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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꽐라 Sep 28. 2023

고수가 그 고수가 아니야!

오래전 동남아에 갔을 때 고수라는 풀을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그 독특한 향에 매료되어 한국에서도 쌀국수를 먹을 때 고수를 듬뿍 넣어 먹곤 했다. 호불호가 극명히 갈리는 것이 바로 이 고수라는 것인데 함께 갔던 일행들은 모두 고수 냄새 때문에 괴로워했던 반면 난 그 향기에 빠져 행복한 시간을 보냈었다. 이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고수의 호불호는 냄새 수용체 유전자 보유 유무에 따라 갈린다고 한다.


고수는 주로 음식에 사용이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맥주에도 들어간다고 착각을 한다. 우리가 흔히 마시는 호가든, 크로넨버그 블랑, 블루문같이 시트러스 한 향이 강한 Belgian wit 맥주가 이에 해당된다. 그런데 맥주에 들어가는 것은 고수가 아니라 고수 씨앗(coriender seed)이다. 맥주병 뒤에 붙어 있는 원재료명에도 고수 씨앗이 아니라 고수 혹은 고수 열매라고 적혀있어 이런 오해가 생긴 것 같다. 심지어 맥주 리뷰를 전문으로 하는 여러 블로거들의 글에 'xx 맥주는 고수가 들어있어 상큼한 맛을 낸다.'거나 '고수는 쌀국수보다 맥주와 궁합이 잘 맞는다.'라는 식의 어처구니없는 내용을 접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존문가가 판치는 세상에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가뜩이나 우리나라엔 고수를 못 먹는 사람이 많은데 맥주에 고수를 넣으면 위에 나열한 맥주들이 국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설마 발효과정에서 고수와 효모가 만나 상큼한 향을 만든다고 생각하는건 아니겠지?

블루문 원재료에 적힌 '고수'




그 시트러스함은 고수가 아닌 고수 씨앗에서 나온다. 고수 씨앗은 시트러스 한 향이 아주 매력적인 향신료인데 고기에 넣고 같이 익혀주면 잡내도 없어지고 풍미도 한껏 올려준다. 이 고수 씨앗을 말린 오렌지 껍질과 함께 맥주에 넣어주면 상큼함이 극대화되고 알싸함이 입가에 맴돌아 애피타이저로 마시거나 해산물과 함께 마시면 아주 좋다. 맥주에 고수 씨앗을 넣을 땐, 절구로 잘 갈아서 넣어줘야 그 특유의 향이 잘 우러난다.

오늘 고수씨앗과 소라치에이스, 넬슨쇼비뇽, 아마릴로 홉을 발효 중인 맥주에 넣어 주었다.


주중엔 금주를 약속했는데 그 매력적인 향에 이끌려 몰래 작업실에서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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