 동물의 사체는 허가된 기관에 위탁되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하지만 이외의 경우는 반려인이 원하는 방식으로, 예를 들어 마당에 매장하거나, 개인이 소유한 땅에 장례를 치르는 등의 방법으로 애도할 수 있다. 

빈에서는 집에서나 동물병원에서나 동물이 사망했을 때, 전화 한 통으로 반려인이 감당해야 할 많은 절차들을 건너뛸 수 있다. 빈의 동물복지부가 ‘엡스빈 티어서비스’(Ebswien tierservice)라는 반려동물 사체 수습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덕분이다. 엡스빈 사이트에는 업무를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엡스빈 티어서비스의 메인 화면. 24시간 연락할 수 있는 '핫라인'이 갖춰져 있다. 

세상을 떠난 반려동물의 수습 또는 인도는 엡스빈 서비스의 핵심 업무입니다. 

이 서비스는 빈 시민들에게 무상으로 제공됩니다. 24시간 어느 때나 01/7676176으로 전화하면 24시간 내 부서 직원이 집으로 방문하여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반려동물(Verstorbenen Liebling)의 사체를 수습합니다.

물론 저희에게 직접 사체를 인도할 수도 있습니다. 

‘리블링’(Liebling) 이란 '사랑하다'라는 동사 리베(Liebe)의 명사어로 사랑하는 이를 뜻한다. 사람에게는 종종 사용하는 단어지만, 시에서 운영하는 부속기관의 홈페이지에서 공식적으로 동물에게 리블링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매우 특별하게 느껴졌다. 한국으로 치자면 시청 사이트에서 반려동물을 ‘예쁜이’라고 써 놓은 것과 비슷하달까.

엡스빈 서비스를 통해 전염병으로 죽은 동물의 사체  수습은 물론 소독 등 위생처리까지 가능하다.  그 밖에 반려인이 원할 경우 장묘시설로 시신을 인계해주기도 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빈에서도 반려동물 장묘시설에서 작별의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화장을 한 뒤 분골을 스톤, 세라믹 등에 담아 반려동물을 기억할 수 있는 물건을 남기기도 한다. 다른 점이라면, 반려동물 매장이 가능하기에 반려동물 공동묘지라는 선택지가 있다는 점이다. 오스트리아의 매장문화는 봉분을 세우지 않고 비석만 세우고, 쉽게 찾아갈 수 있도록 도시 안에 공동묘지를 둔다. 반려동물 공동묘지 역시 혐오시설로 여겨지지 않기에 시내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반려동물이 세상을 떠난 뒤 비석을 세워서 매장할 수 있는 공동묘지가 있다.(위) 이 묘지는 빈 시내에서 자동차로 30분 이내에 갈 수 있을 만큼 가깝다. 이는 오스트리아 사람들이 반려동물 공동묘지를 '혐오시설'로 인식하지 않는 덕분이다. 



'유난 떤다'라고 말하는 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

엡스빈 서비스를 알게 된 후, 나는 안도했다. 아직 생각하기 싫지만 불현듯 수지와의 이별을 떠올릴 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에 대한 정보가 매우 모자랐기 때문이다. 수지가 나에게 모든 것을 준비할 충분한 시간을 준다 하더라도, 막상 그 순간이 닥쳤을 때, 머릿속에 준비한 대로 침착하게 그 절차들을 밟을 수 있을지 걱정스러웠었다.  보통의 평범한 삶을 산 젊은 사람들에게, 반려동물의 죽음은 어쩌면 처음 경험하는 영원한 이별일지도 모른다. 처음이기에 상실이 큰 슬픔이기도 하겠지만, 늙음을 지켜본다는 것은 즐거움보다 미안함을 많이 남기기 때문이다. 특히 그 마지막을 아름답게 보내주지 못했다면 상실감과 미안함은 펫로스 증후군을 악화시키는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펫로스 증후군을 앓고 있는 이들에게 국가의 체계적인 서비스와 주변 사람들의 인식은 큰 도움이 될 것 같다.

반려동물의 장례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자주 나오는 반론이 있다. ‘개만 애도하고 네가 먹는 다른 동물들은 애도하지 않느냐, 종을 차별하는 것이냐’라는 비아냥에 가까운 주장이다. 빈의 동물 장묘법이 반려동물과 식용 가축을 구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식용 가축(말, 돼지, 양, 염소, 말, 조류 등)은 앞서 설명한 반려동물과 달리 매장을 어느 곳에서도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는 전염병의 위험성이 반려동물보다 높기 때문에 매장을 금지할 뿐, 동물을 차별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나는 동물을 사육하는 목적이 무엇이든 동물이 살아가는 동안 사람이 미안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수준의 생활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동물이 살아있는 동안은 복지가 증진되고, 죽은 뒤에는 사람의 감사와 애도를 받는 방향으로 세상이 바뀌었으면 한다. 전체가 혜택받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일부가 받는 수혜를 없애는 것은 옳은 방향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빈의 이러한 동물 장묘문화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유난스럽고 불편하게 보일 수도 있다. 반려동물이 가족과 다르지 않다는 설명만으로 긴 시간 동안 공유한 추억과 감정을 이해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해를 바라지 않지만, 비난만은 자제해 주기를 부탁하고 싶다. 반려동물과의 마지막 순간이, 아마도 십수 년의 추억 중 가장 짙게 기억될 것이기 때문에.

작가의 이전글 '과잉 규제? 생명을 다루잖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