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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다해 May 02. 2020

DAY+16 / MOVING

 일어나자마자 이사를 위해 처음으로 우버를 예약했다. 앱을 깔고 결제카드를 등록하고, 시간을 예약했다. 문 밖에서 리아와 페인트공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얼핏 들려왔다. (아직도 공사는 끝나지 않았다.) 오늘은 리아가 재택근무를 하며 게스트를 인-아웃시키려 하나 보다. 어제 씻어 놓고 먹지 못한 청포도를 똑똑 따먹으며 머릿속으로 짐을 어떻게 쌀 것인가에 대해 이미지 트레이닝을 했다. 일단 오늘 입을 옷을 따로 꺼내 놓고, 옷장의 옷과 짐을 모두 꺼내 침대에 늘어놨다. 짐을 꾸역꾸역 캐리어에 욱이다 보니 흐린 날씨에도 온몸에 땀이 맺혔다. 이사할 생각에 쇼핑을 전혀 안 했다. 처음 가져온 짐에서 늘어난 건 겨우 시리얼 한 봉지인데, 짐이 자가 증식을 하는 건지 캐리어 두 개에 커버가 안됐다. 캐리어에 올라타 지퍼를 낑낑 닫아 놓고 샤워를 하고 나왔다. 

 미리 준비해 놓은 옷을 입으려고 보니 꽤 더운 날씨가 느껴졌다. 분명 흐린 날씨였는데, 어느새 하늘이 깨끗하고 해가 쨍했다. 하하. 일단 꺼내 놓았던 긴 팔 스웻 셔츠에 긴 레깅스를 챙겨 입고 서서 오늘 날씨 검색했다. 기온을 확인하고 도저히 긴 옷차림으로는 하루를 견뎌낼 수 없을 거란 생각에 한숨을 쉬며 다시 캐리어에 올라타 자크를 열었다.

 리아의 호의로 짐을 다섯 시까지 맡기기로 하고 백팩만 메고 나섰다. 반팔과 반바지로 갈아입고 나왔더니 온도가 딱 적당했다. (옷을 갈아입기 위해 캐리어를 세 번이나 더 여닫은 건 잊기로 하자.) 하늘은 맑았고 구름도 적당했다. 바다에는 바람이 적어 큰 파도를 기다리는 서퍼들이 상체만 동동 내밀고 있었다. 요 며칠 계속 흐린 날씨였는데 마지막 날이라고 이렇게 맑은 날씨를 만나 싱그러운 기분이 들었다. 해변에서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려는 데, 자꾸 내 팝콘을 탐내며 다가오는 아이비스와 눈치싸움을 하다가 결국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실내로 들어갔다. 

 다섯 시가 조금 넘어 짐을 찾고 다시 한번 리아와 인사를 한 뒤에 우버를 기다렸다. 신기하게도 차가 배정되자 차의 GPS와 차 번호는 물론 차 제조 회사, 색깔이 표시됐다. 택시처럼 차의 외관으로는 단번에 알아볼 수 없어서 구체적인 설명이 필요한 거겠지? 얼마 전 유튜브 보다가 안 건데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운전자의 옆 좌석에 앉는 게 보통이고 뒷좌석에 앉는 건 무례할 수 있다고 했다. (공항 택시기사님, 죄송..) 기사와 함께 트렁크에 짐 싣고 조수석 문을 열고 앉았다. 우버의 내부는 그냥 택시 같이 보였다. 2주 동안 몇 번이고 걸어 다녔던 길을 지나쳐 울티모로 향했다. 본다이와 마음속으로 안녕했다. 안녕, 나의 첫 번째 오스트레일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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