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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O Sep 12. 2021

밥솥을 자주 열면 뜸이 들지 않는다

몰입의 휘발성

일의 효율을 결정짓는 몰입 단계 도달 시간 

    

최근 주중에 글쓰기를 거의 포기한 상태이다. 늘어난 업무량으로 스트레스가 심해져 업무 생각에서 벗어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출/퇴근 셔틀버스에서 휴대전화 메모장을 열어 한두 문장이라도 써보려고 해도 일 생각에 금세 회사 메일 앱을 실행하기 일쑤다. 회사 일을 하면서 무의식적으로 글의 주제에 맞게 여러 글감이 정리되기를 바라기도 했지만 요행일 뿐이었다.


일 생각이 잦아드는 주말에도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다. 주말에는 집안일도 해야 하고, 아이들과 놀아줘야 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굳게 먹고 일요일 아침에 노트북을 열어 글쓰기를 시작해도 저녁때 글을 완성하기가 쉽지 않다. 습작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글을 대충 저장하고 정신없는 한 주를 보낸 후 다시 그 파일을 열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렇게 써놓은 것인지 한참을 곱씹어봐야 한다. 그래서 일주일에 글을 두 번 이상 쓰시는 분들이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본캐가 작가가 아니신데도 불구하고 거의 매일 쓰시는 분들은 집에 작가로 변신하는 아이언맨 슈트라도 있으신 건가 싶다.


직장에서도 마음먹고 일 좀 하려고 하면 주변 상황이 전혀 받쳐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던 것 마무리하고, 도와드리면 안 되냐’고 하소연해도 자기 일이 제일 급하다는 사람 천지다. 짧게는 30분 길게는 두세 시간 다른 일을 하다가, 다시 원래 일로 돌아오면 낯설기 짝이 없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부터 다시 생각해야 한다. 그래서 몰입이 필요한 날에 방해꾼이 없는 새벽에 출근하거나 아예 늦게까지 야근을 한다. 몰입 단계 도달 시간을 충분히 확보하여 일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하는 고육지책이다.


위의 이야기들을 종합해보면 몰입의 단계에 이르는 과정은 물을 끓이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물이 끓을 때까지 계속해서 불을 켜 두지 않으면 물은 끓지 않을뿐더러, 물을 끓이다가 불을 오랫동안 꺼두면 물은 다시 원래 온도에 가까워진다. 즉, 우리가 한 가지 일에 오랫동안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확보되지 못하면 몰입의 단계로 접어들지 못할뿐더러, 다른 일에 얽매이는 시간이 길어지면 처음부터 몰입의 단계를 시작해야 한다.


위와 같은 이유로 한때 일부 회사에서 ‘집중 근무 시간’ 붐이 일었던 적이 있었다. 오전, 오후 각각 2시간씩 시간을 정해서 회의도 하지 말고, 오롯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자는 의도였다. 하지만, 집중 근무 시간은 그리 오래 유지되지 못했다. (만일 효과가 입증되었다면 지금 한국의 모든 회사가 집중 근무 시간을 도입했을 것이다) 왜 회사에서 우리는 하루 4시간조차 몰입하지 못할까?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시간을 쓴다.


회사 내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의 역할이 조금씩은 다르지만,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면 시키는 자(임원을 포함한 리더)와 하는 자(구성원)로 나눌 수 있다. 이 두 사람의 역할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자.


1. 구성원은 대부분의 업무 과정 중에 몰입이 필요하다. (당장 맡은 과제를 성공시키는 방안을 고민해야 하고, 업무 보고에서 자신이 필요한 지원이나 결정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2. 리더는 회의를 통해 업무 상황을 보고 받고 본인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제안, 결정, 요청을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 긴 시간 몰입이 필요하지는 않다. 중요한 현안에 대해서는 몰입을 해야 할 수도 있겠으나, 빈도가 낮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애초에 리더와 구성원 간의 업무 자체가 다르다. 리더가 구성원에게 최고의 생산성을 위한 몰입 환경을 조성해주고, 이를 바탕으로 그들은 최고의 생산성을 발휘하여 성과를 내는 것이 이상적인 관계이다. 안타깝게도 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리더와 구성원 간의 갈등이 시작될 수 있다.


