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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심 Apr 19. 2022

비는 오지 않았다


비는 걱정한 만큼 오지 않았다.

오 분 전에 시리는 오늘 70% 확률로 비가 온다고 말했고, 나는 우산을 깜빡한 채 출근했다. 우산을 쥘 양손에 이미 가방과 회사 행사용 상품들이 한아름 안겨 있어서 챙긴 줄 알았을 것이다. 오늘은 퇴근하고 지인이 있는 공연장에 방문해 협찬 상품들을 전달해야 할 일이 끝난다. 기왕이면 장대비 대신 맑은 밤하늘에 뜬 달빛 맞고 집에 가는 상상을 하면서 사무실 창밖을 바라본다. 현실의 하늘은 언제라도 비를 잔뜩 쏟을 기세로 회색빛을 띄었다.


여느 때처럼 회의는 꼬리를 물고 정신이 바래다가 잠시 선명해지더니 다시 흩어진다. 사수 없는 신입 직원의 고충이 반복되지 않도록 위에서 받는 압박에 더해 후임들이 하는 질문도 전부 받는다. 사실 막 이직해서 돌봄 당해야 할 입장은 나도 마찬가지지만 주변 사람들이 훨씬 위태로워 보이니 정작 내 업무는 근무 시간 외로 밀려난다. 매일 초점 잃은 눈으로 퇴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아홉 . 커다란 상자를 안은  위로 빗방울이 떨어졌다. 무방비 상태에서 비를 맞더라도 서러워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  일을 마치고 가벼워진  위로   방울 떨어졌다. 그게 다였다. 하루 종일 어두운 분위기를 조성하던 비는 내가  여정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고 나서야 기다렸다는  쏟아진다. 염려하던 일이 한순간 아무렇지 않게 지나간 덕분에 나는  좋은 사람이 되어 하루를 친다.


점점 거세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오늘 감사 기도는  순간 때가 맞지 않아 비를 맞고 있을 누군가를 위한 기도로 이어진다.



* 지난 달에 제가 이런 글을 썼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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