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하노이에서 처음 발견한 ‘뜻밖의’는 날씨다. 최고 28도, 최저 18도. 완벽하다.
대낮에 오래 걸으면 등에 땀이 살짝 맺히는 정도다. 해가 진 후에도 쌀쌀하지 않다. 저녁 야외 테이블에서 반팔 차림으로 상쾌하게 맥주를 즐길 수 있다. 내가 천국을 만들면, 그곳 날씨를 이렇게 세팅해야겠다. 하노이도 여름에는 엄청나게 덥다고 한다. 알게 뭔가. 내가 있는 11월의 하노이만 완벽하면 된다.
그렇게 걷다가 오페라하우스에 도착했다. 우선 뭔지 알아야 하니까 스마트폰을 꺼냈다. 프랑스 식민지 시절이었던 1901년 착공해서 1911년 개장했다. 파리의 오페라 가르니에를 모델로 삼았단다. 가르니에의 화려함과 사치스러움은 없지만, 동남아 도시에서는 충분히 눈에 띌 만한 외모다. 지금도 이곳에서 각종 예술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별생각 없이 오페라하우스를 한 바퀴 돌기로 했다. 날씨가 좋고 시간도 많으니까 이런 짓을 한다. 뒷골목은 선뜻 들어가기 쉽지 않았다. 막다른 것처럼 보였다. 괜히 무서워 보이기도 한다. 입구에 ‘빈민재즈클럽 이쪽으로 30미터’라는 푯말이 있었다. ‘개조심’보다야 백배 마음이 놓였다. 좀 더 들어가니까 정말 ‘빈민재즈클럽’이란 바가 있었다. 부랴부랴 검색해보니 구글이 ‘하노이 최고의 재즈바’라고 했다. 오, 뜻밖의 발견.
재즈바를 지나쳐 좀 더 들어갔다. 갑자기 하이랜드 간판이 보였다. 지정학적으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형이 왜 여기서 나와?’였다. 물음표들을 바닥에 질질 끌면서 들어갔다. 예쁜 유럽풍 정원에 케노피 형태의 테이블들이 펼쳐져 있었다. 가보진 못했지만, 럭셔리 호텔의 정원에 커피 테이블들이 이렇겠구나 싶었다. 검색해보니 하이랜드 오페라하우스점이었다. ‘예쁜 정원’의 원래 주인은 오페라하우스였다.
하이랜드는 베트남 로컬 브랜드다. 창업주가 스타벅스의 성공에서 영감을 받아 1998년 문을 열었다. 현재 하노이, 호치민, 다낭 등 자국 내 6개 도시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대형 체인이다. 사실 이용한 적은 딱히 없었다. 로고, 간판, 매장 등의 전체 컨셉이 촌스럽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딱 어울리는 디자인. 더 쉽게 설명하면, 롯데리아 같은 느낌이다. 그게 왜 이렇게 예쁜 오페라하우스 정원에 있냐고?
직원이 “주문은 안에서”라고 가르쳐줬다. 손가락 끝이 찌르는 지점에 오페라하우스의 옆구리를 파서 만든 문이 보였다. 안쪽에도 꽤 넓은 장소와 주문대가 있었다. 손님들도 많았다.
“블랙커피 한 잔 주세요.”
“자리가 어디세요?”
“바깥 자리요.”
“그럼 이거 들고 가세요.”
건네받은 번호 푯말을 들고 아장아장 바깥으로 나왔다. 최대한 근사해 보이는 자리에 앉았다. 테이블에는 재떨이가 놓여 있었다. 역시 베트남 최고다. 주위를 계속 둘러봤다. 오페라하우스의 옆면도 참 예뻤다. 이곳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작년 파리 갔을 때 묵었던 호텔인데 말이지”라고 말해도 믿을 것 같다.
커피 올린 쟁반을 들고나오는 직원을 목격하려고 ‘옆구리 문’을 뚫어지라 감시했다. 갑자기 “커피 나왔어요”라는 목소리가 뒤통수를 때렸다. 뭐지? 직원이 온 방향을 보니 정원에도 바가 있었다. 주문은 안에서 받고, 바깥 자리의 음료를 여기서 만드는 시스템이었다. 참견하기 좋아하는 한국인답게 ‘밖에서는 왜 주문을 받지 않느냐?’라고 물어보려다가 참았다. POS 시스템 문제겠지.
아무리 체인점이라고 해도 하이랜드는 베트남 커피다. 맛있다. 브랜드의 촌스러움에 눈만 살짝 감고 마시면 맛있다. 자체 브랜드 캔커피까지 출시하고 있으니 자국 시장에서 인정받는다는 뜻이다. 동네 카페보다 가격은 비싸도 깨끗한 매장과 규격화된 맛, 다양한 메뉴가 나름 빠지지 않는다. 오페라하우스와 예쁜 유럽식 정원 한가운데에 들어가 마시면 더 맛있다. 뜻밖의 발견이라서 내가 홀짝거린 카페덴농(뜨거운 블랙커피)은 더 맛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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