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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해 May 04. 2020

DAY+18 / SUNDAY IS GONE

 시드가 만들어 준 인도 가정식을 먹고, 피아노를 치며 놀았다. 조금 후 합류한 처음 만난 독일 친구 마틴, 그리고 중국 친구 얀나와 어색한 인사로 시작해 깔깔대며 시간을 보냈다. 모두 술에 올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마틴과 얀나가 일어설 때 따라 일어서 나왔다. 무려 1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5시 반쯤 도착해 밥을 먹고 7시 좀 넘어 마틴과 얀나가 합류했으니 여섯 시간 가까이 함께 보냈다. 내가 낯을 가려서 걱정했는데 시드가 분위기를 잘 이끌어줬다. 생전 처음 외국인들과 카드 게임도 해보고 진토닉으로 배를 가득 채운 재밌는 시간이었다.

 한참 놀 때는 몰랐는데, 집에 가려고 나오니 취기가 확 올랐다. 낮에 길을 잃은 기억 때문에 집에 갈 땐 걸어가는 게 낫겠다 싶었다. 사실 대중교통이 없기도 했고 택시가 더 무서워 선택지가 없었다. 다행히 늦은 시간이었지만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가는 밤이라 거리에 사람이 꽤 많았다. 1층으로 함께 내려온 마틴 커플과 인사를 하고 집으로 향했다.

 지도를 보며 조금 비틀거리다가 한국의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타이밍이 좋았는지 쉬고 있던 오뎅은 단번에 전화를 받았다. 다정한 친구는 그 시간에 타지에서 집에 걸어간다는 나와 내 취한 목소리에 기겁을 하며 집에 가는 길 내내 얘기를 들어주었다. (죄송함다) 다행히 집까지 오는 길은 충분히 밝고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무섭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시는 늦은 시간에 다니지 않을 것이다.) 펍들이 대부분 영업하고 있었고, 충분히 거리가 소란스러워서 친구의 걱정을 좀 덜었다(고 생각한다. 하하. 죄송함다)

 내가 엄청나게 취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잠에서 깨고 생각해 보니 기억이 끊겨있다. 탄수화물이 고프다며 집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맛없는 참치 마끼를 산 이후의 기억이 가물하다. 고장 나버린 엘리베이터 때문에 옆 동 엘리베이터로 옥상을 돌아와야 하는데, 어떻게 들어와서 문을 열었는지 모르겠다. 그 길을 지나며 오뎅에게 몇 주째 고장이라고 불평한 게 기억나긴 한다. 도대체 이 미로 같은 이 길을 어떻게 헤치고 들어온 거니. 이런 거 보면 나 정말 길치 아닌데 왜 낮엔 길을 잃은 거지?

그리고 일요일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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