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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재민 Dec 23. 2018

#05. 세상에서 제일 싼 맥주 마시기

'혼술'한 적 없는 내가 하노이에서 '혼술'하는 이유

아침 9시에 일어났다. 할 일 없는 날(거의 없지만)에는 해가 중천에 떠야 일어나곤 했는데 해외여행 왔다고 일찍 일어난다. 시차도 2시간밖에 나지 않는 하노이에서 이게 뭐람. 하긴 아예 없는 셈 치고 사는 아침밥도 해외여행지에서는 꼭 챙긴다. 호텔 조식을 건너뛰는 여행자는 드물다.


세탁물을 챙겨 나섰다. 에어비앤비 숙소에 세탁기가 있긴 했다. 사용법을 몰랐고, 그 사용법을 물어보기 귀찮고, 동네 세탁소가 싸니까 그냥 맡기기로 했다. 숙소 코앞에 ‘Laundry’라고 적힌 가게의 아줌마는 나를 보자마자 손을 가로저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 이유도 묻지 못하고 내쫓겼다. 세탁 전문점까지 5분 정도 걸어갔다.


세탁물을 맡기고 담배를 태우며 주위를 둘러봤다. 동네 식당이 있었다. 뻥 뚫린 1층 공간에 목욕탕 의자와 테이블이 올망졸망 모여있었다. 이른 점심을 하는 현지인 손님이 꽤 있었다. 손가락 하나를 꼿꼿이 세워 보이면서 들어가 앉았다. 영어 메뉴판 같은 건 없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직원도 당연히 없다.



자리에 앉자마자 직원은 생맥주잔을 테이블 위에 놓고 갔다. 물 대신 맥주를 주는 건가? 세상에서 맥주가 제일 싼 곳이라서? 울퉁불퉁 조악한 마감의 잔에 담긴 것은 타이거 생맥주였다. ‘초짜’ 티를 내지 않고 싶어서 그냥 마시기로 했다.


한 모금 살짝 해보니 맛이 괜찮았다. 구글 번역기로 메뉴판을 스캔해서 겨우 찾아낸 소고기볶음밥도 맛있었다. 생맥주를 한 잔 더 주문했다. 나중에 계산서를 보니까 소고기볶음밥 1개에 6만동(3000원), 생맥주 2개에 2만동(1000원)이었다. 생맥주 한 잔에 500원. 요즘 서울에서 500원으로 뭘 할 수 있지?


베트남은 맥주가 싸다. 말도 못 하게 싸다. 생맥주 시장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는 ‘타이거’ 생맥주 500ml에 500원을 받는다. 물가가 비싼 관광지(맥주거리 같은 곳)에서도 1000원 정도밖에 하지 않는다. ‘타이거’, ‘하노이’, ‘사이공’, ‘333’ 등 로컬 브랜드는 병맥주가 1500원 선이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쉬지 않고 맥주를 마신다. 점심 식사에도 맥주가 빠지지 않는다. 대낮부터 동네 아저씨들은 생맥주잔을 들고 신나게 떠든다. 저녁 가족 모임에서도 맥주병들이 테이블 위에 빼곡하다.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도 따라 마실 정도이니까 말 다 했다. ‘혼자여행’이라고 해서 ‘혼술’을 해본 적이 거의 없는데, 베트남에서는 자주 ‘혼술’ 중이다.


해외여행이란 환각을 지워도 베트남 맥주는 맛있다. 최소한 한국 맥주보다는 압도적으로 맛있다. 녹색 병에 담긴 사이공이 제일 맛있었다. 소금을 찍은 레몬을 넣고 얼음과 함께 마시는 ‘타이거 크리스털’도 일품이다. 말도 통하지 않는 동네 식당 아줌마가 그리 마시라고 알려줬다. 1200원짜리 병맥주를 마시는 손님에게 참 친절하시다.


비싼 맥주도 마셔봤다. 하노이의 롯데타워 65층에 있는 루프톱 바에서 주문한 하이네켄 생맥주가 제일 비쌌는데 6000원이었다. 시내에 있는 고급 바에서는 무슨 맥주든 4~5000원에 마실 수 있다. 아무리 돈을 내고 싶어도 서울의 맥줏값 절반 이상을 낼 수가 없다. 동네 식당에서 친구와 둘이 거하게 먹고 마셨더니 27000원이 나왔다. 맥주 맛만큼 돈을 쓰는 행위 자체도 맛있다.



서울에서 나는 기네스를 주로 마신다. 330ml 잔이 8000원, 500ml 잔이 12000원이다. 런던, 도쿄, 뉴욕, 파리에서 모두 기네스를 마셔봤다. 서울이 제일 비쌌다. 하노이에서 갔던 고급 바에서 스텔라 아르투아 500ml 잔을 4000원에 팔았다. 서울의 맥주 가격은 단단히 잘못되었다.


이런저런 생각과 비교가 겹칠수록 하노이의 맥주는 점점 매력을 더해간다. 하노이에는 ‘Bia Hoi’로 시작하는 간판의 로컬 식당들이 많다. 의사소통의 불편함만 극복하면 궁극의 ‘가성비’를 만끽할 수 있다. 소, 돼지, 장어, 토끼, 악어 등 안주도 다양하다. 아! 개고기도 있으니까 주문할 때 참고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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