첫 번째, 구성원이 ‘가짜 일’에 시달릴 수 있다. 브랜트 피터슨은 그의 저서 ‘Fake Work’에서 가짜 일을 ‘겉으로 보기엔 분명히 일인데, 회사의 전략과 목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오히려 방해되는 업무로 성과 없이 때만 되면 열리는 회의, 끊임없는 서류 작업, 상사에게 보고하기 위해 작성하는 업무 일지 작성 등이 이에 해당한다’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직장인들이 업무 시간의 20% 정도를 보고서 작성에 할애하고 있고, 그마저도 내용 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으나, 보고 받는 사람에 맞게 짜깁기하는데 쓰고 있다고 한다. 리더들이 자신의 조직을 열심히 관리해서 고성과 조직으로 만들어 보겠다고, 과제 점검 회의, 현안 회의 등등 만들어 봤자 구성원의 몰입만 방해하는 꼴이다. 회의를 효율적으로 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회의를 30분을 하든 1시간을 하든 그들이 회의 자료를 만드는 데 들이는 시간은 거의 똑같다. 회의를 효율적으로 하자는 것은 리더의 입장일 뿐이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회의를 안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두 번째, ‘인터럽트’로 몰입에 방해를 받을 수 있다. 인터럽트란 원래 프로그램 용어로 원래 하던 일이 있는데 급하게 다른 일이 치고 들어왔을 때, 그 일을 먼저 하게 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인터럽트를 하는 주체는 바로 리더다. 구성원은 보통 리더들의 일정에 맞춰서 자신의 업무 일정을 관리하므로 리더의 일정이 변경되면, 업무 리듬이 깨질 수 있다. 당연히 몰입의 타이밍도 깨진다. 심지어 메신저로 ‘지금 시간 되나?’라고 묻는 임원, 팀장들도 많다. 그때, ‘저 지금 몰입 중인데, 2시간 후에 보시죠.’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의 회사는 거의 없다. 그럼 직원은 ‘몰입의 휘발’을 각오하고 리더들의 회의 요청에 응해야 한다.     


리더들은 위 두 가지로 인한 구성원의 몰입 부족으로 업무 효율이 급격하게 떨어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페이스 메이커가 될 것인가 페이스 브레이커가 될 것인가?


혹시라도 가짜 일과 인터럽트로 구성원에게 페이스 브레이커와 같은 존재였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업무 방식을 바꿔야 한다. 그들이 몰입을 통해 생산성을 끌어올릴 수 있도록 리더는 페이스 메이커로 변신해야 한다. 피터 드러커의 시간 관리 5원칙 중에서 제4원칙인 ‘시간을 통합하라’와 제5원칙인 ‘시간의 우선순위를 정한다’는 리더가 구성원의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주는 방안을 제시한다.


‘시간을 통합하라’라는 제4원칙은 어떤 일이든 그것의 성과를 위해서는 몰입이 필요하므로, 몰입을 위한 연속적인 시간이 많아야 한다는 의미다. 즉 리더는 구성원이 성과를 내게 하도록 몰입을 위한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회의는 될 수 있는 대로 없애고, 본인의 업무 파악을 위해서 그들의 시간을 최소한으로 써야 한다. 어쩔 수 없이 업무 부탁을 해야 할 때도 기간을 충분히 주고,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려줘야 한다.

     

‘시간의 우선순위를 정한다’라는 제5원칙은 리더가 집중해야 할 업무가 무엇인지 결정하여 구성원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리더가 비록 그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몰입에서 벗어날 수 있겠으나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추진해서는 안 된다. 리더는 구성원에게 몰입할 업무의 우선순위를 결정해줘야 한다.


밥을 망치는 법은 재 뿌리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캠핑 초보가 야외에서 밥을 할 때,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는 조리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 자주 뚜껑을 열어보는 것이다. 자주 뚜껑을 열면 수증기가 나가면서 쌀도 안 익고, 그릇도 식어서 다시 원래 온도까지 올리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빠져나간 수증기를 보충하겠다고 물을 부으면 그야말로 ‘죽도 밥도’ 아닌 상태가 된다. 이런 상황을 피하려면 어떡해야 하는가? (라면을 끓이면 된다) 수증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일정 시간 동안 뚜껑을 열지 말고 충분히 쌀이 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구성원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 점검하기 위해서 보고 자료를 지나치게 요구하거나, 자리로 와서 보고하라고 지시하는 것은 그들이 열심히 밥하고 있는데 냅다 뚜껑 열어버리는 것과 똑같은 짓이다. (밥솥 뚜껑도 열리고, 그들의 뚜껑도 열리고) 리더와 구성원이 시간을 소비하는 패턴이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몰입이 필요한 구성원을 위해서 회의와 보고서 작성도 최소화하고, 일정 변경을 자제하여 한 번에 많은 시간을 투자할 수 있도록 해주자. 그들이 일에 몰입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확보해주고, 우선순위를 정해줘서 최고의 생산성을 갖도록 유도해주는 것이 업무 만족도와 성과 모두를 챙기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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