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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iBA Apr 05. 2018

누구나 그렇다

우울증에 관하여 


2011년은 내게 지옥같은 해로 기억된다.
극심한 우울증을 앓았는데 생전 처음 겪어보는 질병에 크게 당황했음은 물론이고 거의 막바지까지 내게 무슨 일이 생긴지도 몰랐다. 지금이야 그 어둡고 기나긴 터널을 지나왔기 때문에 덤덤히 이야기 할 수 있지만 그 때를 생각하면 어휴.
지옥이 다른 공간에 있는 게 아니라 '매일 마주하는 현실에 고통의 레이어(layer)가 새로 덮이는 것' 이란 걸 깨달았던 것 같다. 혹시나 그때의 나와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분이 있다면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기 위해 이 글을 쓴다.  


1. 발단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하던 유학생이었던 나는 2010년 어느날 학업을 접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미국 전역을 강타한 경제 위기는 우리 학교에도 ‘예산삭감'이라는 직격탄을 날렸고 가장 큰 피해는 나같은 유학생에게 돌아왔다. 교수들이 강제무급휴직(furlough)을 떠나고 중요 수업들이 폐강되는 등 내가 들어 할 수업들이 사라진 것이다. 국제학생은 최소 네 과목 이상을 수강해야 학생신분을 제대로 유지할 수 있는데 단지 학교에 남아있기 위해 전공과 관련 없는 수업을 듣고 앉아 있을 수는 없었다. 그것도 한 과목당 100만원이 넘는 고가의 수업을.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중 얼마전까지 미국서 같이 살다 한국에 들어간 감독 형에게 연락이 왔다.
"상황이 그렇다면 차라리 한국에 잠깐 들어와서 나와 영화 한 편 같이 하고나서 복학하는 게 어떻냐"고 물었다. 그땐 그게 유일한 방법처럼 보였다. 큰맘 먹고 이 기회에 실전 경험을 해보기로 결심했다.

자초지종을 잘 설명했지만 가족들은 나를 걱정했다.
하지만 시작은 순조로웠다. 한국에 오자마자 그 형이 메이저 영화 감독자리를 맡게 된 것이다. 수년전 많은 관객을 동원한 영화의 속편이었는데 이를 통해 나도 꿈에 다가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부풀어 올랐다. 모두에게 그 영화의 핵심 팀원이 되었다는 기쁜 소식을 전했다. 다들 제 일처럼 응원해 주었다.

“주연은 누구냐?”, “언제 개봉하냐?”, “난 무슨 장면에 들어가면 되냐?” 하는 질문이 쏟아졌다. 매일 영화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수많은 다큐멘터리, 관련 영상을 챙겨 정리했으며 직접 전문가를 찾아 인터뷰를 하는 날도 있었다. 연일 장시간 회의를 하며 스토리를 짜냈다. 무릎을 탁 치는 기막힌 얼개가 만들어지진 않았지만 열심히 하고 있으니 곧 뭔가 나오겠다 싶었다. 시간이 갈수록 친구들, 가족들의 기대는 커져만 갔다.


2. 균열

'정체'를 느낀건 이미 시간이 한참 지난 후였다. 어느 날 문득 우리 영화가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감독 형과 영화사 대표님 사이에 불협화음이 생긴듯 보였는데 속속들이 내막을 알 수는 없었다. 미팅의 빈도가 눈에 띄게 줄어갔고 나도 힘이 떨어지고 있었다. 여전히 친구들은 같은 질문을 던지는데 그 질문이 너무 불편하게 느껴졌다. 우리 영화는 뭔가 앞에 보이지만 만질 수 없는 안개속 신기루 같았다. 식물인간과도 같은 기약없는 희망이 사람을 미치게 만들었다. 처음으로 내가 잘 하고 있는 건지 의심이 생겼다. 매일 뭔가 일은 하고 있는데 결과물엔 형체가 없었다. 시간은 거센 용암처럼 무자비하게 흘러갔다. 벌써 달력 열 두장이 바닥에 떨어졌다.


3. 붕괴

어느 날 거울을 보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거울 속의 내가 너무나 어색해 보였다. 그 때, 비로소 내게 많은 변화가 생겼다는 걸 깨달았다. 친구든 가족이든 약속을 피하고 있었다. 자정을 훌쩍 넘었는데 잠이 오지 않았다. 깊은 생각에 잠겨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곤 했는데 순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얼굴빛이 어두워지고 사람을 만나도 농담이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 크기도 현저히 줄어든 것 같았다. 아침 해가 뜨는 걸 보고 잠드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유없이, 또 시도때도 없이 심장이 불규칙적으로 뛰어 난 심장병이 생긴줄 알았다. 하루종일 힘없이 흐물흐물거렸다. 누구에게도 친절할 수 없었다. 심지어 내게도.

우울증이었다.

