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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꽐라 Nov 07. 2023

스무 번째 봄

내 맥주가 다른 맥주와 다른 점 한 가지를 뽑으라면 바로 스토리가 있다는 것이다. 내 맥주는 그때의 감정과 상황에 따라 쓰여진 레시피로 만들어져 모두 나름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얼마 전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한 맥주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날씨도 쌀쌀하니 계피향과 말린 과일향이 진득하게 나는 높은 도수의 크리스마스 에일을 준비하려다 파티가 열리는 12월 초는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모두 해외로 휴가를 떠난다.) 날씨가 그다지 춥지도 않고 춤추며 노는 파티에 고도수의 맥주는 맞지 않아 나름 고심을 했다. 수 일간 창작의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는데 마침 도수가 높지 않고 마시기 편한 상큼한 맥주를 만들어 달라는 사람들의 요구사항이 접수되어 고통의 강도가 확 줄어들었었다.


많은 고심 끝에 동네 어머니들의 입맛에 맞추어 "그들이 마시기 좋은 맥주를 만들자."라고 방향을 정했고 그대들의 맑고 순수했던 20대 초반을 떠올려 보며 레시피를 만들어 보았다.


부드러운 목 넘김을 위해 밀몰트가 다량 사용되었고 특유의 달달함을 위해 캐러멜 몰트도 많이 넣어 주었다. 싱그러운 풀잎 같고 때론 발랄했던 그대들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시트라, 모자익, 아마릴로, 캐스케이드 홉 그리고 코리엔더 씨를 넣어 시트러스한 과일향이 돋보이게 했고 효모의 에스테르를 극대화하기 위해 벨기에 효모를 사용했다.


이 맥주는 꽃비 내리는 날 설레임을 안은 채 캠퍼스로 향했던 그 시절, 미소와 예쁨이 가득했던 그대들의 순수함과 설레임이 담겨있다. 배경이 겨울과 맞지 않지만 사우디의 겨울은 한국의 봄처럼 꽃이 피고 햇살이 따스하기에 그때의 향수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자 이제,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서 마음 푹 놓고 즐기기만 하면 된다. 가장 아름답고 빛났던 시간으로 데려가줄 이 맥주와 함께!


그럼 이 맥주 이름은 '스무 번째 봄'이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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