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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심 Feb 07. 2022

특기는 자신을 벼랑 끝으로 몰기입니다


Are you hiring?

고용하세요?



오늘도 회사의 안팎은 폭풍이 몰아쳤다. 그 와중에 기특하게 견뎌준 후임들이 고마워서 아주 오래전 나는 어땠는지 돌아봤다.


 어리바리한 자아는 초등학생 때부터 아픈 손가락이었다. 이러다가는 진정한 어른이   다고 생각했는지 부모님의 반대를 반대하고 대학교 5학기 수업 대신 갑자기 캐나다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했다. 넓은 세상에 자신을 던져 놓으면 조금은 나아질  알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당시 현지 맥도널드에서 유일한 토종 한국인으로 트레이너 배지를 달았다. '어리바리한'이라는 수식어가 함께 달렸을 뿐이고, 과정은 우당탕탕  자체였다.


4학기가 끝나는 겨울방학에 인천국제공항 편의점 야간 직원으로 일했다. 어학연수는 내 선택이었는데도 마음이 하루에 수십 번씩 흔들려서 첫 월급으로 취소 불가한 어학원 등록금과 항공료부터 결제했다. 초기에 드는 모든 비용을 혼자 마련하려고 하니 다가오는 출국 날짜가 주는 두려움보다 퇴근 후 피곤함이 컸고, 외국 무대에서 똑 부러지게 변한 나를 보는 나 자신과 부모님을 상상하면 즐거웠다. 스물한 살의 경제활동은 한계가 컸다. 그래도 200만 원이 든 체크카드와 함께 비행기를 탔다. 일 벌이기에 특화된 자아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다음 달 생활비는 가서 생각해.


연고 하나 없는 지구 반대편에 서니 용기가 샘솟았다. 한 달 거주비를 제외하고 120만 원 남았기 때문이다. 어학원 일정을 마치고 저녁식사 시간 전까지 매일 이력서를 돌렸다. 한국에서 미리 출력한 이력서 이백 장을 이십 일 동안 도심 거리 사업장의 채용 담당자들에게 건네고 'Are you hiring?'을 외쳤더니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이 끊이지 않았다. 맥도널드는 인내심을 자극하는 자체 채용 시스템이 있어서 이십 일치 힘을 한번에 짜냈다. 영어사전과 컴퓨터 화면을 번갈아 보면서 서류 전형, 적성검사 전형을 통과했고 최종면접까지 합격했다.


맥도널드에 입사했을 때 담당 트레이너는 나보다 세 살 어린 10대 캐나다인이었다. 한국인 신입 크루가 말도 일 배움도 느리다는 소문은 하이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순식간에 퍼졌고, 처음 보는 동료들까지 내 출근 일정을 미리 확인해가면서 교육 장면을 구경하러 왔다. 그 외에도 희한한 사건들이 수백 가지는 지나간 총체적 난국의 장에 있다가 정신 차려보니 8개월 만에 트레이너로 진급해 있었다. 나중에 모두와 친해지고 나서 동료들은 '너는 똑똑한데 바보 같고 그냥 이상한 친구야.'라고 했다. 칭찬을 가장한 비속어 같아서 기분이 묘했지만, 세상 사람들 보는 눈은 어디를 가도 비슷하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리고 떨쳐내고자 했던 자아는 평생 동반자아가 될 수도 있겠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부연 설명]

'인천국제공항'을 검색어로 구직하면 시내의 1.5배 정도 되는 인건비와 교통비를 지급하는 곳들을 찾을 수 있다. 공항버스를 타고 다녀야 하는 이유도 있고 방문객이 많기 때문이다. 지금은 2청사가 생겨서 상황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심할 땐 편의점 한 시간 방문자가 200명 이상이었다.
미주에서 구직하기: 당시 Craiglist라는 구직 플랫폼이 있었지만, 현지인들은 구직자가 직접 사업장을 다니면서 이력서 제출하는 방법이 여러모로 더 효과적이라고 조언했다. 지금도 서양은 알음알음으로 취직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네트워크를 중요하게 여긴다. 참고로 서양은 'N잡'이라 불리는 문화가 일반적이고 나는 2~3곳 사업장에서 근무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첫 출근은 역시 대혼란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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