그 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나처럼 주위에 친구 많고 쾌활한 사람이 우울증 같은 것에 걸릴 수가 있나? 하며 의심도 하지 않았다. 그냥 운동 부족으로 몸이 좀 안좋아진거겠거니 했다.
그러나 난 이미 심각한 수준이었다. 어떤 일에도 집중을 못하고 불안에 떨었다. 모든 사람이 나를 한심하게 쳐다본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와도 이야기 하고싶지 않았다. 어떤 장소에 있건 마음이 편치 않았다. 깊은 새벽에 평이 좋은 신경정신과를 한참 검색하다 잠들곤 했다. 탈출하려 발버둥쳤지만 이미 자랄대로 자란 마음의 괴물은 스스로를 목 조르고 있었다. 이대로 내 인생은 끝날것처럼 보였다. ‘왜 이렇게 재미 없어졌냐?’ 하는 친구의 농담은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혔다. 딱히 ‘죽고싶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는데 뜬금없이 ‘난 곱게 늙어죽진 못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4. 희망

곤두박질치는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 구원의 빛은 의외의 곳에서 반짝였다. 서울서 일을 보고 집(용인)에 돌아가는 길에 친한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여자친구랑 헤어졌는데, 오늘 혼자 있으면 너무 힘들것 같다"며 "좀 와주면 안되겠냐"고 했다. 심각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기분이 좋았다.
친구가 나를 이렇게 애타게 찾은 적은 처음이었다. 한 시간이 넘는 거리였지만 지체없이 달려갔다. 고깃집에서 소주잔을 기울였다. 어찌된 일인지 친구는 헤어진 여자친구 이야기는 제쳐두고 ‘우리’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친구는 지금껏 내게 섭섭했던 일, 아쉬웠던 일, 고마웠던 일들을 솔직하고도 자세하게 들려줬다. 이야기 내내 너무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고장난 분수대처럼 눈물이 콸콸 흘러나왔다. 우리 옆에 고기 구워주는 아주머니가 한 분 계셨는데 그분은 ‘누군가 죽었나보다’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동안 우린 가슴 깊숙이 숨어 있던 이야기를 한껏 쏟아냈다. 서로 눈물을 마시는지 소주를 마시는지 모를 시간이 지나갔다. 술자리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몸속의 큰 종양이 사라진듯한 기분, 새로 태어난 기분, 모든 게 새것 같은 기분이었다. 내일이면 이 고통이 완전히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5. 재도약

그날 이후 거짓말처럼 내 우울증은 큰 차도를 보였다.
입맛이 돌아오고 더 이상 심장이 빨리 뛰지 않았다.
불안감도 사라져갔다. 나이키, 아디다스, 뉴발란스 등 각종 10K 마라톤에 등록하고 달리기도 꾸준히 했는데 육체적 고통 속에 좋은 생각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누워서 쉬는 것보다 이렇게 몸을 움직이는 '활동적이고 적극적인 휴식’이 더 효과적이라는 걸 깨닫기도 했다.


6. 성장

그렇게 고통의 시간이 지나갔다.
모든 게 무너지고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던 시기. 하지만 등 뒤로 멀어지는 저 터널 끝을 보면 신기하게도 그 시기가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게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후 세상을 보는 시야도 조금 달라졌다. 일례로, 전에는 거리에서 엉망으로 취한 사람을 보면 한심한 생각부터 들었는데 이젠 ‘저 사람은 무슨 사연이 있길래 저렇게 술을 많이 마셨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된다. 매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유명인 자살 소식에도 더 이상, ‘참 의지가 약하구나’, ‘나같음 저 용기로 살겠다’ 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게 됐다. 또 어느정도 ‘우울’을 감지하는 능력도 생겼다. 아무리 가면을 쓰고 웃고 있어도 대부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걸 내려놓고 시원하게 엉엉 우는 행위가 주는 강력한 치유 능력'을 알게 된 것도 큰 수확이다.

분명 많은 사람들이 2011년의 나와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을것이다. 딱 한 명만 있으면 된다.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쏟아내줘서 깊숙히 숨어 있는 내 이야기를 이끌어내줄 친구. 왜 그러냐고, 뭐가 문제인지 말좀 해보라 닥달하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가 먼저 속을 까 뒤집어 날 투영해 줄 사람. 주위에 분명히 있을 것이다. 힘들지만 적극적으로 찾아 나서야 한다.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인간은 말하지 않으면 절대로 모른다. 찾아도 찾아도 없으면 내게로 오라. 얼마든 내 찌질한 이야기를 들려 줄테니.


7. 경험치 +1 법칙

게임엔 '경험치'라는 게 있다. 이게 현실에도 적용이 되는데, 무슨 말이냐면 일단 무언가를 시도하고 실행에 옮기면 성공하든 실패하든 경험치는 +1이 된다는 것이다. 성공한다고 +2, 실패한다고 -1이 되는 게 아니다. 똑같이 플러스 원이다. 

- 우리네 인생도 마찬가지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어쨌든 경험치가 쌓이고 그 쌓인 경험치는 분명 밑거름이 되니 두려워 말고 도전하자.

- 아무리 잘난척 해봤자 혼자서는 절대로 살 수 없는 세상이다.
좋은 데 마음 많이 쓰고 착하게 살자.

- 누구나 우울하다. 혼자가 아니다 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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