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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해 May 08. 2020

DAY+19 / QUE SERA SERA

NETFLIX

 잔뜩 게으름을 피우며 넷플릭스와 함께하는 하루를 보냈다. 누가 개발했는지 이불 밖은 위험하다는 변명을 자꾸 꺼내게 만드는 요물이다. 한국에서 이용하던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들은 판권 문제 때문인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이용이 불가능했다. 검색해보니 이용하려면 인터넷 망 우회 서비스를 따로 구입해야 한다고 했다. 이미 한국에 비해 처절하게 느린 인터넷인데 (사용 중인 통신사인 옵터스의 4G는 원하는 걸 클릭하고 적어도 셋은 세야 연결된다) 우회까지 하면 내 인내심으로는 버텨낼 수 없을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래서 현지의 넷플릭스를 재 구매했다. (곧 개봉 예정인 킹덤 시즌2를 봐야 했다.) 이곳의 넷플릭스에서는 생각보다 더 많은 한국 드라마들이 볼 수 있었다. 보지 않았던 드라마들을 하나씩 보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신났다.

 이사 온 울티모의 집은 전보다 프라이버시가 보장되고, 5분 거리의 마트가 있었다. 필요할 때마다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집 안에서 충분히 음식도 만들어 먹을 수 있으니 굳이 나갈 일이 없다. 도시 생활이 아니라 방콕 생활을 제대로 할 것 같은 강렬한 예지가 왔다. 쉬기로 한 2주 동안 집에만 있을 것만 같은 내 미래에 대한 강한 예지.

 하루 종일 한마디도 하지 않고 집에만 있다 보니 ‘이대로는 안되지 않나’하는 위기감이 들었다. 괜히 영어권 영화를 틀어 딕테이션을 하고 따라 발음해 보며 뭔가 하는 척을 해봤다. 이제 휴가가 끝나면 이력서도 넣고, 인터뷰도 연습하며 친구도 사귀고 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이 이따금 들고 불안해온다.


뭐든 처음엔 힘들고 어렵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행자 같은 지금의 생활을 끝내고 현지인의 삶에 도전하기가 무섭다. 안되면 어떻게 하지, 외톨이가 되면 어떻게 하지 하는 막연한 두려움에 손발이 차갑게 식는다. 머릿속이 시끄러워진다. 순간 불안에 떤다. 문득 걱정으로 점철되는 시간에 마음을 다 잡는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행동하지 않는 이상 없어지지 않을 걱정일 뿐이다. 마음을 다잡고 애써 선을 긋는다.

 아직 휴가 중이니까, 조금 더 외면하면서 용기를 쌓아보자. 뭐든 처음엔 힘들고 어렵다. 첫 발걸음이 힘들고 어려울지 몰랐던 거 아니잖아.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얻는 게 있을 거야. 그때그때 유연하게 헤쳐 나갈 수 있어. 처음만 넘어서서 돌아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익숙해져 있을 거야. Hooray! Que sera s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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