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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해 May 03. 2020

DAY+17 / GOT LOST

 어제 셰어하우스에 입실하며 관리인의 지각으로 길바닥에 한 시간 가량 짐들과 함께 거리의 아이였는데, 오늘은 길 잃은 아이가 됐다. 시드가 하우스 파티에 초대해 줘서 길을 나선 길이었다. 구글 맵이 올바른 동선을 알려줬음에도 전혀 다른 장소로 갔다. 지도와 다른 이름의 트램 스테이션에서 트램을 기다려 탔다. 너무 자연스럽게 일어난 일이라 다시 생각해봐도 왜 이런 실수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나오기 전에 홀짝인 와인 두 잔이 이 사태의 원인인 것 같긴 하다.

 라이트 트레인이라고도 부르는 트램에 올라타 손에 하우스파티용 병맥주를 들고 밖을 바라보다가 트램의 노선표를 얼핏 봤는데, 내가 잘못 가고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우스운 얘기지만, 난 가끔 문자들이 나에게 뭔가 주장함을 느낀다. 진짜다.)

 휴대폰으로 맵을 켜보니 현재 위치가 열 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열 두시 방향에 있던 내 목적지는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급하게 다음 역에서 시드네 집으로 가는 점을 재검색하니 달링하버를 따라 15분 정도 걸은 후에 버스로 한 정거장을 가는 루트가 최선이었다. 손에는 병에 든 블루문이 6개나 들려 있었고, 여름의 긴 해가 오후 5시가 넘어서도 쨍쨍했다. 이럴 바에 처음부터 그냥 걸어갈 걸. 괜히 무거운 거 들고 걷고 싶지 않아서 트램 탔는데. 시간은 두 배로 들고 결국 이렇게 걷게 되었구나.

 일단 다음 역에서 내렸다. 시드에게 길을 잃어 늦는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지도를 보며 파란 선을 따라 걸었다. 스스로 이해가 안 되는 이유로 지나치게 된 토요일 오후의 달링하버는 사람들로 북적이며 다채로웠다. 오후의 햇빛에 반짝이는 바닷물과 가득 찬 사람들로 영화 속의 여유로운 관광지처럼 보였다. 동그란 관람차도 있고 해안을 따라 보도블록이 정교하게 깔려 있었다. 길에는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오는 레스토랑과 카페가 끝없이 이어졌다. 곳곳에 버스킹 공연이 열리고 있었고, 그걸 둘러싼 사람들로 인해 북적였다. 달링하버의 흥겨움과 낭만에 취한 다양한 사람들과 지나쳤다.

 정말 오래간만에 길을 잃었다. 길을 잃어본지가 언젠지 생각 안 날 정도로 평소 지도를 꽤 잘 보는 편이었다. 처음 가는 길도 구글맵의 도움으로 길을 잃을 기회가 없었다. 거기에 이동시간의 시간낭비도 싫어하고, 효율적인 동선을 고집하는 성격 탓에 좀처럼 길을 잃지 않았다. 오후의 와인 두 잔과 낯선 대중교통 지도로 얻게 된 기회는 짜증보다는 어쩌면 선물 같았다. 이 여정에서 왠지 모를 신비로움을 느꼈다. 내가 정말 새로운 세계에 들어와 있다는 기분에 가득 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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